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숨, 두숨, 지속되는 ‘호흡’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지속되는 ‘호흡’이라는 단어보다, 한 순간의 호흡인 ‘한숨’이 더 의미 있을 때가 있습니다. 세계명문클럽 레알마드리드의 호나우도가 프리킥을 차기직전의 큰 ‘한숨’. 피겨요정 김연아 선수가 경기장에 나와 음악이 나오기 직전 입가에서 전해지는 ‘한숨’. 이처럼 단하나의 호흡으로 정의되는 ‘한숨’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시간을 멈추게 합니다. 최근, 북한인권법 제정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한숨’이 될 수 있는 사건이 있어 소개하고자 합니다.
70년대 우리나라가 급속히 산업화되기 시작할 때, 우리네는 농기구와 그물망을 내려놓고 보따리 하나 챙겨 서울역으로 모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서울의 공단에 심어지고, 우리의 눈부신 성장의 꽃을 피웠습니다. 당시 산업화가 우선시되었을 때 민주화는 미뤄질 수 있는 대상으로 여겨질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산업화로 얻은 자신감으로 우리는 민주화까지 잘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산업화 씨앗이 심어지고 민주화의 꽃이핀 텃밭 서울역에서 지난 4월 26일 ‘2011 북한자유주간 서울대회’가 열렸습니다.
이 날 서울역에서는 미국인이자 현재 <북한자유연합> 대표 수잔솔티의 입을 통한 북한의 인권과 자유를 위해 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요. 수잔솔티의 말에 힘을 실어준 데에는 바로 북한이탈주민이 있었습니다. 과거 북한에서, 미국사람들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적개심을 배웠던 그들이 미국인 입으로 자신들의 소리를 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처럼 이들은 탈북자라는 이름에서만 북이라는 기운이 감돌 뿐 남한에서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 있었습니다. 공교롭게도 행사가 진행된 4월 26일은 또 다른 미국인 카터가 북한의 수도 평양을 방북한 날이기도 했습니다.
한반도 내 두 개의 수도 평양과 서울에서는 서로 함께할 수 없는 성격의 사건이 벌어진 것 입니다. 미국의 전 대통령 카터는 평양방문 이전에 비핵화 회담 재개와 인도적 지원방안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다고 선을 그었지만 그가 평양을 방문하던 날 서울에서 수잔솔티 대표는 연설을 통해 “같은 미국인으로서 김정일 대변인 역할을 하는 카터가 부끄럽다.”고 비판하면서 카터의 방북 활동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비판의 배경에는 과거 카터가 94년 북한의 핵개발 선언으로 발생된 위기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남북관계 뿐만 아니라 북미관계는 북한의 핵개발 의혹으로 전쟁에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일성의 초청으로 카터는 평양에 갔습니다. 두 사람의 회동은 일단 북·미 협상과 남북 정상회담으로 가는 문을 열었지만 북한이 지속적으로 핵개발을 추진하면서 김일성은 카터를 이용해 유엔의 제재라는 위기를 벗어났고 핵개발을 위한 시간과 달러를 번 셈이 됐다고 비판받게 됩니다. 이번 카터의 평양 방문도 과거의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뿐만 아니라 김일성 이후 김정일 정권이라는 연장선에서 놀아나고 있다는 비난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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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카터 (前 미국대통령) | 수잔솔티 (북한자유연합 대표) |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 것은 개인마다 다른 생각을 갖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민주주의에서는 이들의 다른 의견은 소중한 것이며 존중되어야 할 대상으로 인정받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의견을 모두 수렴할 수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슷한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정당을 만들고 이들 정당들이 개인의 목소리를 합쳐 보다 큰 소리를 냅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쉽게 타협되지 못할 때 발생합니다. 이들의 첨예하게 다른 소리에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쉽게 선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날 집회에서도 카터와 수잔솔티의 차이처럼 국회에서 표류중인 북한 인권법이 빨리 통과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소리와 이를 반대하는 세력의 갈등을 볼 수 있었습니다. 수잔솔티는 북한인권법이 통과해야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투옥되어 있는 사람을 포함한 북한 주민 모두의 인권을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북한 인권법 제정을 반대하는 이유도 있습니다. 이는 막상 북한 인권법이 제정되었을 때 실제 북한 인권의 개선을 가져올지에 대한 의문을 갖고 제동을 거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북한 인권법이 개정되었다고 하지만 이것이 북한 인권을 개선하기보다 북한을 통제하고 탄압하는 근거만 제공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기자는 문득 이러한 논쟁의 피해자가 누구인지 점점 희미해졌습니다.
작년 서울지하철 노조의 파업으로 피해를 본 사람은 노조보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북한의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탈북자와 이들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는 미국인, 그리고 카터를 비롯한 이들에게 비난 받는 미국인, 그리고 이들과 함께하는 정치인들, 함께하지 못하는 정치인들... 지속되는 갑론을박 속에 갈등이 선명해질수록 굶어 죽는 북한 주민들은 늘어나고 있으며 남북관계 또한 희미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갈등이 선명해질수록 북쪽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눈동자가 희미해지는 것을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통일을 하기 위해서는 소모적인 남남갈등을 최소화하고 소통하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이것이 잘 이행되지 못했을 때 그 피해는 우리뿐만 아니라 북한에서도 굶어 죽는 사람이 증가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긴 ‘한숨’을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오늘 기사는 카터든 수잔솔티든 이날 행사가 끝난 직후 들었을 말을 생각해 보며 기사를 마치려 합니다.
“식사하러 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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