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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북한 전망대

1960년대 엘리트 변동사건'은 무엇일까?

'1960년대 엘리트 변동사건'은 무엇일까?


1. 1960년대 엘리트 변동사건이란?  

 북한의 1960년대는 정치, 사회, 문화 방면의 큰 변화가 일어난 시기였다. 이 변화는 1967년 5월에 개최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4기 15차 전원회의를 계기로 발생했다. 이 회의에서 “당의 유일사상체계 를 세우는 것을 방해”하고 “조선로동당을 수정주의의 길로 나가게 하려했다”는 이유로 박금철, 이효순, 김도만(사상담당비서), 고혁(문화예술부장), 허석선(당 과학교육부장), 이송운, 김왈룡, 허학송, 박용국 등이 비판받았다.


△ 박금철

 회의의 결과로 갑산파가 제거되었으며 1년 뒤인 1968년 말에는 자파에 속하는 민족보위상 대장 김 창봉과 허봉학 상장 등 항일 빨치산 그룹 군부파벌까지 제거하는 엘리트 변동이 발생하게 되고 사회적 으로는 유일체제로 전환되었다. 


2. 역사적 배경

 1955년 12월 「사상사업에서 교조주의와 형식주의를 퇴치하고 주체를 확립할 데 대하여」 문건에서 소련파와 연안파를 비판.

1956년 4월 조선로동당 3차 대회를 통해 김일성파의 권력이 강화되었음 (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에 김일성, 부위원장에 최용건, 박정애, 박금철, 정일룡 등)

1956년 ‘8월 종파사건’을 통해 김일성은 권력과 정당성은 물론 대외 자주성까지 확보함 ․ 1962년 12월 『로동신문』에 ‘주체사상’이라는 용어 등장.

1965년 4월 김일성이 인도네시아에서 연설을 통해 주체사상을 최초로 정식화함.


△ 1966년 8월 12일자 논설 「자주성을 옹호하자」


1966년 8월 『로동신문』에 「자주성을 옹호하자」라는 논설이 실림.

1967년 5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4기 15차 전원회의를 통해 갑산파 숙청.

1967년 12월 최고인민회의 제4기 1차 회의는 주체사상을 국가 활동의 지도사상으로 공식 반영.

1969년 1월 조선인민군당위원회 제4기 4차 전원회의 확대회의의 ‘군부 강경파 사건’으로 김창봉, 최광, 허봉학 등이 숙청당함.

 ▶ 대내적인 권력을 강화했을 뿐만 아니라 중․소 관계에 있어서도 자주성을 확보하며 김일성 중심의 권력구조가 확고해졌다. 즉, 김일성 유일체제가 형성되어가는 과정에서 1960년대의 엘리트 변동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3. 앞으로는?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다. 갑산파가 제거되고, 군부 강경파 역시 제거되었던 1960년대의 엘리트 변동사건은 비단 1960년대에만 발생했던 일이 아니었다. 이와 같은 숙청 사건들은 북한이 정권을 지속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계속 자행 되어왔기 때문에 거시적인 시각에서 흐름을 살펴보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또한 갑산파를 제거하는 과정을 통해 김정일이 후계자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다졌던 것처럼, 김정은이 권력을 공고히 해가는 지금 이 시기에 1960년대 엘리트 변동사건을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