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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현장과 사람

남으로 온 화가들, 북으로 간 화가들

 

고양아람누리 아람미술관

6.25전쟁 60주년 특별전

 <고향을 떠나야 했던 화가들>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7월의 여름, 상생 기자단은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고양 아람누리아람미술관에서 열린 <고향을 떠나야 했던 화가들>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6ㆍ25 전쟁 60주기를 기념하여 진행되는 본 전시회는 고양시가 후원하며, 고양문화재단이 주최가 되어 지난 6월 25일 부터 시작되어 9월 26일을 막을 내린다고 합니다.

 

 

 

   

    지하철 3호선 정발산 역에서 내려 7번, 아람누리 출구로 나가면 바로 보이는 전시관 입구 사진입니다. 회색 구름은 늦은 오후가 되서야 어설프게 빗방울을 떨어뜨리며 심술을 부리고 있습니다. 사진 한 장 찍고 재빠르게 미술관 입구로 향했습니다.   

 

 

    전시관에 들어서니 안내 데스크 옆으로 어린이들을 위한 체험관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지금은 교과서에서나 볼수 있을 법한 팽이치기를 하며 놀던 그 때 그 시절의 경험을 느끼게 해주는 곳입니다. 종이 위에 물감과 붓 대신 흙과 나뭇가지를 사용해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습니다. 저 뒤 쪽으로 6ㆍ25 시절 임시 배움터를 재현해 놓았습니다. 형형색색의 펜으로 커다란 스케치북 위에 자기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고 난 뒤 뒷장으로 '가볍게' 넘겨버리는 교육을 받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것 같습니다. 옛 시절 흙 위에 그려낸 동심은 무엇이었을까 참 궁금합니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새하얀 스케치북 위에 그려낸 그 마음과 한결같을 거란 생각도 듭니다.

 

    전시회의 첫번째 순서는 '남으로 온 화가들'입니다. 이곳에서는 북쪽 고향땅을 놔두고 남쪽으로 내려온 화가들의 작품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빨래터>로 유명한 박수근 작가의 작품도 보입니다.

 

    너른 공간의 중심에 서서 보니, 각각의 작품이 마치 하나의 정신을 표현하는 것 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림 하나하나를 자세히 보는 것도 좋지만, 멀찌감치 떨어져 공간 자체를 느끼는 것도 묘한 매력이 있었습니다. 소중한 작품들의 '아우라'가 모이고 모여, 거대한 공간에 역사를 가두어 놓은 느낌입니다. 작품마다 액자틀이 제각각인 이유는 이번 전시를 위해 전국 방방곡곡에서 공수해온 그림들을 모아놨기 때문 입니다. 그만큼 이번 전시회에서는 소중한 작품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저작권을 해칠까 우려되어 그림을 가까이 찍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어차피 사진으로 올렸어도 전시 공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느낌은 받을 수 없었을 겁니다. 엉덩이 붙이고 앉아 감상하는 작품과 두 발로 너른 공간에 서서 두 눈으로 진지하게 작품을 맞이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지 않을까요.

 

 

    가장 아쉬운 느낌이 많이 든 순서, '북으로 간 화가들'입니다. 우리는 '북으로' 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많은 작가를 한국 미술사에서 지워야 했으며, 작가와 작품에 깃든 정신 마저 '북으로' 떠나 보내야 했습니다. 전쟁이 갈라 놓은 물리적 거리는 현재 북으로 간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되면서 한걸음에 달려갈 수 있는 짧은 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몸은 다신 남으로 오지 못했으며, 오직 그림과 사진만이 이곳에 전시 되어있는 점은 큰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6ㆍ25는 그렇게 화가들을 갈라 놓았지만, 그림을 탄생시키기도 했습니다.

 

    앞서 두 순서가 6ㆍ25를 담아낸 그림이 아니었다면, 이번 섹션에서는 전쟁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해낸 그림을 모아 두었습니다. 군인을 그려 실제 전쟁통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도 있는가 하면, 힘겨운 피난 행렬을 감각적인 유화로 표현해 낸 그림도 있었습니다. 지게꾼과 강아지의 갈비뼈 그리고 굽은 어깨를 통해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요.

 

    <이수억, 6.25동란, 1954, 캔버스에 유채, 개인소장> 

 

    아람누리를 나오며...

 

   

    전쟁을 겪지 않은 젊은이들의 가슴에 통일은 '무지개 빛 희망' 입니다. 38선을 넘어가 보지도 못했고, 비무장 지대 너머 무엇이 있는지 상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우린 '통제된'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청년의 가슴에 통일은 명확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은, 유토피아. 그런 유토피아를 갈망하는 '무지개 빛' 일 수 밖에 없습니다. 언제나 적당히 안타까워 하고, 어른들의 말을 듣고 적당히 시시덕 거리기만 했습니다.

 

    반면 전쟁을 겪은 세대에게 통일은 '무채색 꿈' 일 겁니다. 그렇게 화려하지도, 그렇게 아름답지도 못한, 단지 그리움으로 채색된 그림 말입니다. 그러나 전쟁 세대가 꿈꾸는 통일은 청년들이 다 큰 머리로 선진국 도약의 발판 쯤으로 '계산'해내는 것 이상의 가치를 지닙니다. 이제 허리가 굽기 시작한 수 많은 어르신들에게 통일은 '이해 관계'가 빠져버린 순수한 동심입니다. 그것은 벌거숭이 아해들과 다를 바 없는 깨끗한 마음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깨끗한 마음으로 임합시다. 허황된 '무지개 빛 희망'이 아닌 '무채색 꿈'을 갖고 살아갑시다. 완성되지도 않은 그림을 형형색색, 덕지덕지 채색하기 보다 조금 더 낮은 자세로, 조금도 숙연한 마음으로 통일을 다시 생각하며, 큰 밑그림을 그려냅시다. 차디찬 '국면'을 연장시키지 말고 끊어 나갑시다. 언론이 쏟아내는 수 많은 수사를 떨쳐 내고 미래를 이야기 했으면 좋겠습니다.

 

    너저분한 현실이라지만 청년이 꾸는 꿈마저 불결해선 안 됩니다.

전쟁세대의 현실과 아픔을 덜어줄 수 있는 현실적인 힘을 가진 사람은,

조용히 웅크리고 앉아 자신의 텃밭에서 꿈을 자작해 내는, 이 글을 읽는 당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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