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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북한 전망대

응답하라, 북한의 ‘새로운 세대’ ⓵ 논문으로 만나보는 북한의 청년세대

안녕하세요, 통일부 기자단 8기 신수아입니다.

2016년을 맞기전에 올해를 정리해보기도 하고 내년 계획을 세워보기도 합니다. 저는 논문 읽는 것을 참 좋아하는데요...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 논문이란게 어려워 보이고 딱딱해 보이지만, 논문이 설명하는 현상이 흥미롭게 느껴지더라구요. 2016년 기자단으로서의 제 목표는 북한과 관련된 재밌는 논문을 소개하고 쉽게 풀어 다시 전달하는 것으로 잡아보았습니다. 먼저 그 첫 시도로, 통일연구원에서 2013년도에 발행한 <새로운 세대의 탄생북한 청소년의 세대경험과 특성>이란 연구논문을 같이 읽어보려고 합니다. 지난 학기 학교에서 북한학 수업을 두 과목 들었습니다. 한 학기 동안 배운 것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라면, '북한에서 시장이 가져오는 변화가 결정적이다'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 이 기사에서는 북한에서 시장의 변화가 북한 주민들에게 미친 영향을 잘 보여주는 논문 하나를 같이 읽어보려 합니다

기사는 두 개로 이어집니다. 첫 번째 기사에선, 논문의 내용을 먼저 살펴볼 겁니다. 논문 이름이 <새로운 세대의 탄생북한 청소년의 세대경험과 특성>이었죠? 우리나라에서도 언론은 청년 세대를 어떠어떠한 세대라 이름 붙이곤 하잖아요. ‘88만원 세대’, ‘5포 세대’, ‘7포 세대’ 등 들어보셨죠? 청년들을 '어떠어떠한 세대'라 명명하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그 세대의 특성을 나타내는 것이겠죠. 북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이 기사에서 북한의 청년 세대를 새로운 세대라 부르겠습니다. 무엇이 새롭다는 것일까요? '새로운 시대'의 북한과 우리는 어떠한 통일을 준비할 수 있을까요? 

이어지는 두 번째 기사에서는, 제가 속해있는 <기사 1팀>이 함께 모여 이 논문을 읽고 진행했던 세미나 자리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응답하라, 북한의 새로운 세대! ⓒtvN


우선 이 논문에서 다루려 했던 연구목적과 대상부터 이야기해볼까요? 논문에서 주목하고 있는 북한의 인구는 10대 중반에서 20대 후반까지의 연령층입니다. 이들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시기 무렵에 유아기나 소년기를 보낸 연령대란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요. 이들을 북한의 새로운 세대혹은 ‘4세대라 부릅니다. 이 논문의 재밌는 점은 북한이탈주민 중에서 새로운 세대’의 표본을 최대한 다양하게 인터뷰했다는 점이에요. 북에서 거주했던 지역별로, 성별로, 도시농촌별로 다양한 특성이 모두 반영될 수 있도록 골고루 인터뷰하여, 총 '40명'을 질적 조사했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이 새로운 세대의 이야기에 우리가 귀 기울여 들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새로운 세대가 북한 김정은 시대의 통치기반이 되고 있고, 앞으로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0세에서 29세'에 해당하는 세대들은 약 10년 후인 2023년이 된다면 북한 인구의 '55.8%'를 차지할 정도로 많아진다고 하는데요. 북한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 하더라도, 주민을 적절하게 통제하고 주민으로부터 지지를 얻어야 하는 것은 보편적인 원리입니다. 따라서 북한의 정치 지도부 역시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이 '새로운 세대'의 특성에 적합한 모습을 보일 것이라 볼 수 있겠죠

  <새로운 세대의 탄생북한 청소년의 세대경험과 특성>


논문은 북한의 청년 세대를 새로운 세대라 부릅니다. 왜 그럴까요? 무엇이 새롭다는 것일까요? 이전 세대들과 다르게 어떤 특징이 이들을 새로운' 세대로 규정짓는지 알기 위해선 이 세대가 겪었던 당시 일어났던 북한에서의 큰 사건들을 알아야 합니다. 새로운 세대가 태어난 시기인 90년대, 90년대 전후로 주목할만한 주요 정치경제적 사건은 크게 8가지를 짚어볼 수 있습니다. 북한의 새로운 세대에게 이 사건들은 어떻게 각인되었는지 살펴볼까요?

 <새로운 세대의 탄생북한 청소년의 세대경험과 특성>


고난의 행군과 시장화를 경험한 세대

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북한의 경제난은 고난의 행군이라 불립니다. 북한이 1980년대까지만 해도 구소련이나 중국 같은 사회주의 국가들과 교류를 유지하며 '배급제'를 시행하고 있었죠. 그런데 1989년 사회주의권이 붕괴되고, 90년대 초 북한의 핵사용으로 대외관계가 악화되고, 1994년 김일성 주석까지 사망하면서 북한은 이중 삼중으로 위기를 겪는 최악의 상황에 빠져버리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세대'는 이 시대에 막 태어나거나 유년기의 나이였기 때문에 궁핍이나 고통에 대해 구체적인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고, 또렷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례에선 배고픔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a: 그런데 저는 고난의 행군 때 어린 나이여서 그런지 그렇게 잘, 그렇게 힘든 그런 기억이 없어요. 사람을 잡아먹고 뭐, 그런 말을 들었는데, 저는 눈앞에서 그런 현실을 못 봤거든요. (p.32)

b: 전 저 어렸을 땐데, 할머니가 밥을 안 주고 칡을 주는 거에요. 지금 생각하니까, 그게 칡인데. 그런데 고구마라도 할머니가 계속 줬는데 엄청 맛없는 거 있죠. 그래서 제가 계속 울었던 기억이 나요. 배고프다고. (p.33)

c: 정말 그 배고픔이라는 게 못 참겠더라고요. 제가 몇 끼까지 굶어봤는데요, 하루 종일 굶고 그 아침까지 굶었어요. 어쨌든 네 번을 굶어 봤는데, 그 때 굶으면서 느낀게 처음에는 두 끼 굶을 대는 막 못 참겠더라구요. 그래가지고 막 밖에 나가면 눈이 핑핑 돌고 앞이 안 보이고, 물만 계속 퍼마셨던 거 같아요. 세 번째 굶으니까 그 다음에는 그냥 막, 배고프니까 음식이 더 생각이 나요. 굶는게 제일 무서웠던 때도 있었고, 막 배고플 때가 제일 무서울 때가 있었고, 또 점점 크면서는 국가가 많이 무서워졌어요. (p.61)


이렇게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치며 배급이 중단되고 굶어죽는 사람이 발생하자, 북한에서 생존수단으로 암시장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대 후반에 전국적으로 암시장이 형성되었지만, 북한 당국은 배급제를 정상화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시장에 대해 강하게 통제할 수 없었죠. 20027.1 조치라 불리는 경제관리개선조치와 2003년 종합시장제는, 그렇게 발전한 시장의 영역을 국가의 통제 하에 두기 위해 시장을 공식화하는 시도입니다. 태어나면서 경제난에 시달리고 배고픔을 항상 겪는 '새로운 세대'는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에 대해 긍정적 인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a: (7.1조치는 모르는데요) 아, 자기가 일한 걸, 일한 거만짝 먹는다. 맞아요. 기억나요. 그때가 정말 더, 아닌 게 아니라 좀 좋았어요. 네, 그래서 일자리를 그때 모두 마련하느라고, 아무 모두 인민들이 좀 분기한 거 같아요. 뭐 그렇게 돼서 그때 아마 한 번 열의가 있었어요. "좋구나, 이거 이렇게 하니까"


구글/연합뉴스 ▲ 지난달 24북한 전문가인 커티스 멜빈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한미연구소 연구원은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에서 "(북한 내합법적 공식 시장의 수가 400개가 넘는다"고 밝힐 정도로, 북한 내에서 시장은 널리 퍼져 있습니다.



국가의 통제가 통하지 않는 세대

국가의 통제 혹은 사회화가 가시화되는 것이 교육이라고 할 수 있죠. 특히 북한에서 교육은 체제 선전을 위한 역할을 강하게 수행하고 있는데요. ‘새로운 세대가 청소년 시기를 보냈던 김정일 시기에는 만성화된 가난에 시달렸던 시기였죠. 배급제는 완벽히 작동할 수 없었고, 무상교육이었던 학교도 사실상 가정이 교육비를 부담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세대가 경험했던 만성화된 빈곤은 학교생활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났습니다. 학생들은 서로의 빈부격차를 상당히 크게 인식하고 있었으며, 학교에서 내라는 과제(꼬마과제)나 기타적인 부담을 내지 못해 결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a: 이제 뭐 토끼가죽 이런 파지, 이런 것들 내고 학교 꾸리는 데 돈을 내야 되고, 이제 매일과 같이 여러 가지를 내는 거 있어요. 그런데 집이 어렵다보니까, 그게 없으면 돈으로 대체할 수 있는데 우리 집은 돈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도 안 되고, 그러니까 그것도 이제 하나 둘 밀리기 시작하면 친구들 보기도 좀 그렇고. 네, 그러다보니까 그것 때문에, 단지. 실력은 저도 북한에서 초등학교 때도 공부를 못한 건 아닌데, 그런 것들이 자꾸 하다보니까 공부도 더 못하겠고, 학교 가기가 싫어지더라구요. (p.123)

그 결과 새로운 세대는 국가로부터 혜택을 받는다는 인식 자체가 생길 수 없었고, 이것이 이전 세대와 다른 특징을 만들어냅니다. 국가로부터의 통제가 통하지 않는 세대가 된 것이지요. 이 특징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 새로운 세대는 북한에서 쓰는 공적인 언어를 거부하거나 형식적으로만 수행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a: 일주일간의 생활의 일단 자기비판을 해요. 그런데 그 하기 전에 위에 말씀을 넣어야 돼요. 김일성, 김정일의 그런 말씀을 꼭 인용하고 뭐. (...) 그런데 서로 비판을 하면 상대방에 되게 기분 나빠지고 사이가 안 좋아질 수 있으니까 대개 친한 친구끼리 하는 경우가 많아요. 짜고. 항상 하다보니까 이젠 비판할 것도 없어지고 하다보니까 서로 짜서 하게 되고. (p.101)

b:그러니까 그게 맨날 생활총화 때마다 똑같아요. 지각을 했고 학교를 뚜꺼 먹었고, 그리고 뭐 말씀대로 뭐, 위대한 장군님의 명언대로 살지 못했고. 그래서 뭐 저의 결함은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지 못한 데로부터 온다는 거. 그냥 그게 쭉 똑같은데, 그러니까 내가 잘못한 일을 자꾸 반성하고, 맹세하고 하는 게 정말 싫었어요. 생활총화를 한다는 자체가. (p.102)

연합뉴스 103일 완공한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


, 이러한 특징은 국가가 제시하는 '영웅상'에 대한 냉소로 표출되기도 합니다. 이들 세대는 공통적으로 국가가 선전하거나 제시하는 영웅에 대해 어느 누구도 롤 모델로 삼거나 감동하지 않는다는 특징을 보이고 있는데요. 과거에는 국가가 인민을 위해 희생하고 노력한다는 이야기가 무상교육, 배급제를 통해 '느끼게' 해주었죠. 그러나 고난의 행군 이후로는 국가가 해주는 것은 없고, 개인이 어떤 방법이든 생존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익힌 세대가 가지는 현실적 특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a: 우리 나이 또래 애들은, 내가 같이 있는 애들은 저렇게 죽는 게 머저리지 하면서. 막 열여덟 살에 김기성이라고 있어요. 막 걔가 폭탄 그런 거 맞고 영웅 됐잖아요. 무슨 왜 그렇게 죽냐고 이렇게, 저런 게 바보지 이렇게 생각 많이 한 것 같아요. 그렇게 높은 걸 원하지 않아요. 잘 사는 걸, 그냥 내만 잘 살면 된다. (p.120)

군대에 가야 사회적 출세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질 것이란 생각 역시 '새로운 세대'에게는 설득력을 가지지 못합니다. 

a: 저희 친구들하고는 군대들 안 가려고 그러고. 지금 다 그래요. 막말로 하면은 자기 친구 군대 걸렸잖아요. 그러면 "아우 쟤 징병 끌려간다" 이런 식으로 농담하더라고. (p.121)

ⓒ주성하 기자 블로그


자본주의 물이 잘못 든 세대 vs. 깨어 있는 세대

, 북한의 새로운 세대는 고난의 행군 이후 만성화된 빈곤을 몸으로 경험한 세대라 할 수 있습니다. 배급제,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의 혜택을 감당할 수 없게 되면서 국가의 통제는 느슨해졌으며, 규율의 공백은 새로운 규율을 만들어냅니다. 그것이 바로 '시장'이고 새롭게 경제적 자본에 따라 계층이 나눠진 세대의 특징입니다. 북한의 새로운 세대를 바라보는 관점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북한에서 부모님 세대는 '새로운 세대'를 이렇게 이야기하죠.

a: 순진하지 못하다고. 왜냐하면 고생을 많이 해보다나니까 빨리 머리가 돌아가 가지고 계산을 많이 하고 어른들보다 더 계산이 빨라지고.

b: 모든 걸 그냥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다 대가가 있어야 해주고. 그러니까 사람이, 북한에서는 인색하다고 하는데, 자기 이익을 위해서 모든 걸 생각을 많이 하고, 대가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그런 게 있어서.

c: 제가 아이들 교사 하면서 보면, 저희 세대는 뭐 국가, 수령 뭐 이런 게 저희까지만 해도 조금 있었어요. 그런데 걔네들 생각에는 그냥 멋있는 남자친구, 멋있는 여자친구, 오직 그런 생활적인데 많이 치우쳐 있고, 그런 데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부정적인 설명이 많죠? 이어지는 기사에서 이야기하겠지만, 20대로 구성되어 있는 기사1팀은 이 부분을 읽으며 역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항상 '요즘 애들은' 욕을 먹는다며 웃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세대는 스스로를 어떤 세대라 규정할까요?

a: 생각이 많이 열려 있어요.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많이 인식하고 있고요, 지금 청소년들은 한마디로 많이 깼죠. 옛날에 저희 부모님 세대들이 그냥 김일성, 김정일 이렇게 우상숭배하면서 그때 당시는 그러니까. 지금 저희 나이 또래는 태어날 때부터 그 고난의 행군이라고 시작할 때부터, 그때부터 바빴어요. 그런데 우리 부모님 세대 때는 그나마 살기가 좋았었던 걸로 알고 있고, 그때는 뭐 한 마디로 당에서 다 해주고. 지금 세대, 우리 생각은 너무나 다르죠. (p.116)

이전 세대는 새로운 세대를 자본주의 '물이 잘못 든 세대'라 볼 수 있지만, 또 다른 면으로는 '깨어 있는 세대', '열려 있는 세대'라 할 수 있으며, 현실에 적응하며 살아가려 하는 욕구가 크다는 점이 이전 세대에겐 '영악하다'고 보여질 수 있지만 융통성 있고 '똑똑한 세대'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이 논문에서도 밝히고 있듯, 연구 대상이 된 40명의 북한이탈주민으로 우리가 10대 후반에서 20대 중후반의 모든 북한 주민들을 규정짓는 것은 불가능할겁니다. 일반화시키기에 표본이 충분치 않을 수 있고, 북한을 넘어온 이탈 주민들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 내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의식을 담지 못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깨어 있는 세대', '열려 있는 세대', 그리고 그들과 함께 만들어갈 통일코리아를 상상하기 위해서 북한의 새로운 세대에 대한 심도 깊은 이 논문이 인상적입니다. 북한에서 시장으로 인해 바뀐 북한 주민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좋은 발판이 될테니까요. 

이어지는 기사에서는 이 논문을 읽고 이야기를 나눈 기사 1팀 세미나 현장을 전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조정아, 조영주, 조은희, 최은영, 홍민(2013), <새로운 세대의 탄생: 북한 청소년의 세대경험과 특성>
    주성하 기자 블로그, <내가 경험한 북한군대, 6개월간의 신병 훈련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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