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과 인문학의 만남?” - 통일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위하여 -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통일’은 의무가 아니라 손익계산에 의해 선택할 수 있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 듯 합니다. 이러한 통일 인식의 문제점에 대해 새로운 접근법을 모색하기 위하여 5월 20일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에서는 <민족 공통성 연구 방법론의 모색>을 주제로 한 통일인문학 제 7회 국제 학술 심포지엄이 개최되었습니다.
이번 행사에서는 통일과 남북관계 그리고 민족공통성 문제에 있어서 기존의 접근 방법에서 벗어나 인문학을 조화시켜 함께 생각해보고 토론해보는 행사가 마련되었는데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씨 속에서 아침 일찍부터 행사가 시작한 탓인지 방청석 곳곳에는 빈자리가 보였지만,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꼼꼼히 자료집을 읽으며 이번 연구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행사는 김진규 건국대학교 총장의 축사와 김성민 통일인문학연구단 단장의 개회사로 시작됐습니다. 이 자리에서 김진규 총장은 “인문학의 위기 속에서 통일인문학이 건국대학교의 특화된 학문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가장 한국적이고 범세계적인 학문으로 발전하기를 희망한다.”고 축사를 마무리 하였습니다. 이어 김성민 단장은 “통일인문학 연구단에서는 인문학자로서 놓칠 수 없는 새로운 학문연구를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며 “분단국가의 특수한 주제 속에서 세계적으로도 특화된 연구소로 발전하고 싶은 희망이 있다.”고 앞으로의 연구에 대한 포부를 드러내기도 하였습니다.
이번 행사는 “민족 공통성 연구 방법론의 모색”이라는 큰 주제 속에서 4개의 세부적인 주제로 나뉘었는데요. 1) 민족공통성 연구의 일반이론 2) 재중 조선족의 현 실태와 민족공통성 3) 재일조선인의 현 실태와 민족공통성 4) 재러 고려인의 현 실태와 민족공통성과 같이 각각의 주제에 대한 연구원들의 보고서 발표, 그리고 종합토론을 진행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계산기를 두드리기만 하며 생각했었던 기존의 통일에 대한 담론, 그것을 인간의 본질에 대한 연구를 하는 학문인 인문학에서 접근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존과는 다른 신선함이 느껴졌는데요. 이 중 상생기자단은 민족공통성 연구의 일반이론에 대해 토론한 1부 주제에 참석하여 통일과 남북관계, 그리고 민족성 문제에 대한 접근법에 대한 토론을 직접 경청해보았습니다.
◎ 통일인문학연구단 이병수 교수의 「민족 공통성 개념에 대한 성찰」 발표
- 기존의 원초주의적인 동질성과 민족애만으로 남북의 이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사실상 어렵다고 보는데, 게다가 이러한 성질을 정치적 공동체의 틀 속에서만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 남북관계의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우리 민족은 크게 남한, 북한, 재일조선인, 재중조선인, 재러조선인을 중심으로 최소 5개 이상의 정치 공동체가 전 세계에 분포되어 있는데, 역사적으로 종족의 민족성과 정치 공동체가 일치해본 경우는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앞으로 종족의 민족성과 정치 공동체의 결합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남한과 북한을 비롯한 모든 디아스포라들이 모여서 생활․문화 등의 공통성을 확립할 필요성이 있음을 주장한다.
즉, 기존의 이해타산적인 남북통일문제 접근은 앞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며 통시적인 차원에서 문화․생활의 공통성을 확립하여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다. 더불어 이러한 논의를 한반도 내부에서 벗어나 모든 디아스포라가 함께 하는 논의의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 잠깐! 디아스포라(Diaspora)란 무엇일까요?
로마제국으로부터 박해를 받던 유대인들은 로마를 상대로 독립 전쟁을 일으켰으나, 패배하여 유대인 거주지역이 황폐해지게 되었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거주지를 떠나 세계 각지로 흩어지게 된 민족 ‘이산’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 바로 ‘디아스포라’입니다. 우리민족에게 있어서 ‘디아스포라’는 일제의 침략을 통해 촉발되었는데요. 일제의 침략을 견디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중국과 러시아, 일본과 미국 등 세계 곳곳으로 이주를 하였고 지금도 그곳에서 살고 있는 우리 민족 공동체를 일컬어 ‘디아스포라’라고 지칭하고 있습니다.
◎ 우즈베키스탄 과학아카데미 동방학 연구소 한발레리 교수의 「코리안 메타-네이션」 발표
오늘날, 한반도에 사는 한인들만으로(남한과 북한을 지칭) 국가라는 개념을 사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아직도 해외 곳곳에는 많은 한인 디아스포라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민족적 공동체에 대한 논의가 단지 한반도에 국한된 사항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예를 들어 아르메니아 같은 국가의 경우에도 아르메니아에 거주하는 아르메니아인보다 해외에 거주하는 아르메니아인이 더 많다. 이러한 경우를 ‘메타-네이션’이라는 새로운 용어로 지칭할 수 있는데, 한반도에서도 남북한의 한국인과 해외 거주 한인들(디아스포라)을 합쳐서 ‘코리아 메타-네이션’이라 지칭할 수 있을 것이다.
‘메타-네이션’을 위해서는 공통된 여섯 가지의 조건이 요구된다. 첫 번째 공통의 역사적인 민족의 뿌리가 있어야 하고, 두 번째 현존하는 국가가 존재해야 하며, 세 번째 높은 수준의 이주 집단이 있어야 하고, 네 번째 역사와 문화와 유전적인 특징을 가진 디아스포라의 형성이 전제되어야 하며, 다섯 번째 민족적인 의식이 있어야 하고, 마지막으로 디아스포라 집단 상호간의 관계가 유지되어야 한다. 각각의 조건들을 종합해보면 ‘메타-네이션’ 형성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공동체 관계가 형성되어 있어야 하는데, 조선 민족의 디아스포라는 아직 형성 단계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통일 문제에 있어서 남한과 북한은 승자와 패자의 패러다임의 틀 속에서 정치적 접근만을 추구하고 있다. 게다가 한 쪽이 Yes라고 외치면 한 쪽은 무조건 No라고 외치는 행동 패턴 때문에 끊임없이 배타적인 입장을 취하게 될 수밖에 없다.
서로가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교착상태에서는 이른바 ‘매개자’의 역할이 중요하게 되는데 남북한의 문제에 있어서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참여가 ‘매개자’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매개자’로서 해외의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참여는 한반도 문제를 민족내부에서 해결가능하게 할 수 있으며, 그들은 한반도 문제에 대하여 보다 중립적인 입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남북한 사이에 바람직한 매개체가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 통일인문학연구단 박영균 교수의 「코리안 디아스포라 민족공통성 연구방법론」 발표
그동안, 민족공통성에 대한 인식은 한반도 중심적인 생각에서부터 출발하고 있었다. 그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코리안 디아스포라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졌어야 했지만 이에 대한 방법론적인 연구는 실질적으로 거의 행해지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이러한 연구를 주로 사회학자들에 의한 실증적이고 객관적인 연구방법을 통해 주도되었기 때문에 그에 따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 민족은 근대 국민국가 성립에 실패하며, 일제의 식민통치 이후 남북 분단이 현실화되었고 남한과 북한은 민족적 정체성을 공유하기보다 상이하게 다른 국가주의적 정체성으로 분단 상황을 고착화시키고 말았다. 민족적 정체성마저 분열되는 시점에서 최소한의 공통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직접 만나고 소통하는 자연스런 과정이 필요했으나, 현재까지 그와 같은 노력은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따라서 앞으로 상호간의 민족적 정체성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해외동포들, 즉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현재까지 민족 문제에 있어서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영향력은 극히 미미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은 통일 문제에 있어서 주체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으며, 또한 그 영향력이 기대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는 공존의 자세를 갖고 디아스포라에 대한 문화적 연구에 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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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분들의 발표를 들으면서 새로운 개념을 많이 접할 수 있었습니다. ‘디아스포라’ , ‘메타-네이션’ 그리고 그들의 현실과 앞으로의 역할… 통일 문제에 대하여 우리가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개념들을 접하면서 때로는 놀라기도 하고, 때로는 현실적으로 가능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도 해보았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1부 토론을 마치고 맞이한 점심시간의 틈을 타서 ‘김성민’ 통일인문학연구단 단장님을 만나 간단한 인터뷰를 가져보았습니다.
상생기자단 : 통일·민족 문제는 일반적으로 사회과학 분야와 관련이 높은 영역으로 알고 있었는데, 인문학과의 조화를 통한 새로운 연구 방법은 새롭기도 하면서 굉장히 흥미로운 주제였습니다. 단장님께서 ‘통일인문학’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시는지요?
김성민 단장 : 처음 인문학을 전공할 때부터 이러한 연구를 해봐야겠다는 의지는 항상 갖고 있었어요. 하지만 연구 환경이나 기반이 미흡했기 때문에 머릿속에 계획만 갖고 있다가 10년 전 쯤, 미국에서 연구를 하던 중에 그 계획을 구체화 시킬 수 있었고, 드디어 3년 전에 인문한국(HK)지원 사업을 통해 연구단을 설립하고 지금까지 연구 활동을 지속해오고 있습니다.
상생기자단 : 비록 그동안의 연구가 미진했었지만 남한에서는 점진적으로나마 이러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남한 외에도 북한 또는 해외의 코리안 디아스포라에서도 이러한 맥락의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지요? 그리고 이런 연구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가요?
김성민 단장 : 사실상 남한 중심으로 연구가 이루어졌어요. 때로는 북한 학자들과의 학문적 교류도 있었지만 최근에 이르러서는 그런 교류조차 거의 차단된 상황이죠. 하지만 이번 토론에는 고려인 출신의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학자도 함께 참가해주셔서 보다 의미 있는 자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상생기자단 : 연구원분들께서 발표하신 내용에 따르면 통일 문제에 관하여 기존의 정치적·경제적인 ‘이해타산적 접근’에서 벗어나 민족적 공통성을 통한 통일을 지향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귀결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문학적인 접근을 통해서 통일문제 해결을 위한 현실적인 대안 마련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도 여쭤보고 싶습니다.
김성민 단장 : 2000년과 2007년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발표된 선언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1국가 2체제를 통한 점진적인 통일방안에 합의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방안에 대해서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만 문제는 남북공동선언 이후에 상호간에 현실적으로 아무 성과도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1부의 토론에서도 언급되었듯이 남북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인간과 인간과의 교류가 먼저 이루어지고 민족적 공통성을 찾아가며 통일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데, 우리는 정치적ㆍ경제적인 계산을 먼저해본 다음에 통일 문제에 접근하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기존의 접근법과는 달리, 민족적 공통성을 회복하여 분단을 통해 벌어진 서로의 상처를 치유한 다음에 현실적인 통일 문제에 접근하는 방향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종종 어느 한 쪽에만 집중해서 다른 측면을 고려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곤 합니다. 통일과 인문학의 만남, 무언가 낯설고 어색함이 느껴졌지만 그 속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동안 민족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하여 우리 모두가 간과하고 있었음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통일 문제를 계산기 두드리듯 이것저것 따지며 생각했던 우리들에게 이번 학술 포럼은 여러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글을 접하는 많은 분들도 통일에 대한 다양한 접근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하며 기사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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