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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북한 전망대

역사의 흐름으로 알아보는 북핵문제 ③ : 제1차~5차 핵실험


 안녕하세요, 제9기 통일부기자단의 황주룡 기자입니다. 오늘은 북핵문제의 흐름을 살펴보는 기사의 마지막 부분을 다뤄보려 합니다. 내용은 지난 번에 쓴 기사 2편의 마지막 부분부터 이어집니다.


▲ 미 재무부가  '돈 세탁 우려 은행'으로 지정했던 마카오의 BDA 은행. (연합뉴스)


한반도 비핵화를 근간으로 하여 북한이 정상적으로 국제사회에 진입할 수 있도록 서로 협조한다는 9·19 공동성명은 바로 다음 날에 발생한 'BDA 사건'과 관련하여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BDA는 마카오에 본사를 둔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을 의미하는데, 왜 문제인 걸까요? 바로 미국이 BDA 은행에 있는 북한 자금 2500만 달러 가량을 동결시켰기 때문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미 재무부는 북한이 미국 달러를 위조하고 있다고 판단하여, 이와 관련된 것으로 의심되는 블랙 머니를 동결시켰다고 합니다. 미국이 직접 해당 자금을 환수하는 것이 아니라 BDA 은행에 대해 북한과 금융 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Secondary Boycott'을 행사한 것입니다.


세계의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들은미국과의 금융 거래가 중단된다면 거의 아무 것도 할 수 가 없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BDA 경제제재 조치는 강력한 압력이 될 수 있습니다. 이에 BDA 은행은 북한의 자금을 동결시켰는데. 이것이 북한의 숨통을 죄게 된 것입니다. BDA의 금융거래가 중단되자 북한은 경제적으로 적잖은 타격을 입은 모양입니다. 날짜도 9·19 공동성명이 채택된 바로 다음 날인 9월 20일이었습니다.


▲ 08년 6월 북한이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하는 장면 (연합뉴스)


 북한은 이를 참지 못하고 BDA 문제가 진행되는 와중 핵 실험을 해 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북한이 06년 10월 9일 함북 길주 풍계리에서 첫 번째로 감행한 제1차 핵실험입니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북한은 실제로 핵실험을 해 버렸기 때문에, 중국이나 미국 등의 다른 나라들은 북한이 핵 개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다시 교섭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에 07년 2월 13일 2·13 합의가 채택됩니다.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 조치인 셈입니다. 9·19 공동성명은 사실 비핵화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 실제 집행에 관한 내용은 명기되어 있지 않았는데, 이를 잘 집행시킬 수 있도록 한 조치가 바로 2·13 합의조치인 것입니다. 더 나가아서 10·3 합의도 채택됩니다. 이 역시 2·13 합의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면 되는데, 9·19 공동성명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절차, 마감기한 등을 정한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위와 같은 합의 내용에 따라 북한은 08년 6월 26일 중국 정부에 핵 시설과 물질 신고서를 제출합니다. 그동안 핵시설을 어떻게 가동했고, 어떤 핵물질을 얼만큼 만들어 내서 어디 비축해 뒀는지 등을 기록하여, 6자회담의 핵심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었던 중국에게 두꺼운 출력물을 제출합니다. 그리고 더 이상 핵 활동을 안 하고 동결하겠다는 의사 또한 표명하였습니다. 실제로 다음 날인 6월 27일에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하고, 해당 장면을 전세계에 중계합니다.


 사실 이 때만 해도 북핵문제는 다 끝난 줄 알았지만, 또 다시 문제가 생깁니다. 08년 11월 12일 북한 외무성 성명에 따르면, 북한이 시료 채취를 거부한 것입니다. 우선 북한이 중국 정부에 제출한 보고서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IAEA에서 특별사찰을 통해 현장검증을 해야합니다. 이에 IAEA는 북한 정부에 시료 채취를 요구합니다. 기술적으로 시료를 채취하면 과거에 어떤 핵 물질 관련활동을 했는지 유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북한은 시료 채취를 거부합니다. 이는 1차 북핵위기 당시 북한이 IAEA의 특별사찰을 거부한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많은 양의 보고서와 냉각탑 폭파는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요? 북한 당국이 명명백백하게 공개하지 않으니 아무래도 숨겨진 다른 곳에 핵이 있다는 오해를 받지 않을까요? 아무튼 이런 이유로 08년 11월 이후로 6자회담은 중단되었고, 이후의 북핵 문제는 계속 더욱 고도화됩니다. 그리고 미국 행정부도 공화당의 부시 행정부에서 민주당의 오바마 행정부로 바뀌게 됩니다.


▲ 12년 12월 12일 평북 철산군 동창리에서 발사된 은하3호. (서울신문)


 사실 북한의 핵 문제가 고도화될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에는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이 있었습니다. 오바마 행정부는 09년 1월에 출범하였는데, 사실 오바마 행정부는 민주당이기 때문에 기존의 공화당 부시 행정부와는 외교정책 면에서 노선이 다르기 대문에 대북 정책에 있어서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했습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오바마 정부는 '전략적 인내'라는 기치를 내걸고 북한과 협상을 안 하고 내버려 두는 전략을 취하였습니다. 북한은 오바마 정부의 8년동안 핵무기를 열심히 만들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입니다.


 그 첫 출발은 09년 5월 25일 실시한 2차 핵실험이었습니다. 북한은 이 때부터 핵과 미사일 관련 활동을 공식적으로 열심히 하기 시작합니다. 12년 12월 12일이 되면 장거리로켓 은하 3호도 발사하게 됩니다. 당시 국제사회는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사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했는데, 왜 그랬을까요? 인공위성 발사는 대륙 간 탄도미사일인 ICBM의 발사와 기술적으로 굉장히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13년 2월 12일 3차 핵실험을 실시합니다. 그리고 실험에 성공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더니 같은 해 3월 30일이 되면 '경제 건설과 핵 무력 건설 병진 노선'을 채택합니다. 북한은 그 후에도 수 차례에 거쳐 미사일 개발·개량 등의 실험을 해 오다가, 결국 15년 5월 8일에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 발사를 하게 됩니다. SLBM은 전략 핵무기들 사이에서 은닉성이 뛰어나기에,2차적인 보복 공격 능력을 잘 갖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은 16년 1월 6일 제4차 핵실험을 했고, 이 때 수소탄 실험을 성공했다고 주장합니다. 북한이 주장하는 수소탄이 수소폭탄으로의 개량을 의미하는 거라면, 미사일에 올릴 수 있는 탄두가 만들어 졌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16년 2월 7일에는 인공위성인 광명성 4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했습니다. 이에 16년 3월이 되면 UN은 1차 핵실험때부터 늘 해왔듯이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대북제재 안보리 결의안을 채택합니다. 이른 바 '결의안 2270호' 입니다. UN은 06년 1차 핵실험 당시 1718호부터 시작해서 늘 결의안을 채택해 왔습니다. 북한은 늘 봉쇄되어 있기 때문에 안보리 결의안이 이란 사례 만큼의 효과를 볼지는 의문입니다.


▲ 16년 9월 9일 북한의 5차 핵실험 당시 뉴스 장면 (뉴스1 / YTN)


현재 북한은 최근 16년 9월 9일 5차 핵실험까지 감행하였고, 수소탄 실험 뿐만 아니라 핵무기의 다종화·경량화·규격화에 성공했다고 주장하는 상황입니다. 다종화나 경량화는 수소폭탄을 의미할텐데, 규격화는 무슨 의미일까요? 일정한 패턴의 핵탄두를 지속적으로 똑같이 생산해 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북한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북한이 탄두 개발 기술 수준이 여기까지 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미사일 개발 기술 수준은 어떨가요? 최근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했다는 점을 착안하면, ICBM 기술의 1단계를 완성했다고 보아도 될 것입니다. 게다가 SLBM까지 개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는 북핵 문제가 불거진 이후로 약 20년이 넘게 진행되어 온 과정의 결과입니다.


 이에 북핵문제를 다루는 과정의 전망도 점차 어두워질 듯합니다.제1, 2차 핵실험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은 북한 핵무기를 일정 부분의 인센티브를 주어 포기시킬 수 있을 것으로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까지 온 이상 북한은 웬만해선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듯합니다. 북한은 단순히 외교적인 레버리지나 경제적인 대가, 안보적인 보장 장치 등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핵무기를 개발하는 수준이 아니라, 체제 유지를 위해서도 핵무장을 해 왔기 때문입니다.


 '핵을 가진 북한'을 상대한다는 것은 외교적으로나 안보 면으로나 상당히 버거운 부분입니다. 향후 북핵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해 어떤 접근을 시도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많은 고민이 필요할 듯합니다. 이상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시리즈로 기사 보기

역사의 흐름으로 알아보는 북핵 문제 ① : 제1차 북핵위기

역사의 흐름으로 알아보는 북핵 문제 ② : 제2차 북핵위기

역사의 흐름으로 알아보는 북핵 문제 ③ : 제1차~5차 핵실험




<참고자료>

왕선택, 『북핵위기 20년 또는 60년 : 왕선택 기자의 북핵연표 해설』, 선인,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