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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현장과 사람

대학생 기자단을 울린 이산가족 상봉 현장

 

 

 이번 이산 가족 상봉 행사를 통해

헤어져 있던 가족을 다시 만난 97 가족 모두 저마다의 사연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떄문에 상봉장에는 아흔 일곱개의 슬픈 이야기들이 존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야기가 있는 곳에는 기자들이 있고

상봉장에는 다양한 신문사와 방송국에서 나온 기자들이 한껏 취재 경쟁을 벌였습니다.

마지막날 작별 상봉의 경우 가족들의 이야기를 곁에서 듣고있던

기자들까지 울면서 취재를 할 만큼 슬픈 사연들이 많았습니다.

 

상생 기자단 역시 2박 3일의 상봉이 진행되는동안 다양한 사연들을 마주하고

전쟁과 이념이 갈라놓은 가족들의 기구한 운명에 눈물 지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1.

 

 

위 사진에 등장하는 분은 저희와 함께 차를 탔던 분으로

함께 오지 못한 손녀딸의 영상을 캠코더에 담아와 아버지께 보여드리고 계십니다.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미국에서 오신 이 분은

건강이 좋지 않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어릴적 헤어졌던 아버지를 보기 위해

힘들고 긴 여행을 하셨는데요. 

사실, 첫 상봉 이후 저희와 대화를 했을 때는 다양한 감정으로 혼란스러워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한 번의 짧은 만남으로 지금 만난 사람이 "아버지"라는 벅찬 감동을 느끼시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 떨어져 계셨던 것이지요.

 

그러나 마지막 작별 상봉 때 눈물을 보이시며 버스 유리창 너머로

"아버지, 건강하세요." 라고 절절하게 외치던 그 분의 모습을 저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2.

 

 

 

다음은 너무 닮아서 누가 봐도 '아 가족이구나'란 생각이 드는 행복한 5형제분의 모습입니다.

 

 

스무살 때 6ㆍ25가 발발하고 국군에 입대했던 형은 전쟁 통에 사라지고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60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 형에게서 '살아있다. 만나자'라는 연락이 온 것이지요.

 

동생들은 북측의 큰형님에게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볼도 부벼보고 만져보고 서로 정말 똑같이 생겼다며 즐거워하고 계셨습니다.

 

동생들은 60년 전 항일 운동에 나서고, 국군에 자원할 정도로

씩씩하고 용맹하고 건장했던 스무살 청년이었던 형님이 

어느새 여든의 노인이 된 것에 너무나도 안타까워 어쩔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너무나도 꼭 닮아있는 이 형제분들도 결국 여생을 함께 하지 못하고

다시금 헤어져서 기약없는 세월을 보내야한다는 사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안타깝고 슬픕니다.

60년 전에 일어난 전쟁은, 그것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우리에게도 슬픈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3.

 

 

이산 가족 상봉이 진행되는 동안 언론의 주목을 가장 많이 받은 가족분들의 모습입니다.

상봉 가족 가운데 가장 고령이시고 북측의 딸이 남측의 어머니를 찾은 드문 경우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가족의 아들(어머니와 아들은 남측, 딸은 북측 거주)이

바로 민주당 전 의원인 우원식 의원이란 사실로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1951년 1·4후퇴 당시 30살이던 어머니는 황해도 연백에 두고 온 10살의 딸이

60년이 흐른 지금, 90세와 70세가 되어 만났습니다.

 어머니는 노환으로 5년간 외출도 하지 않아 오다가 

딸을 만나기 위해 당신의 목숨을 걸고 금강산을 향해 멀고 먼 길을 올랐습니다.

 

 

북측에서 온 딸은 어머님께 북한에서 받은 훈장과 상장들, 가족 사진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린 딸을 북한에 두고 온 죄책감에 살아온 어머니는 이것을 보고

그래도 딸이 북한에서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한 시름 놓입니다.

 

 

누가 봐도 꼭 닮은 모녀는 서로의 손을 맞잡고 있습니다.

3일간 느꼈던 이 손의 체온은 언제 다시 느끼게 될 지 아무도 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가족들의 사연 하나하나를 마주할 때마다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이 저희를 짓눌렀고

하루 속히 통일을 해야하는 당위성을 구구절절 나열할 필요조차 없던 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남측과 북측의 가족들은 작별하기 전에 서로의 가족사진을 보여주며

얼굴과 이름, 관계를 짚어주었습니다. 

통일이 될 날을 기다리며 자기 세대에는 불가능 하더라도

자손 세대에는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지금의 이산 가족 분들이 살아계실 동안에 통일을 이루어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통일을 해야할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저 곳에 계신 가족분들을 비롯한 8만명이 넘는 이산 가족들의 애환 섞인 피눈물을 닦기 위해서

그리고 이산 가족들의 가족들까지 대대로 이어지는 전쟁의 상흔을 덜기 위해서라도

통일은 하루 빨리 앞당겨져야 할 민족의 숙원사업이라는 것을 깨달은 자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