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이라는 거대담론과 '페미니즘'의 통섭
안녕하세요!
상생기자단의 센스쟁이 정윤재 기자입니다.
통일포럼을 알리는 포스터 색깔, 이 글의 배경, 그리고 글자색까지 ! 환상의 3박자 깔맞춤으로 글을 시작하겠습니다 ;)
11월 24일, 기자가 재학중인 동국대학교에서 '대학생 통일포럼'이 열렸습니다. 항상 기사거리를 찾아 헤매는 물고기에겐 아주 좋은 미끼였고, 덥석 물었죠.
본 기사 '대학생 통일 포럼 시리즈'는 크게 2편으로 구성될 예정입니다. 강연은 3시간 남짓 이어졌지만 정말 많은 내용들이 있었기에 전달하고 싶은 내용도 많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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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에는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약 50여 명 정도 모여 높은 열기를 실감케 했는데요. 사회를 맡은 북한학과 부학생회장 김덕우(07학번)씨는 연평도 사상자에 대한 조의를 표하고자 짧은 묵념을 제안하며 포럼의 시작 종을 울렸습니다. 곧 한철우 북한학과 학생회장의 발간사가 이어졌습니다.
한철우 씨는 지난 2000년에 있던 6ㆍ15 남북정상회담 때 금방이라도 통일이 될 것만 같았으나 최근 발생한 북한의 도발로 인해 그 날의 설렘과 기대는 이제 아련한 기억으로만 남아있다고 하며, 경색된 남북관계 속에 국민들 일상에서의 북한이나 통일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사라져감을 안타깝게 바라봤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새 천년을 함께 일궈나갈 파트너' 라고 표현하며, 통일을 이룩해야 할 당위성을 민족에서만 찾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므로 요즘 시대 관심에 부합하는 '전쟁위협 해소'나 '경제적 번영'을 통일 당위성의 요소로 꼽았습니다. 한편 국민들의 통일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적인 시선을 해결해야 할 과제로 여기며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통일 정책을 제시-실행하는 정부/시민단체/국민들 3자간 소통의 부재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박순성 북한학과 주임 교수는 축사에서 '제일 좋은 교수는 학생으로 하여금 고민하도록 만드는 교수' 라며 '오늘의 포럼이 평화와 통일뿐 아니라 다른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하도록 만드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성균관대학교 정현백 교수님을 소개하셨는데요. 그럼 이제부터 이날 열린 포럼의 하이라이트! 정현백 교수님의 「통일 평화 운동과 젠더」강연 내용을 전달해드립니다.
여권신장 운동하는 멋진 남성?
정현백 교수님은 현재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로 계시며, 『여성사 다시쓰기』·『민족과 페미니즘』등의 저술활동을 통해 여성의 권리 신장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교수님은 강연에 앞서 자신의 성명을 소재로 위트를 던지셨습니다. " '정현백'하면 꼭 남자 이름 같아서, 사람들이 제 이름과 여성운동 경력만 놓고 보며 '아, 이렇게 멋진 남자도 있구나' 하고 착각하더라구요. (호호)"
젠더와 사회의 상호 연관성
젠더(gender)란 사회 문화적인 성 관념으로서, 생물학적인 성(sex)과는 구분되는 개념입니다. 즉 성차(性差)로 인해 사회 문화적으로 여러 차별이 생깁니다. 흔히 성불평등이라고 하면 피해자를 여성으로 보는 시각이 많지만 실상은 양성 모두가 서로 가해자이며 피해자입니다. 그렇다면 젠더는 사회 작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한 예로 설명 드리겠습니다. 1990년대 들어 여성사 뿐만 아니라 남성사도 주목을 받았는데요. 미국의 제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아내에게 정신적으로 많이 의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역사가들은 루즈벨트의 '남성적인 면'만을 부각하여 그의 전기를 기록했으며, 비단 루즈벨트 뿐 아니라 다른 남성에 대한 기술도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갔기 때문에, 그 시대 남성에 관한 주류 성관념이 형성되었고 이에 벗어나는 남성성을 가진 남성들은 정치 사회적으로 여러 손해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사회 작동 기제로서의 젠더
그럼 다시, 왜 젠더일까요? 젠더와 통일, 젠더와 평화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일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정치든 경제든 이 세계는 모두 '젠더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젠더는 이 사회를 움직이는 '작동기제'입니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는 이데올로기를 통해 여성은 출산과 가사노동을 맡아 가정에 묶여 있도록 했습니다. 그러다 인력이 필요해진 산업사회 초반, 여성을 사회로 이끌어 내기 시작했지만 여성은 남성이 받는 임금의 1/2 뿐만을 받는 '노동시장의 분절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현재의 대한민국 사회에서도 대졸 남성은 비정규직이라도 취직하는 반면, 대졸 여성은 '알바생'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하네요.
이제 젠더와 평화에 대해 알아보기로 합시다.
전쟁의 성별화로 인한 영향에 대해 알고 계시나요? 전시 상황 속 남성성은 당연한 것으로 수용됩니다. '남성은 전쟁을 만들고, 전쟁에서 죽는다!' 그러나 전쟁은 여성에게도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데요.
1) 전쟁 피난민으로서의 여성
2) 전시 성폭력의 피해자로서의 여성
3) 전시 가정폭력의 피해자로서의 여성
4) 전쟁으로 인한 환경파괴, 그로 인해 감당해야 되는 여성의 몫
(예를 들면 아프리카에서 내전으로 인해 피난생활이 이어질 경우 물을 길어오는 건 여성과 아이의 몫입니다)
5) 군사비의 증강은 여성에게 돌아갈 복지비의 절감으로 이어짐.
이 다섯 가지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남성은 전쟁을 만들고, 여성은 평화를 만든다는 이분법적 시각으로 현재의 상황들을 바라봐야 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여성의 평화지향적 성향을 설명하는 데는 크게 두가지 접근 방법이 있는데요. 하나는 본질주의적 접근이고 다른 하나는 환경적 요인을 더 중요시 여기는 것입니다. '여성이므로' 본성적으로 평화를 더 사랑한다는 주장보다는 여성이 '돌봄노동'에 친화적이기 때문에 평화지향적이라는 설명이 더 납득이 가는군요.
가해자로서의 여성
한편 여성이 단순히 남성의 반대편의 선 피해자뿐인 것은 아닙니다. 즉, 가해자로서의 여성도 대두한 것이죠. 나치독일이 유태인에 대한 학살을 자행할 때의 독일 사회와, 조선의 여성들이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일본군에게 폭력을 당하고 있을 때의 일본 사회에는 페미니스트들(여권신장주의자)이 과연 없었을까요? 아니라는 겁니다.
오히려 그런 자신들이 아닌 '피해를 당해주는 대상'들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피해가 돌아오지 않음을 알고 그런 끔찍한 상황속에서도 묵인했던 탓이 있겠죠. 이렇듯 여성이라고 해서 언제나 피해자의 입장에만 서있는 것은 아니랍니다.
독일 통일과 여성
독일 통일 후 동독 지역 여성 일자리는 무려 40-45% 감소 했으며 여성의 실업률은 13배 증가했다고 합니다.
고용시장이 어떻게 이렇게 큰 수치로 악화된 것일까요? 열쇠는 탁아소의 운영주체에 있습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지역에 단 한 명의 아이만 살더라도 그 아이를 위해 국가가 탁아소를 지어줘야 합니다. 하지만 통일 독일에서의 탁아소는 자본주의 영리 경영으로 운영되었고 탁아비가 상승하게 됩니다. 탁아소를 이용할 수 없을 만큼 경제적 능력이 부족해진 여성들은 직장을 포기합니다. 또한 남아있던 여성들마저도 기업의 불안정한 상황속에선 정리해고 1순위자로 전락하고 말죠. 경제적 능력의 저하로 인해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은 크게 약화 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되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통일 독일 사회에서는 낙태가 법으로 금지됨에 따라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한 자율권을 상실하는 바람에, 원치 않는 아이를 출산하기 싫어하는 여성들의 자살율도 크게 증가했습니다. 통일독일에서 자살자의 70%이상이 여성이었으며 그 중 90%이상이 동독 출신의 여성이었다고 하니, 체제 변환으로 인한 여성의 피해가 얼마나 큰지 절감할 수 있습니다.
통일 운동의 주체로서의 여성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여성은 통일 후에도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아래의 여섯 가지 항목과 같은, 통일 운동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를 필요로 합니다.
1) 여성 남북교류의 시작
2) 군축 및 방위비 삭감 운동
3) 북동포 돕기 운동
4) 평화 교육의 실천 및 확산
5) 북한 이탈 여성 주민 돕기 위한 활동
6) 정책 결정 과정에의 주도적 참여
3번의 경우 예를 들어 종교단체에서 기부 모금을 전개하면 여성들이 현장에서 발로 뛰어 모금을 해도 실제로 기부금을 전달할 때면 '여성'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종교'의 이름만 온전히 남는다는 것입니다.
4번의 경우, 평화 교육이란 다른 어떤 거창한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북한이탈주민들에게 친절하고 평화적으로 대등하게 대해주는 행동의 확산을 의미합니다. 북한이탈주민이 많이 거주하는 서울의 어느 지역에서는 아파트 주민들이 북한이탈주민때문에 집값이 하락한다 하여 아파트 단지 내에 그들의 추방을 외치는 현수막 까지 나붙었다고 합니다. 이런 이기주의적 행동에 더 분노를 일게 하는 것은 북한이탈주민들이 그러한 현수막을 내건 사람들에 대해 저항을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떡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돌렸다고 하네요. 이런 일이 두 번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5번의 경우도 부연 설명을 하자면 탈북과정에서 북한 여성들이 당하는 인권침해가 엄청날 뿐 아니라 2, 남한 사회 내 가부장적 가정 안에서 억압받으며 받는 피해 정도가 심하지만 그런 것을 외부로 알릴 경우 오히려 탈북자 사회가 욕을 먹을까봐 어디 한 곳 의지할 데 없이 꾹꾹 참고 지낸다고 합니다.
유엔 안보리 1325 조항에 대해 들어 본적이 있는가
2000년 유엔안보리 1325 결의안은 "갈등의 예방과 해결 그리고 평화 건설 과정에서 여성 역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평화와 안보의 유지와 중진을 위한 모든 노력에 여성의 동등한 참여와 온전한 개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important role of women in the prevention and resolution of conflicts and in peace-building and stressing the importance of their equal participation and full involvement in all efforts for the maintenance and promotion of peace and security." )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3
결의안 내용
- 무력 갈등 지역에서 여성 보호를 증진시키기 위해 각국과 유엔
그리고 모든 관련자(비 국가 행위자들, 군사 관련자들, 인도주의 기구들, 시민사회)들이 취해야 할 조치들을 설명.
- 유엔의 가장 강력한 기구가 공식적으로 평화 과정과 평화 합의 이행 과정에
시민 사회(특히 여성)를 포함시키도록 보증
이 결의안은 효력을 지는 국제법입니다. 따라서 이 결의안은 관련된 모든 상황에서 인용되고 사용될 수 있습니다.
세계 23개의 국가가 위 결의안에 대해 'action plan(시행 계획)'을 발표했다고 합니다만 정현백 교수님의 발언에 따르면 안타깝게도 평화가 절실한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의 정부 관계자들은 action plan이 무엇인지도 잘 모른다고 합니다. 아울러 이러한 시행계획 뿐아니라 여성들에 의한 6자회담도 필요합니다.
통일부 내 여성 전담기구 설치 필요해
정 교수님이 속해 계신 한국여성단체 연합에서는 통일부에 끊임없이 여성전담 과를 개설할 것을, 과 단위가 아니더라도 작은 부서 하나만이라도 만들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그러한 요구가 시작되고 10년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합니다. 정 교수님은 이에 대한 방안으로 여성 국회의원들을 움직여 2011년 2-3 월에 열릴 국회에서 외교통상위 또는 통일부를 상대로 대정부 질문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준비 없는 통일은 성매매 여성의 양산을 유발
교수님이 속한 단체에서 경기도 내 성매매 여성의 수를 집계해봤다고 합니다. 방법은 간단하죠. 직접 남성들을 '풀어' 조사하고, 집장촌의 주변 상점에 물어보면 그 수가 거의 정확히 들어맞는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집계 결과는 100만에 달했다고 합니다. 자그마치 경찰 측 집계수의 7배가 넘는 수치였죠. 이러한 상태로 통일이 된다면 북한 여성들이 성매매 여성으로 전락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다른 100만 명이 생기는 건 시간 문제라고 할 수 있죠.
일상생활 속에서 '휴머니즘'을 살리자
교수님은 독일 등 외국에서의 생활 경험을 비춰 대한민국 사회를 바라 볼 때 우리의 삶이 지나치게 경쟁적이며 폭력적이며, 안타까운 것은 그런 상황에 무뎌져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채 국민들이 살아간 다는 것입니다.
단편적인 예로 장애우를 위한 학교를 설립하려 할 때 거세게 반발하는 지역 주민들, 동문회 차원에서 반발하는 주변의 학교의 모습을 보며 '대한 민국의 미래는 없다'고 탄식했던 적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위압적인 군대문화도 빼놓을 수 없죠. 더 가깝게는 출퇴근시 지하철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여러분들의 주위를 둘러보세요. 사람들과 시선이 마주치면 상대가 인상을 쓰고 있지는 않던가요. 그게 왜 문제인지도 모를 만큼 우리의 삶은 각박해져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소극적 평화, 적극적 평화
G20과 같은 거대한 국가 간 회의의 의장국이 되었다고 해서 일 순간에 국격이 상승하는 것이 아닙니다. 휴머니즘이 살아있는 국가야 말로 참된 선진국입니다. 우리와 같은 말씨를 쓰는 사람들이 불과 수십 km 떨어진 지역에서 지옥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데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것은 지독한 폭력이며 반(反)평화적 행위라는 사실을 떠올립시다.
이제는 우리나라에 보수-진보간 허무하고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기를 그만두고, '어떻게 하면 평화로운 대한민국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과 같이, 거대 담론이 옮겨가야 할 때가 아닐까요.
평화의 종류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습니다. 가시적 폭력이 없는 '소극적 평화(negatie peace)'의 상태와, 환경파괴나 빈곤과 같은 구조적이고 잠재적 폭력이 없는 상태를 지향하는 '적극적 평화(positive peace)'의 상태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평화를 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시간이 온 것 같습니다.
행동합시다, 여러분. 우리의 삶의 매 순간에서.
- 페미니즘이란, 여성억압의 원인과 상태를 기술하고 여성해방을 궁극적 목표로 하는 운동 또는 그 이론을 일컫는다. [본문으로]
- 이 사실에 대해서는 이미 언론에 보도가 많이 된 바 독자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하지만 한 가지 사례를 덧붙이겠다. 북한에서 중국으로 넘오는 과정에서 브로커에게 강간을 당한 한 여성은 임신을 한 사실을 알았지만 주민등록도 없고 의료 보험도 없는 탓에 낙태가 불가하였다. 이는 전체 인권 침해사례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음을 다시 한번 알려두는 바이다. [본문으로]
- http://blog.daum.net/unnie21/13161527 참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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