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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최북단, 임진각을 가다

 

남한 최북단, 임진각을 가다

 

 

 

 설을 맞아 ‘남북관계 완화’라는 새해 소망을 가슴에 안고 분단의 상징인 임진각을 찾았다. 북한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새해 소원을 빌어보고자 남한 최북단인 장소를 택한 것이었다. (임진각은 판문점을 제외하고, 일반인이 갈 수 있는 남한 최북단이다) 며칠 전 우리 상생기자단은(1월13일) 신년맞이 앙케이트 행사를 진행했었다. 그 때 앙케이트 주제 중 하나였던 ‘북한 주민들에게 신년 메시지 적어보기'에 사람들이 적었던 메시지들을 읽어 보았기 때문일까? 남한 국민들이 북한 주민들을 떠올리며 손 수 적어준 메시지를 북쪽에 전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더불어 임진각이 단순한 데이트 장소, 출사장소가 아닌 6.25전쟁의 상처와 남북분단의 아픔이 고스란히 스며있는 의미 있는 장소임을 되새기고자 그리고 소개하고자 임진각 행 통근열차에 몸을 실었다.

 

 

  상생기자단의 친절한 설명과 함께 동행해보자.

준비물: 카메라,(+폴라로이드 카메라), 정성스러운 도시락, 기차 안에서 오고가며 먹을 과자, 음료수, 귤 등의 간식 소량. 포스트 잇, 사인펜, 추위를 이겨낼 수 있는 따뜻한 잠바 (봄, 가을에 가면 춥지는 않을 테니 겨울에만 참고 하세요.^^)

 

가는 방법: 서울역에서는 매시 50분마다 있으나 30분에 출발하는 시각도 있으니 시간을 확인해보고 열차표를 구매해야한다. 서울역 외에도 신촌기차역, 수색역, 행신역, 대곡역, 일산역 등에서도 열차를 탈 수 있으니 가까운 역을 찾아 표를 구매하면 된다. (주의사항: ‘임진각역’이 아니라 ‘임진강역’이다.)

기차표 가격: 상행, 하행 모두 1400원

소요시간: 서울역  출발  1시간 20분

 

 

 처음 타보는 통근열차의 모습은 굉장히 새로웠다. 기차에서 볼 수 있는 2인석과 함께 일반 지하철과 같은 기다란 의자도 있다. 자리는 자유석이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으면 된다. 가는 동안 먹을 간식거리를 싸 가면 심심한 입을 달랠 수 있다.

열차가 달리는 동안, 북한과 가장 가까운 곳을 향해 가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였고 열차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이야기 꽃을 피우다보니 어느새 임진강역에 도착했다.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것은 임진강역 표지판이였다. ‘임진강역’ 이라는 글자 아래로 ‘평양’과 ‘서울’이 각기 다른 방향을 나타내고 있었다. 지하철을 이용하며 항상 봐 온 표지판 모양이지만 ‘평양’이라는 글씨와 ‘서울’이라는 글씨 중앙에 그어져 있는 선이 남북 분단의 현실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아 코끝이 찡했다. 이 열차를 타고 그대로 평양까지 달려 “다음 정차역은 평양입니다”라는 승무원의 안내방송을 듣고 싶었다.

 

 

 

 임진강역을 통과하자 역사 한쪽 벽면에 다닥다닥 붙여져 있는 포스트잇이 보였다.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대부분의 포스트잇 색깔이 변질되어 있었고, 먼지가 눈에 보였다. 심지어는 거미줄까지. 이곳에 들른 사람들이 고이 적어준 통일염원쪽지는 이렇게나 오래 되었는데, 그 염원은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염원이 영원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우리 기자단도 통일을 기원하는 메모를 남겨보았다. 샛노란 개나리 색의 포스트잇이 빛이 바랄 때쯤에 남과 북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TIP: 임진가에 방문할 때엔 눈에 잘 띄는 싸인펜과 함께 포스트잇을 꼭 챙겨가세요.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야외에 전시되어 있던 군장비 들이다. 실제 6.25 때 사용되었던 탱크, 비행기 등의 군사 장비 12종이 전시되어 있었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피라미드 모양의 ‘경기평화 센터’였다. 아늑하고 아담하게 꾸며진 이 공간은 국제사회에 평화 메시지를 전달하고 남북관계의 변화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만든 교육관이었다. 환영의 장, 도입부, 갈등과 혼돈의 길, 화해와 상생의 길, 평화와 통일 이라는 주제가 발걸음을 따라 이어졌다. 어두운 벽면 한쪽에 쓰여 있던 시가 너무 인상 깊어 적어왔다.

 

 

분단의 상처 통일아, 어디만큼 왔니?

 

 

통일아!

통일아!

어디만큼 왔니?

철조망을 뚫고 앞산 너머까지 왔니?

혹시, 다리 아프다고 쉬고 있지는 않니?

 

 

(중략)

 

 

우리 모두의 마음 담아

너에게 편지도 쓰고 노래도 불러 줄게

힘들어도 한 발짝 한 발짝 우리에게 다가 오렴

 

활짝 핀 통일 꽃

한 아름 들고서

남과 북 얼싸 안고

널 맞을 마음

벌써부터 두근두근

 

 

 -평화센터 소망의 벽

 

 평화센터를 나오는 출구에도 포스트잇에 소망을 적어 붙이는 ‘소망의 벽’코너가 마련되어있었다. 아이들이 많이 다녀갔었는지 어린이들이 쓴 것 같은 메모가 눈에 띄었다. ‘빨리 통일이 되쓰면 좋겠어요’,‘전쟁이 이러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맞춤법도 틀리고 삐뚤빼뚤한 글씨였지만 그 메모가 그렇게 예뻐보일 수가 없었다. 어떤 어른들은 ‘우리 사랑 영원하길'‘ 원더걸스 짱’ 이라는 메모를 남기는 반면, 순수한 어린아이들이 소원으로 ‘남북통일’을 떠 올렸다는 사실이 감동적이었다. ‘이 아이들이 자라서 미래 통일한국의 주역이 되겠지’라는 생각을 가져보았다.

 소망의 벽에도 상생기자단의 통일염원메모를 남기고 나오는 길에 단란한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블로그를 소개할 겸 폴라로이드 사진기로 가족사진을 찍어드리며 어떻게 오게 되셨는지 여쭤 보았다.

 

 

 

 

 충남 당진군 신평면에 거주하고 계시다는 아버님

정성령 씨 (50)

Q: 멀리서 오셨는데 어떻게 이곳 임진각에 들르게 되셨는지요?

A: 며칠 전 1월 15일에 아버님이 돌아가셨어요. 아버님이 6.25에 참전하셨어요. 그래서 국립 현충원에 묻어드렸죠.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도 나고, 가족 여행 겸 해서 들러봤는데 좋습니다. 사진으로 보는 거랑 실제로 와서 보는 거랑 느낌이 많이 다르네요. 의미가 깊은 곳이니까요. 우리의 소원은 통일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소원은 통일 아니겠습니까?” 라고 말씀하시던 아버님의 굵직한 목소리가 인상에 남는다. 그렇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다. 남과 북이 하나 되는 것.

 

 

 임진각 전망대로 향해가다 보니 ‘임진’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그마한 상점이 보였다. 주인 아저씨께서는 가게 안쪽에서 손 수 엿을 만들고 계셨고, 우리 기자단은 상점 밖에 진열되어 있는 북한술에 신기해하고 있었다. 북한 맥주와 북한 소주가 수입되어 판매되고 있었다. 가게 안쪽으로 들어가 엿을 만드시는 아저씨의 모습을 폴라로이드 사진에 담아 드렸다. 가게에는 북한 우표나 돈과 같은 북한 수입품들이 판매되고 있었다. 어떻게 수입되는 것인지 여쭈어보았는데, 수입을 직접 하는 것이 아니고 북한물품만 수입하는 수입업체가 따로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우표나 돈을 살펴보니 역시나 김일성, 김정일의 사진이 곳곳에 담겨있다. 우표에는 천연기념물과 같은 상징할 만한 그림을 넣는 것이 보통이고, 화페에는 길이 새길만한 위인의 초상화를 담는 것이 보편적인 우리의 모습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수령이 우상화 되어있는 북한에서는 어찌 보면 그것이 당연한 것일 지도 모른다.

 8년동안 임진각에서 상점일을 하셨다는 아저씨께서는 “외국인들은 우리의 분단현실을 신기해하기 때문에 굉장히 많이 찾는다. 임진각에 들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좋지만 남북 관계가 안 좋은 요즈음 관계가 완화되어 화합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 북한특산물 전문매장 "임진"

 

 가게 앞에는 기차 검은색 페인트가 칠해 져 있는 기차 모형이 있었다. 기념비에 쓰여 있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문구를 한참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짧은 문장에 함축되어있는 뜻이 가슴속에 그대로 스며들었다. 운행이 중단된 경의선이 평양을 거쳐 시베리아까지 힘차게 달려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곧 그런 날이 오겠지?

 

 

 

 

 실향민들을 위해 1985년에 제작된 제단인 망배단을 지나 임진각 본관은 텅 비어있었다 2009년을 맞아 리모델링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3층에 위치한 전망 망원경은 볼 수 있었다. 망원경을 통해 바라본 북쪽은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였다.

 

 

 이 색띠에 적힌 말이 가장 인상깊었다던 대학생 2명, 이미향, 정성은 학생 (인천)  -자유의 다리

 

 가장 인상 깊었던 장소는 북쪽을 향해 곧게 놓여있는 ‘자유의 다리’였다. 하지만 자유의 다리는 얼마 가지 못해 커다란 벽으로 막혀있었다. 벽면은 망향의 한을 달래기 위해 이곳을 찾은 이들이 북에 있는 사람들의 이름과 통일염원을 적어놓은 노란색 천 조각들이 빼곡히 걸려있었다. 본래는 ‘독개다리'라고 불렀던 다리인데, 휴전협정이후 북한에 잡혀있던 1만2천7백여명의 포로들이 이 다리를 건너오면서 ‘자유의 다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다리가 그 때 그 다리의 모습 그대로라고 하니 참으로 의미 있는 역사의 있는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다리를 건넌다고 바로 북한 땅은 아니지만 벽을 뚫고 다리만 마저 건너면금방이라도 북한 땅으로 달려가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리 밑으로는 통일 연못이 만들어져 있었다. 하늘색의 한반도를 바라보고 있자니 ‘통일기’가 떠올랐다. 겨울이라 그런지 물은 채워져 있지 않았다.

 

 

앞쪽에 가로로 놓여진 다리가 자유의 다리

 

-한반도 모양의 통일연못 뒤로 임진각이 보인다. 

 

  

 한 바퀴 임진각 주변을 둘러 본 후 근처 식당에 들러서, 손 수 싸온 도시락을 열었다. 고소한 참치김밥, 그리고 알맞게 익힌 삶은 달걀, 언제 먹어도 맛있는 라면으로 맛있게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임진각 주변에는 먹을 곳이 마땅하지 않기 때문에 직접 도시락을 싸 가지고 가는 편이 낫다.

 

- 손 수 싸간 김밥과, 식당에서 주문한 우동&라면

 

점심을 먹고 향한 곳은 색색깔의 바람개비로 유명한 ‘평화누리 공원’이었다. 둥글둥글한 언덕이 넓게 펼쳐져 있는 모양이 동화 속 동산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했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사진찍기 좋은 장소였다. ‘통일바라기’라는 이름의 커다란 조형물은 점점 언덕을 향해 땅에서 솟아나오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통일을 향해 한발자국씩 발걸음을 떼고 있는 모습처럼 보였다.

 

 

우리가 찾은 날은 아쉽게도 조금 흐린 날씨였다. 햇볕 좋은 날씨에 방문하면 더욱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평화누리 공원 내에 위치한 유일한 카페인 ‘카페안녕’에 들러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공원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임진각을 구경하며 얼었던 몸이 스스르 녹는 것만 같았다. 나오는 길에 뒤를 돌아보는데, 가만히 있던 바람개비들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마치 “잘 가고, 또 와요” 하고 손을 흔들어 주는 것처럼 보였다.

 

 

 

 임진각단지 내에 놀이공원도 마련되어 있었으나, 추위와 기차시간 관계상 생략하고 4:55분 기차에 몸을 실었다. 날씨가 좋은 봄 ·가을에는 각종 행사와 공연이 많이 열린다고 하니, 행사 시간표를 미리 알아두어 찾아 간다면 더욱 많은 볼거리를 구경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새 어둑어둑해지는 기차 안에서 각자의 소감을 짤막하게나마 메모해 보았다.

곧 다시 찾을 이 곳 임진각을 가슴속에 새기며...

 

 

 

하승희 기자: 판문점, 임진각을 찾은 사람들의 말 중에 “ 북을 앞에 두고서도 갈 수 었다”는 말이 식상하게만 들렸었는데, 내 눈앞에 있는 북한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그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자유의 다리, 저 다리를 건너 진정한 자유의 땅을 밟을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도한다.

 

 

박희나 기자: 이 곳이 유명한 관광명소인 것을 보면 통일에 무관심하다는 우리 국민들에게도 남·북 분단의 사건은 잊지 못할, 특별한 일 인 것은 분명하다. 오늘의 소감을 시로 표현해 보았다.

 

 

다리

                                             박희나

 

자유의 다리 아래로

임진강이 흐른다.

 

내 눈길, 내 손 끝이 닿는 저 곳 어딘가가

북녘 땅이라.

 

 

저기가 북쪽인지 아닌지도 모르게

남쪽과 꼭 닮은 산들.

 

같은 하늘 덮고 자고

한 물로 세수하며 아침 맞는 우리인데

 

 

통일이 우리의 마음으로

찾아오는 거라면

오해라는 가시철조망도

우리를 나눌 수 없겠지.

 

 

홍아름 기자:  봄이 오면 얼어붙은 임진강물도 녹아서 유유히 흐르겠지요. 올해 봄이 시작되면 남북관계도 강 흐르듯 ‘유유’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자유의 다리’라는 좋은 이름을 가진 다리 주변에 칭칭 감겨있는 철책선을 바라보고 있자니 가슴이 ‘콕콕’ 쑤셨니다. 언젠가는 한반도를 가로지르고 있는 철책선도 사라지고, 그 해의 따스한 봄이 찾아오겠지요. 그 땐 남과 북의 주민들이 자유의 다리를 자유롭게 건널 수 있겠지요.

 

 

 

 *사진의 용량이 큼으로 클릭해서 보시면 더욱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공동취재: 통일부 상생기자단

 홍아름 기자, 하승희 기자

박희나 기자, 이진송 기자

hongrme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