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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통일문화공간

북한이탈주민과 함께하는 파티&토크콘서트 - 다섯 번째 통일의 만찬

 

여러분들은 북한 문화에 대해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있습니까? 지난 9월 25일(목) 부산 다대포에 위치한 ‘폴 인 커피류’에서 다섯 번째 통일의 만찬이 열렸습니다. 재단법인 북한 인권과 민주화실천운동연합(이하 북민실)이 주최하고 남북하나재단이 후원하는 통일의 만찬의 이번 북한인권포럼은‘북한 문화와 예술’을 주제로, 탈북피아니스트 김철웅 교수를 강사로 하여 진행되었습니다.

폴인커피 류▲ 통일의 만찬이 열린 '폴인커피 류'

  김철웅 교수는 1999년까지 북한 평양 국립교향단 피아니스트로 활동하였으나, 북한 생활의 회의감을 느끼고 2002년에 탈북 하여 한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2008년부터 백제예술대학 음악과 외래교수로 한국 학생들을 교육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TV프로그램 출연과 다양한 공연 참여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다섯 번째 통일의 만찬은 북민실 임창호 이사장의 인사말과 하나이음협회 장은아 협회장의 축하말로 시작하였습니다. 북민실 재단의 임창호 이사장은 인사말로“이번 통일의 만찬을 통해 북한 문화의 상황과 한국의 문화와 어떤 차이점들이 있는지 비교하고, 통일이 되었을 때 하나 된 문화를 상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다섯 번째 통일의 만찬▲ 인사말을 전하고 있는 북민실 임창호 이사장

이번 행사는 카페에서 진행되어 저녁 식사를 제공하진 않았지만, 여러 가지 음료와 디저트를 먹어가며, 김철웅 교수의 강의와 피아노 연주를 즐기는 시간이었습니다. 부산 지역 북한이탈주민들과 장대현학교 학생들, 그리고 부산 시민 100여명이 모여 문화 속의 통일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섯 번째 통일의 만찬▲ 김철웅 교수와 함께 사진찍고 있는 탈북청소년 학생들

 

다섯 번째 통일의 만찬▲ 다섯 번째 통일의 만찬 단체사진

 

 

김철웅 교수는 자신의 삶을 이야기 하는 것이 북한의 문화를 가장 잘 전하는 것이라 생각하여 북한에서의 생활과 탈북을 하게 된 계기를 말하였고, 탈북 후 한국에서의 생활도 이야기 하며 강의를 마무리 지었데요, 그 이야기를 제가 요약해 전해드리겠습니다.

 

저는 6살 때 피아노를 처음 치게 되었어요. 북에서는 집에 피아노가 있다는 것은 나름 괜찮은 형편에서 자람을 의미합니다. 한국 어머니들의 치맛바람이 있듯이 북에서도 어머니들의 치맛바람이 장난이 아니에요. 저 또한 어머니의 치맛바람 교육으로 인해 피아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북에서 피아노를 가르칠 수 있는 유치원은 평양 창강유치원, 대동문유치원, 삼팔유치원 이렇게 세 개가 있었는데 그 중에 제일 잘 가르치는 창강유치원에서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북한에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피아노를 처음에는 똑같이 배워요. 바이엘부터 시작해서 체르니로 가게 되는데요, 그 후에 이제 북한의 곡들을 치게 하며 남들과 다른 피아노를 배우게 됩니다.

저는 대학 생활을 8살에 시작하였습니다. 8살에 들어가 14년의 대학생활을 시작하게 되는데요, 그때 당시 경쟁률은 670:1이였어요. 여기서 합격을 하게 되어서도 5000명 중에 9명을 뽑게 되는데 제가 그 9명에 포함되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 음악공부를 하게 되었고 저 나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북한에서는 클래식 한곡을 치기 위해서는 북한민요 두곡을 익혀야 되요. 그래서 치고 싶은 곡들이 많으면 그 두 배로 북한 민요를 연습해야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음악공부를 하고 피아노만이 제 인생의 전부였어요. 그러던 중! 제 인생에 첫사랑을 만나게 됩니다. 그 당시 유행하던 로맨스 영화를 보고 그 영화 속에 나온 곡을 듣고, 피아노로 열심히 연습하여 그녀에게 고백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모습을 지켜보던 누군가가 보위부에 신고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보위부에 불려가서 시말서를 쓰게 되는데요, A4용지로 10장은 쓴 것 같아요. 그렇게 취조를 당하고 나오면서 “이 나라는 자유가 없다, 이 나라에선 내 마음대로 피아노 한 곡 못 치는구나.”라는 북한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탈북의 마음을 가지게 되고, 탈북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탈북 할 때는 한국에 올 생각은 없었어요. 피아노를 자유롭게 배울 수 있는 러시아로 갈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탈북 후 중국에 가보니 나라 없고, 갈 곳 없는 사람이라는 절망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먼저 탈북한 사람을 만나 교회에 가게 되었고, 교회의 선교사님을 통해 한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국에 와서 40개국을 돌아다녔습니다. 40개국을 돌아다니면서 피아노 연주를 하게 되었는데 음악이라는 것은 어떤 민족과 어떤 인종과 어떤 언어를 뛰어 넘어서 모든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북한과 한국은 다릅니까? 혹여 다르다 하더라도 같아지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통일이 되면 생기는 문화적 이질감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는데요, 저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오늘 피아노를 치는 동안 여러분들도 저와 함께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생각해봅니다. 지금까지의 통일교육은 서로 얼마나 다른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다름에 대해 가르쳐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서로 같음을 교육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같아짐의 통일이 문화 안에서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바람도 가져봅니다. 그것이 남북의 문화가 서로 공유되는 문화적 통일의 시작이라 생각합니다.

김철웅 교수▲ '북한의 문화와 예술'에 대해 강의 하고 있는 김철웅 교수

김철웅 교수▲ 피아노 연주를 하고 있는 김철웅 교수

 

▲ 김철웅교수의 연주 (9월 통일의 만찬)


 

이번 통일의 만찬을 통해 김철웅 교수가 제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피아니스트(The Pianist, 2002)에 나오는 주인공과 매우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유롭게 연주할 수 없는 피아니스트의 모습을 보면서 하루 빨리 통일이 되어 남북 전국에 자유로운 음악 소리가 들리는 날을 기대해봅니다. 이상 제7기 통일부 대학생기자단 하진형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