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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북한 전망대

김정남 암살, 원인과 이유는?



지난 2월, 전 세계를 시끄럽게 했던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일어난, 김정남 독살 사건입니다. 김정남은 김정일의 자식으로, 처음에는 김정일의 후계자로 알려지며 해외 업무를 도맡았으나, 일본 밀입국 사건 등으로 김정일의 눈밖에 나면서 후계구도에서 밀려났습니다. 김정은 정권이 들어선 이후로는 해외를 전전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김정남은 누구인가?")


최초 김정남이 암살되었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졌고,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말레이시아 경찰의 추적으로 김정남은 VX라는 신경독성물질로 살해되었으며, 연예인 지망생이 직접적으로 관여한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어서 북한 국적의 사람들이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었다는 것도 밝혀져 수 명의 북한인들이 용의자로 지목되었습니다. 이러한 조사 결과를 북한은 극렬하게 부인했는데, 결국 북한과 말레이시아와의 외교관계는 파탄지경에 이르렀고, EU 등 수많은 국가들이 북한의 잔인한 행태에 분노하며 각종 성명이나 제재안을 발표했습니다.


통일부 블로그에도 김정남 암살과 관련해 수많은 기사가 쓰였습니다. (클릭하면 새창으로 이동합니다)

"김정남 사망을 둘러싼 6가지 의혹"(2017.2.15)

"北 김정남 피살 - 국내 언론보도 정리 "어떻게 피살되었나?""(2017.2.15)

"北 김정남 피살 - 해외 언론보도 정리 "세계가 바라보는 북한""(2017.2.16)

"김정남 피살, 북한 내부에 미칠 영향은?"(2017.2.16)

"김정남 피살 이후, "북한은 어디로 가나?""(2017.2.17)

"김정남 암살 유력 용의자 중 한 명이 연예인 지망생이었다고요?"(2017.2.23)


김정남 암살, 김정은 공포정치의 결과


홍민 실장 ⓒ통일연구원

한편, 통일연구원의 홍민 북한연구실장은 김정남 암살의 원인과 이유를 분석했습니다. 홍민 실장은 통일연구원 현안분석 "김정남 암살의 동기와 김정은 공포정치의 이면"을 통해, 김정남 암살 사건은 김정은 공포정치의 결과물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비록 북한이 자신들과는 관계가 없는 사건이라며 북한 배후설을 적극 부인하고 있지만, 밝혀진 용의자들과 암살 방법 등을 고려해볼 때 북한이 국가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자행한 사건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홍민 실장은 사건에 대해 크게 두 가지 의문을 품었습니다. 첫째는 암살 동기가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왜 하필 뜬금없이 2017년 2월 중순에, 뜬금없이 정권에 위협도 안되는 쫓겨난 백두혈통 떠돌이를, 뜬금없이 성공가능성이나 발각의 리스크가 큰 독극물로, 조직적인 암살사건을 벌인 것일까요? 둘째는 암살의 기대이익이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뜬금없는 시점에, 뜬금없는 사람을, 뜬금없는 방법으로 살해하면서 어떤 효과를 기대했던 걸까요?


홍민 실장은 김정남 암살의 동기를 크게 세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첫 번째 동기는, 김정은의 통치 심리가 불안정하며 이것을 조금 더 안정적으로 만들기 위함입니다. 김정남이 어떤 식으로든 김정은에게 '위협'으로 확고히 느껴지지 않았다면, 극단적인 암살까지 이루어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김정남이 망명정부를 수립할 가능성 때문에 김정은이 암살을 지시했다고 하지만, 이는 다분히 추측성 분석입니다. 현실적으로 김정남이 김정은에게 실제적인 위협이나 잠재적인 위협이 될만한 행동을 한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김정은은 김일성이 존재조차 몰랐던 백두혈통의 사생아로서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고, 때문에 백두혈통의 적자인 김정남을 살해했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혈통으로 따졌을 때 후계자에 더욱 걸맞는 김정남의 존재가 북한 내부에 알려졌을 때 생길 수 있는 소요의 가능성을 제거하고자 했다는 것이 타당합니다. 김정은의 통치 심리는 뜬금없이 김정남을 살해할 만큼 몹시 불안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정세의 불안정성과 관료사회의 동요를 차단하는 정치적 제의(ritual)로서 암살을 지시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최근 태영호 공사의 탈북 등 관료사회의 동요가 김정은에게 심적 압박을 주었고, 이에 김정은이 탈북민들과 권력엘리트들에게 일종의 경고를 하고자 했을 수도 있습니다. 장성택 처형이 김정은 집권 초 자신의 폭력성을 북한 권력엘리트들에게 각인하기 위한 상징적인 사건이었다면, 김정남 암살은 불안정한 정세 등으로 동요할 수 있는 관료사회에게 공포를 심어주기 위한 상징적인 사건일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북한의 소행이라는 직접적인 증거를 남기지 않는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이러한 효과를 더욱 배가시키고자 했을 수 있습니다.



셋째로, 북한의 국가기구 간 갈등양상이 증폭되어 발생한 사건일 수 있습니다. 김정은 시대의 특징 중 하나는 당 조직지도부와 국가보위성 간의 갈등입니다. 국가보위성은 김정은 집권 후 최고의 권력기구로 자리매김하고 있었습니다. 업무 범위가 기존의 것보다 훨씬 넓어지며 당 조직지도부의 영역을 침범하고, 특수범죄가 아닌 일반범죄까지 담당하게 되고, 권력엘리트들을 미행하는 등 영역을 크게 확장했습니다. 반면 당 조직지도부의 정찰총국 등은 통폐합을 거치며 상당히 위축되어 있었습니다. 당 조직지도부는 2016년부터 국가보위성을 견제하기 시작해, 2016년 12월과 2017년 1월에는 마침내 당 조직지도부 간부들에 의해 국가보위성 간부들이 집단적으로 해임되거나 처형되게 되었습니다. 김정남 암살 사건은 당 조직지도부가 다시 김정은의 수족이 되어 권력을 휘어잡은 직후 발생했는데, 이는 당 조직지도부의 선전선동부 등이 김정은을 우상화하는 도구로 기획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당 조직지도부가 김정은 통치 하에서 압도적인 주도권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리기 위해 김정남 암살을 기획했을 수 있습니다.


결국, 이 사건은 김정은의 불안한 통치 심리와 이로 인한 공포정치 때문에 발생한 결과라고 해석될 수 있습니다. 지도자의 불안한 심리가 공포정치로 변질되어 관료들에게 전가되는, '불안이 폭력을 낳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졌고, 그러한 가운데 북한의 권력엘리트들은 과잉 충성을 통해 생존을 모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 사건의 타이밍이나 동기는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불안이 폭력을 낳는 악순환'의 메커니즘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 가능한 부분이 있습니다. 지도자의 불안, 공포정치, 관료사회의 동요, 과도한 충성경쟁, 배신과 갈등 등이 한데 뒤엉키면서, 김정남을 암살까지 하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홍민 실장은 이번 김정남 암살 사건을 단발적인 일회적 이슈가 아니며, 지금껏 응축되어 있던 북한의 온갖 부조리가 국제사회에 드러나게 된 계기로 보았습니다. 국제사회에서 지속적으로 규탄받는 미사일 발사에 이어, 국가가 조직적으로 타국 영토에서 금지된 독극물을 이용하여 살인이라는 생명권 유린을 자행했으므로, 그 후폭풍도 쉬이 그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북한 문제'가 핵이나 미사일 문제로 표상되었다면, 김정남 암살 이후로 '북한 문제'는 비인도적이고 범죄적인 인권 사안과도 결합되면서 폭발력을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홍민 실장의 분석처럼, 그 이유가 불확실했던 김정남 암살 사건은 북한 지도자와 권력엘리트들이 심리적으로 몹시 불안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사건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는 보다 섬세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는데, 이러한 심리적 불안이 북한의 통치체계가 불안하다는 것과 바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금껏 핵이나 미사일 문제를 중심으로 다루어졌던 북한 문제가, 인권문제와 더욱 크게 결합될 수 있다는 사실도 유념해야 합니다. 김정남 암살 이후, 북한 문제를 둘러싼 정세가 어떻게 흘러갈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아야 할 것입니다.


[참고]

통일연구원. 통일연구원 현안분석 CO17-07 "김정남 암살의 동기와 김정은 공포정치의 이면".


추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