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자와 강기자,
오두산통일전망대를 가다!!
분단된 지 6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통일에 대한 관심은 점점 더 낮아지는 반면 부정적인 인식은 커지고 있습니다.
이에 통일에 대한 의미를 다시 되새겨 보고자
오두산 통일전망대를 찾은 이기자와 강기자!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와 현 상황에서
통일전망대가 가질 수 있는 의미를 되짚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두산 통일전망대는?>
오두산
통일전망대는 해발 118m인 오두산 정상에 위치해 있으며, 삼국시대 고구려와 백제가 세력 확장을 위해 치열한 격전을 벌였던 관미성터(오두산성)로 역사적인 군사 요충지이며, 지금은 서부전선의 최전방 지역으로써 임진강을 경계로 남북이 마주 보고 있는 안타까운 분단의 현장입니다.통일전망대에서는 북녘의 산야와 함께 주거 모습, 영농 등 북한 주민의 생활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으며, 북한이 제작한 계절춤 등 영상물의 시청, 컴퓨터를 통한 통일 및 북한 관련 자료 검색, 그리고 700여점의 북한 물품과 전시패널을 통해 통일 문제 및 북한 실상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오두산 통일전망대의 모습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김학무 운영팀장님
이정환기자: 내가 여기 와서 가장 놀랐던 것은 일본, 중국 관광객이 많았던 사실이야. 세계에 단 하나뿐인 분단국가이기 때문에 그들에게도 신기하게 다가오는 것이겠지. 대부분의 방문자가 가족 단위였던 것도 인상 깊었어.
오두산 통일전망대를 통해 아이들에게 통일과 분단의 상황을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역사적 교육 현장으로 활용하고 있더군.
처음 망배단을 보았을 때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는데 운영팀장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 한 번 보니 왠지 가슴이 뭉클하더라.
▲망배단의 모습
강세미기자:
팀장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잠시 생각했던 것이 있어. 현재 실향민 1세대가 많이 돌아가시고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앞으로 통일을 이끌어갈 다음 세대들이 통일을 이룰 주역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여러 가지 요인들이 이겠지만, 내 생각에 이런 문제는 교육적 측면에서 가장 강하게 작용하는 것 같아. 그래서 오두산 통일 전망대와 같은 분단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곳에서 통일 교육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 하는 것이 어떨까 싶어.
[동영상:4]
▲사단법인 새롭고 하나된 조국을 위한 모임 조광호 대전지부 사무국장
이정환기자:
새롭고 하나 된 조국을 위한 모임(이하 : 새조위)이라는 NGO단체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 북한에서 탈북한 사람들의 의료, 상담 등을 도와주고 있는 단체라고 소개하셨지.북한에서 5년 전에 내려오셨다는 사무국장님은
이렇게 가깝지만 서로 왕래하지 못하는 현실에 너무나 안타까워 하셨어.
강 건너 북한의 모습▶
강세미기자: 통일전망대에서 만나본 분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야. 실제로 북한이탈주민을 만나는 것이 처음인데, 짧은 시간동안 얘기를 나누면서 본 그 분의 눈빛이 아직도 잊혀 지지 않아. 수영으로도 충분히 건너갈 수 있는 거리를 서로 오가지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애석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그 분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하더라고. 마음 속으로 ‘통일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들었어.
▲전후 1세대 실향민 할머니
이정환기자:
우리 가족은 실향민이 아니기 때문에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만난 전후 1세대 실향민 할머니의 모습을 보니 통일이 왜 이루어져야 하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어. 개인적으로는 이분들이 살아 계실 때 꼭 통일이 되어서 헤어져 있던 가족들을 만나길, 서로 부둥켜안고 못다한 이야기를 밤새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지. 분단을 직접 경험하고 자신의 고향을 잃어버린 이분들이 돌아가신다면 과연 우리는 통일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난 그냥 실향민에게는 고향, 가족, 친척을 돌려드리는 게 통일이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거라고 생각해.
강세미기자:
이 분에게 인상 깊었던 점이 있었다면 바로 남쪽 어느 지역에서도 들을 수 없는 사투리를 쓰고 계셨다는 거야. 그래서 할머니께서 한 말씀, 한 말씀 하실 때마다 뭔가 가슴에서 묵직한 것이 올라오더라고. 가족들은 모두 북쪽에 남겨두고 홀로 남쪽으로 시집와서 사신지가 벌써 반 세기가 넘다보니,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삭을 때로 삭아서 이제는 덤덤하게 까지 느껴지는 모습에서 도대체 이분들이 무엇을 그리 잘못했기에 사랑하는 혈육의 생사도 모른 채 살아가야하는 걸까, 이런 기가 막힌 현실이 빨리 해결되길 마음속으로 조용히 빌었지. 더불어 앞으로 내가 해야할 일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어.
▲일반인 인터뷰
▲아이들이 외치는 통일
<오두산 통일전망대를 다녀온 후,>
서울에서 한 시간 거리 밖에 되지 않는 통일전망대 취재를 준비할 때만 하더라도 그곳에서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습니다. 카메라 두 대를 들고 가벼운 마음으로 떠난 취재는, 눈 앞에 펼쳐진 북한의 모습을 배경으로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사연과 함께 분단의 현실을 우리의 피부에 와 닿게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을 직접 만나 많은 얘기를 듣고자 했고,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과 나눈 대화는 너무나도 값진 것이었습니다. 통일에 대한 인식도 부족했고,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남북관계나 통일 문제에 관해서는 문외한이나 마찬가지였던 우리였기에 많은 사람들을 만날수록, 그들과 나누는 대화가 많아질수록 통일에 대해 무관심했던 것에 대해 많은 후회를 했습니다. 개인들의 문제라고만 생각했던 것이 너무나 부끄러웠고, 동시에 통일문제는 개개인이 감당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우리 민족 모두가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하는 문제임을 다시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와 같은 젊은 세대들이 이 문제를 함께 나누고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분단의 시간이 너무 길어 대부분이 통일에 대해 회의(부정)적인 시각을 가지지 않을까란 생각은 기우였습니다. 우리가 만난 많은 사람들, 심지어 어린이들조차 통일은 꼭 이루어진다고 말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믿음과 함께 우리가 현장에서 느낀 많은 것들은 스스로에게 통일의 당위성에 대한 기폭제로 작용하였습니다. '통일 미래의 꿈'이 '통일 현실'이 되는 그날까지 우리의 취재는 계속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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