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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현장과 사람

통일안보견학을 다녀오다

 

 

난 5월 25일 저는 통일안보견학을 다녀왔습니다. 이번 견학을 기획한 강승규 교수(고려대 외래교수,북한학)하에 '북한정치론'을 듣는 학우들과 함께 갔던 견학이었습니다. 이번 통일안보견학의 목적은 우리나라 최대의 통일 안보 관광지를 둘러본 후에 현재 한반도 분단상황의 안타까움을 몸소 느끼고, 안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며 더 나아가 다가올 통일 대한민국의 미래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신촌에서 출발한 저희는 맨 먼저 파주에 있는 임진각에 도착했습니다. 북한 실향민을 위한 망배단을 지나 제가 보게 된 것은 바로 도중에 철조망으로 길이 막힌 '자유의 다리'였습니다.

 

 

 

자유의 다리는 문산읍 마정리 임진각 광장 앞 망배단 뒷 편에 놓인 다리로, 1953년에 한국전쟁 포로 12,733 명이 자유를 찾아 귀환하였기 때문에 명명된 다리입니다. 원래 경의선 철로는 상하행선 2개의 교량이 있었지만 폭격으로 파괴되어 교각만 남아 있었는데 전쟁 포로들을 통과시키기 위하여 서쪽 교각 위에 철교를 복구했고, 그 남쪽 끝에 임시 교량을 가설했습니다. 포로들은 차량으로 경의선 철교까지 와서 걸어서 자유의 다리를 건너왔다고 합니다. 6경간으로 이루어진 목조 평교 형식으로 길이는 83미터, 폭은 4.5~4.7미터, 높이는 8미터 내외입니다. '자유로의 귀환'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전쟁의 대표적인 유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입구에 있는 '자유의 다리, 여기까지 오기를 50년'이라는 글귀가 마음을 애잔하게 했습니다.

 

 

 

 

 

다리를 계속 걸어가다보니 이렇게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철조망에는 남한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이 담긴 종이, 국기, 천들이 각자의 사연을 담아 빼곡하게 매어져 있었습니다. 남북 이산가족이 된 지 60년이 되었다는 이 사연이 저희를 가슴 아프게 했습니다.

 

 

 

다음으로 제가 본 것은 자유의 다리 옆에 있던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입니다. 이 기관차는 등록문화재 제 78호로서 한국전쟁 중 피폭, 탈선된 후 반세기 넘게 비무장지대에 방치되어 있던 남북 분단의 상징

물입니다. 2004년 아픈 역사의 증거물로 보존하기 위해 문화재로 등록된 후 포스코의 보존처리 기술을 지원받아 녹슨 때를 벗겨내고 국민 역사교육자료로 활용하고자 하는 경기도의 적극적 의지에 따라 이 자리에 옮겨 전시되고 있다고 안내판에 쓰여있었습니다. 당시 이 열차를 운전했던 기관사의 증언에 따르면, 군수물자를 운반하기 위해 개성에서 평양으로 가던 도중 중공군의 개입으로 평양에 이르지 못하고 황해도 평산군 한포역에서 후진하여 장단역에 도착했을 때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이 기관차 몸체에 남아있는 1,020여 개의 총탄자국과 휘어진 바퀴는 참혹했던 당시의 상황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임진각을 떠나 저희는 DMZ전시관과 제 3땅굴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가는 길에 검문도 받았는데요. 버스 안에서 신일번가국도에 대한 설명도 들었습니다. 그 국도를 쭉 따라가면 개성이 나온다고 합니다. 우리가 익히 들은바 있는 '로드 넘버원'이 바로 신일번가 국도지요^^

 

전시관과 땅굴에 가기 전에 저희는 '장단콩'마을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장단콩 마을의 특산물인 장단콩으로 만든 순두부와 비지찌개는 꿀맛이었답니다.

 

 

 

 

 

 

 

 

 

 

 

 

 

 

 

DMZ영상관 앞에서 기념 촬영을 했습니다. 일명 '인증샷'이죠^^ DMZ를 뛰노는 한 마리 꽃사슴처럼 찍으려고 했는데 잘 안나왔네요ㅠㅠ 영상관에서는 한반도에서 가장 신비로운 곳인 DMZ에 관한 영상을 시청했습니다. 사람의 손길이 끊긴 그 곳에는 전쟁의 상흔은 온데간데 없고 다른 지역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희귀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고 합니다. 

 

 

영상관에서 나온 저희는 바로 제 3땅굴로 갔습니다. 들어가기 전에 군인아저씨...는 아니고 군인 오빠나 군인 친구쯤 되는 분(^^)에게 몇가지 주의사항을 들었습니다. 땅굴 내부는 사진 촬영이 안되며 공기가 탁하고 깊이가 매우 깊기 때문에 평소에 폐소공포증이나 기관지 질환을 앓고 계신분은 입장을 삼가는게 좋다고 했습니다. 저는 초등학생때 다른 땅굴을 가 본 적이 있는데, 그때는 잠깐 걷다가 나와서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더니 정말로 엄청난 깊이에 놀랐습니다. 땅굴의 높이는 160미터가 채 되지 않아서 필히 안전모를 써야했습니다. 북한군들의 신장이 그렇게 길지 않기 때문에 땅굴을 그 정도의 높이로 팠다는 설명도 함께 들었답니다. 땅굴은 내려갈 때는 신이 났지만 올라올 때는 그 높이와 길이 때문에 너무나도 힘들었습니다ㅠㅠ

 

 

다음으로 저희가 간 곳은 개성공단이 보인다는 도라전망대였습니다. 도라 전망대는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한계선인 포토라인이 있어서 망원경으로 볼 수 있는 북한의 모습은 사진기로 찍지 못했습니다. 그 곳에서도 저희는 북한과 맞닿은 지역에 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었지만 그 기나긴 설명을 외우느라 힘들었을 이등병님에게 큰 박수를 쳐드렸습니다^_^

 

 

 

 

 

 

그 다음 장소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도라산역'입니다. 문산에서 도라산까지 하루에 두 번 통근열차가 운행한다는 도라산역은 평양으로 가기위한 관문입니다. 아래 사진에서 '평양방면'이라는 글씨가 너무나도 낯설게 느껴졌답니다. 도라산역에서 다른 견학팀과 만난 저희는 운좋게도 좋은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도라산 이름의 유래와 앞으로 통일이 된다면 부산에서부터 스페인, 영국까지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갈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답니다.

 

하루에 두 번만 운행한다는 통근열차를 운좋게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역장님의 허락을 받고 내부에 들어가보기도 했답니다.

도라산역에서 역사도 구경하고 직접 열차도 타보니 가슴이 벅차오름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항상 꿈꾸는 것이 바로 기차를 타고 부산에서부터 출발해서 서울, 개성, 평양을 지나 유라시아대륙을 횡단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날이 어서빨리 올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하나의 기념사진! '평양방면이신가요 서울방면이신가요~?'

멀게만 느껴졌던 평양이 비로소 그렇게 멀지 않음을 느꼈답니다.

 

 

 

 

 

마지막으로 저희가 들른 곳은 통일전망대입니다. 이 곳에서 북한의 물건이 전시되어 있는 전시관도 살펴 보고 망원경을 통해 북한 땅을 보기도 했습니다. 저 멀리서 검정색 옷을 입은 사람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을 망원경으로 본 저는 알 수 없는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이렇게나 가까운 곳에 있는데 만나지도, 말을 걸지도 못한다는 안타까움이 느껴졌습니다. 통일 전망대에는 조국의 통일을 기원하는 뜻을 작성하는 통일 염원실이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 저도 상생기자단의 이름으로 통일을 염원하는 글을 붙이고 나왔답니다.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의 소원은 항상 통일이니까요.'

 

 

 

 

 

 

 

 

 

 

 

 

 

 

이 기사는 2011/6/7, 정부부처 블로그 위젯 [정책공감]에 소개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유익한 기사로 찾아뵙는 통일 미래의 꿈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