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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기자단카드뉴스

[기자단카드뉴스] 독일 통일 이야기 ① : 월요 시위에서 베를린 장벽 붕괴까지



독일 통일 이야기

첫번째 이야기 : 월요 시위부터 베를린 장벽 붕괴까지


안녕하세요, 통일부 대학생기자단 9기 황주룡 기자입니다. 저는 이번 기사에서 독일 통일 과정을 다뤄 보고자 합니다. 특히 동독 주민들의 월요시위로부터 비롯된 독일 통일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① 독일 통일의 출발점?

독일 통일에 출발점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1989년 9월 25일부터 시작된 동독의 월요시위일 것입니다.


② 동독의 월요시위란?

동독 월요시위는 동독에서 월요일마다 사회주의 정부인 독일민주공화국(동독)에 대항하였던 시위로, 독일 작센주 라이프치히의 니콜라이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③ 월요시위의 배경 : 소련의 탈냉전화(1)

1980년대 중·후반 무렵 동구권에서는 탈냉전의 물결이 강하게 일고 있었고, 이 물결은 소련의 고르바초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고르바초프는 85년 3월에 개방 또는 공개를 의미하는 '글라스노스트'를 추진하여 국민들을 개혁으로 이끌었습니다.


④ 월요시위의 배경 : 소련의 탈냉전화(2)

그리고 89년, 고르바초프는 소련이 기존에 동구권 국가들의 반사회주의 움직임을 처단해 왔던 '브레즈네프 독트린' 조치를 해제함으로써 각각의 개별 국가들이 자국 문제에 대해 스스로 책임질 수 있도록 유도하였습니다. 그 결과 폴란드의 자유노조 결성, 헝가리의 국경 개방 등 동구권의 개혁 및 탈냉전 물결이 커져가고 있었습니다.


⑤ 월요시위의 원인 : 동독 정부의 실정(1)

당시 동독의 선거는 공식적으로는 자유, 비밀, 평등 선거이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동독의 사회주의통일당(이하 사통당)과 이에 준하는 블록정당)연합정당)으로만 구성된 단일 목록에 찬성 혹은 반대하는 형태였습니다. 즉 사실상 동독은 사통당의 독재 정권인 것입니다.


⑥ 월요시위의 원인 : 동독 정부의 실정(2)

사통당은 89년 5월 7일에 지방선거를 계획하고 실시하였습니다. 공식 선거 결과에 따르면 총 투표율 99.91%, 그리고 단일 제안에 대해 99.85% 찬성 결과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당시 교회를 중심으로 한 환경운동과 평화운동 조직들은 이에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동독 사통당의 선거부정을 공식적으로 제소하게 됩니다.


⑦ 월요시위의 발발 : 민심의 동요

소련 중심의 탈냉전 추세가 지속되고 동독 사통당의 실정이 이어짐에 따라, 많은 동독 시민들의 민심이 동요되기 시작합니다. 많은 동독민들이 동독을 탈출하기 시작하였고, 동독 내 저항 시위 세력들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시위는 동독 라이프치히에 있는 니콜라이 교회의 월요 평화예배를 중심으로 발전하였습니다.


⑧ 월요시위의 기치 : 여행의 자유를 외치다

89년 9월 4일 저항시위 활동가들은 교회에서 월요예배를 마친 후 자유를 요구하는 평화 시위를 진행하였습니다. 이들은 '여행의 자유, 의사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현수막에 내걸고 평화와 민주를 외쳤습니다.


⑨ 월요시위의 전개 : 전국적인 시위 확산

한편 동독 슈타지(비밀경찰)는 시위대를 강경 진압하여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9월 4일 일어났던 시위는 서독 주요 뉴스 시간대에 TV 뉴스로 방영되는 상황까지 가게 됩니다. 이에 동독은 서독 기자들의 라이프치히 방문 금지령을 내렸지만, 시위의 규모는 점점 커져갔기 때문에 나중에는 진압을 위해 대규모 군대가 동원되어야 하는 상황으로 발전합니다.


⑩ 월요 시위의 전개 : 시위 진압의 실패

89년 10월 7일 동독 창립 40주년 기념 열병식 당시에는 동독 정부군과 시위대의 대결 국면이 최고조로 달했습니다. 주민들은 축제에 반대하면서 평화 시위를 계속하였으며, 당시 행사에 참석했던 고르바초프도 동독 서기장 호네커에게 직설적으로 불편함을 표했습니다. 결국 동독 정부의 월요시위 진압은 실패로 끝나게 됩니다.


⑪ 월요시위의 성공 : 여행의 자유 현실화

시위 진압이 실패로 끝남에 따라 시위대는 동독 지도부와 협상을 시작했습니다. 동독의 호네커는 89년 10월 17일 국가수반 겸 당 서기장 직에서 사임하였고, 11월 9일에는 동독의 여행관계법이 제정됩니다. 서독으로의 상시적인 자유 여행을 보장하는 규정이 통과되어 시위대의 핵심 요구사항이 현실화된 셈입니다.


⑫ 작은 실수가 가져온 기적 : 자유

이 날 동독에서는 샤보브스키 정치국원이 참석한 생방송 기자회견이 열립니다. 여기서 이탈리아 기자가 여행관계법 효력 발생 시점이 언제인지 물어보자, 샤보브스키는 "지금 당장 유효하다."고 답변합니다. 이 날 기자회견은 생방송이었기 때문에 방송이 전파를 탄 직후 수많은 동독 주민들은 자유를 향해 베를린 장벽으로 물밀듯이 몰려 나오게 됩니다.


⑬ 독일 통일 초읽기 : 베를린 장벽의 붕괴

엄청난 사람들이 베를린 장벽 검문소 주변으로 몰려 와서 문을 열라고 외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자정을 조금 앞둔 시점에서 검문소 담당자들이 통오를 개방하면서 수많은 동독 주민들은 서독으로 향해 갔습니다. 이렇게 베를린 장벽은 시민들의 힘에 의해 붕괴되었고, 오랜 시간동안 분단되어 있던 독일도 통일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⑭ 독일 사례의 교훈 : 시민들의 힘

오랜 시간동안 분단을 겪은 독일에서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통일이 완성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 많은 요인이 있겠지만, 저는 동독 시민들의 자유와 평화를 향한 움직임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민들의 힘이 없었다면 오늘과 같은 독일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독일의 통일 과정을 짚어보는 것은 다가올 우리의 통일을 준비하는 데에 좋은 귀감이 됩니다. 동독의 사례와 같이 이북 지역 주민들의 큰 활약을 기대해 봐도 될까요?


감사합니다.


* 시리즈로 기사 보기

독일 통일 이야기 ① : 월요 시위에서 베를린 장벽 붕괴까지

독일 통일 이야기 ② : 제도적 차원의 노력을 통한 대내적인 독일 통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