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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현장과 사람

대학생 기자단이 금강산에서 담아온 이산가족 상봉 현장 ①

 

 

[이산가족 상봉 현장을 가다!!]

 

 

 

 

 

 

 ▲이산가족 상봉장의 모습

 

2010년 10월 30일부터 시작된 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

총 2차로 나뉘어 진행된 이번 행사는 60년간 헤어져 지내온 가족들이

그들을 갈라놓은 선을 넘어 꿈에도 그리던 재회를 하는 자리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3일,

가족의 생사도 모른 채 60년을 지내온 많은 가족들의 3일간 짧은 만남은 재회의 기쁨보단

반쪽짜리 한반도의 현실에 애달프기 그지없었고, 또 다시 시작된 그들의 기약 없는 이별에 서글프기만 했다.

 

 

 

 

금강산 면회소에서 진행된 1차 상봉행사에 동행한 상생 기자단이 겪은 지난 3일간

첫번째 상봉 이야기를 이 몇줄의 글과 몇 장의 사진으로 고스란히 전하기엔 나의 능력밖의 일임을 알고 있다.

만남이 기쁠수록, 헤어짐의 슬픔이 더욱 더 커지는 이산가족 상봉행사.

금강산 면회소에서 2차 상봉행사가 진행되는 지금,

이산가족의 이름으로 개별화된 많은 슬픔들이 더 이상 개인의 아픔으로 남는 것이 아닌 한반도 전체를 울리는 아픔이 되기를... 그리고 이 아픔이 행복하고, 하나된 한반도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길 바라며 몇 줄 적어본다.

 

 

 

 

 

 

 

<2010년 10월 29일 - 2010년 10월 31일>

 

 

▲상봉전날 이산가족 등록모습

(2시부터 시작되는 등록절차가 2시가 되기전에 이미 80%정도 완료되었다.

그만큼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가족을 볼 수 있다는 설레임을 느낄 수 있는 모습이었다.)

 

 

 

 

 

 

 

 

 

남측 가족들이 북측 가족을 위해 준비한 선물들

남측가족들이 북측 가족을 위해 준비한 선물은 대부분 혼자서는 들수도 없을 만큼 무거운 것이었고, 이날을 위해 하나하나 손수 사고, 준비한 것이었다. 이 작은 선물꾸러미 하나로 지난 60년간 못다한 정을 다할 수도, 그리움을 달래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가족을 향한 그들의 그리움과 마음은 충분히 알 수 있는 소중한 물건들이었다.

 

 

 

남과 북의 경계에서 바라본 한반도의 하늘엔 휴전선은 존재하지 않았고,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하기만 했다. 그 평화로운 하늘과 대비되게 60년이라는 세월은 이산가족들에게 흐리고 답답했기에, 상봉 당일의 눈부시게 깨끗한 하늘이 오히려 야속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부디 묵히고 묵힌 恨으로 꽉 막힌 많은 가족들의 가슴이 그 하늘을 외면하기만을 바라며, 버스는 쉬지 않고 금강산을 향해 갔다.

 

 

 

 

▲첫 상봉의 시간, 북측가족을 애타게 찾는 남측가족들의 모습

 

첫 상봉의 시간. 가족을 조금 더 빨리 찾기 위해 테이블 위에 숫자 푯말을 들고 있던 남측 가족들의 모든 눈은 북측가족이 들어오는 문쪽으로 쏠려 있었다. 긴장감도 잠시, 북측가족들의 입장과 동시에 상봉장은 울음소리와 가족을 찾는 애타는 목소리로 뒤섞였다. 어느덧 작고 힘없는 노인이 되어버린 그들의 가족을 찾는 울음섞인 목소리에서 순간 60년 전, 전쟁 통에 가족을 잃고 애타게 찾던 젊은 그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60년전에 발발한 한국전쟁이 이젠 까마득한 옛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곳은 아직도 전쟁의 상흔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가족을 찾는 그들의 울음에서 한반도는 아직도 전쟁중임을, 우리나라가 분단 국가임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상봉장의 모습

가족을 만난 사람들의 모습은 슬픔과 그리움, 60년만에 가족을 만난 즐거움, 죽은 줄 알았던 가족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기쁨 등 서로 공존할 수 없는 여러 감정들이 뒤섞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처음 느껴보는 이 미묘한 감정에 가족들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다행히 슬픔의 감정보다 다시 만난 반가움과 기쁨의 감정이 더 커보였다.

 

 

 

 

 

▲맞잡은 손으로 이어진 가족

 

상봉이 진행되는 시간동안 가족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서로의 사진을 보며 지난날에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맞잡은 두손에서 지난 60년간 끊어진 가족이 다시 이어지는 듯 했고, 또 다른 한편으론 그 어떤것으로도 절대 끊어질 수 없는 가족을 의 모습을 보는듯 했다. 

 

 

 

 

 

<2010년 11월 1일.>

서로 갈라져 보낸 1분, 2분이 쌓이고 쌓여 어느덧 60년. 헤어져 보낼때는 하루가 천년같더니, 두 손을 맞잡고 보낸 3일은 이산가족에게 너무나도 짧았다. 마지막 날이 더디 오기만을 바라며 단 몇 초라도 더 붙잡아 두고 싶었지만 시간은 눈깜짝할 새에 흘러버렸다. 무엇이 그리도 애달픈 것일까, 지난 이틀 동안은 이산가족의 슬픔을 어림잡아 추측했지만, 마지막 날만은 지난 이틀과는 미묘하게 다른 상봉장의 공기에 동화 되어가고 있었다. 가슴 속 저 아래서부터 북받쳐 올라오는 서러움에 작별상봉을 하는 50여분의 시간동안 쉼없이 눈물을 흘렸으며, 500여명의 이산가족 앞에 나의 이 눈물은 죄스럽고 사치스럽기만 했다.

 

 

 

 

 

2010년 11월 3일, 오늘부터 2차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진다. 내가 다녀온 1차 상봉 현장 만큼이나, 금강산은 또 한 번 울음과 그리움으로 메아리 칠 것이다. 2박 3일의 짧은 만남으로 60년간 가족을 기다려온 많은 사람들의 恨을 온전히 위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나의 가족이 같은 하늘아래 같은 한반도 위에 살아 숨쉬고 있다는 사실이 그들의 가슴에 아주 작은 위안이라도 되길 바랄 뿐이다.

 

 

남쪽에서의 평화로운 삶과 금강산의 아름다운 풍경은 이산가족 상봉의 모습을 더욱 서글프게 했다. 그리고 야속하게 아름다운 금강산의 모습을 모두들 할 말을 잃은 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휴전선을 사이로 서로를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이 땅의 수많은 이산가족이 온전한 한반도 위에서 지난 세월의 회포를 푸는 시간이 빨리 앞 당겨지길 소망하며, 수많은 이산가족의 슬픔 앞에 몇 자 적어 내린 이 글을 마친다.

 

 

 

To be continued...

 

 

 

 

 

 

 

 

*이 기사는 통일부 상생 기자단 중 2명의 대학생을 선발하여

금강산에서 열린 '1차 이산가족 상봉 현장'에 그들이 직접 참여하며 작성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