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제7기 통일부대학생 기자단 서민지입니다.
살면서 꼭 읽어봐야 할 인문 고전 중에서도 첫 번째로 손꼽히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그렇지만 인문고전은 마냥 딱딱할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쉽게 손이 가지 않으셨죠? 그렇다면 혹시 군주론 속에 마키아벨리의 통일에 대한 염원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이번 기사에서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그의 염원이었던 통일에 대해 다루어보겠습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그가 그리는 이상적인 군주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대해 간략한 소개를 하자면, 이 작품은 상당히 파격적인 작품입니다. 어떻게 하면 권력을 획득하고 또 유지할 수 있을까와 같은 정치 행위에 대한 내용이 주가 되는데요, 그는 군주론에서 정치가 종교적 규율이나 전통적인 윤리적 가치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내용 때문에 이 책은 ‘위험한 책’, '최초의 사악한 정치지침서'로 지칭되기도 하고, 출판 당시에는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답니다. 그러면서도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군주론은 군주와 백성의 관계, 군주와 신하들 사이의 관계, 군주와 다른 군주의 관계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어느 지역의 권력을 잡기 위한 군주의 행동이나 다른 군주와의 관계 등을 다루고 있는데 이 접근을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냉정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죠.
또한 그가 그리는 이상적인 군주는 매우 냉혹하고, 냉철하며, 비인간적이기까지 해 보이는데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권력유지를 위해서라면 가혹행위를 정당화해도 괜찮고 목적만 정당하면 수단은 상관없다는 권모술수를 비판적으로 보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허영심이 강하고, 타인의 성공을 질투하기 쉬우며, 자신의 이익 추구에 대해서는 무한정한 탐욕을 지닌 자다
통치자가 민중을 이끌려면 존경의 대상이 되거나 공포의 대상이 되어라. 존경을 받기 어렵거든 차라리 공포의 대상이 되어라
개인들 사이에서는 법률이나 계약서나 협정이 신의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권력자들 사이에서는 오직 힘에 의해서만 신의가 지켜진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나온 어록입니다. 이 어록들을 보고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아마 이 어록들로부터 느낄 수 있는 그는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인간에 대해 냉철하고도 냉정하게 생각하고 평가하는 사람이라는 것일 것입니다.
이런 마키아벨리가 통일에 대한 염원을 가지고 있다?
이를 이해하려면 그의 대략적 생애와 시대적 배경부터 알아야겠죠. 마키아벨리는 1469년 5월 3일에 피렌체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을 만큼 가정형편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그는 피렌체 공화국 국회의원들에게 선출되어 공화국에서 외교와 국방을 책임지는 최고행정관의 비서 업무를 담당하며 주로 외교사절의 임무를 수행할 정도로 그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는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마키아벨리가 그의 능력을 인정받고 있을 당시의 이탈리아는 다섯 개의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30여 개의 작은 소국들이 통합과 분열을 반복하였고, 그 중 마키아벨리가 사는 피렌체 공화국의 정치체제는 표면적으로는 입헌공화국을 표방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막대한 부를 기반으로 한 메디치 가문에 의하여 전제정치가 행해지고 있었어요.
▲ 다섯 개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30여 개의 작은 소국들이 통합과 분열을 반복한 이탈리아
그는 끊임없는 반목과 질시로 얼룩진 전제정치에서는 어떤 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당시 이탈리아에 필요한 것은 이탈리아를 통일시킬 수 있는 강력한 지도자였습니다. 마키아벨리는 직접 도시 간 무익한 분쟁을 종식시키고 이탈리아에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줄 이상적인 군주를 찾아내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노력은 실패했습니다. 적임자를 찾는 것을 피렌체로 국한시켰기 때문이죠.
그 후, 그는 피렌체와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마침내 효율적인 전제 체제로 전환한 이웃의 시에나로 시선을 넓혀 적임자의 모델을 찾게 됩니다. 그가 바로 체사레 보르자라는 인물인데요, 마키아벨리는 그를 ‘이탈리아의 강력한 새 군주’의 모델로 인용하여, 망명 중이던 1513년에 군주론을 쓰게 된답니다. 사실 체사레는 지성은 뛰어났지만 부도덕한 인물이었음에도 마키아벨리는 체사레와의 협상을 겪으면서 잔인하지만 목적을 위해서는 단호한 태도와 대담성을 아끼지 않는 군주의 모습을 높게 평가하였던 것입니다.
또 강력한 토대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으므로 미래의 권력을 위해 신생 군주에게 제공할 만한 모범적인 지침으로 그의 활동보다 더 훌륭한 것은 없다고 평가했죠. 이러한 마키아벨리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은 그가 왜 가령 ‘정치가 도덕과 분리되어야 한다.’ 와 같은 파격적인 이야기를 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마키아벨리가 이토록 이탈리아의 통일을 염원했던 이유를 깊이 알아볼까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전 세계의 역사에 있어 로마제국이 떨친 위상과 누린 영광은 아주 막대합니다. 그 시대의 로마제국은 서구세계 전체를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렇지만 15세기에서 16세기의 이탈리아는 분열과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의 나라는 비록 강력하지는 못했지만 왕이 존재했고, 그 왕을 중심으로 나라 전체가 결속하며 국민국가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탈리아에는 그런 구심점이 없었습니다.
북부는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지배권을 주장하다 13세기 이후에는 베네치아, 밀라노, 제노아의 도시들이 나누어지는 상황이 되었고, 중부는 로마 교황청의 세력이 앞서는 가운데 피렌체, 시에나와 같은 도시가 분립했습니다. 또한 남부는 비잔티움, 노르만, 이슬람 등에 수차례 정복되기도 했고 나폴리 왕국의 지배하에 있기도 했죠.
이처럼 잘게 갈라진 이탈리아는 서로 대립하고 반목하며 전쟁을 벌이는 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정치체제와 제도 역시나 도시마다 군주국, 공화국, 신정정치체제 등으로 다양했어요.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의 정부와 하나의 체제를 갖춘 강력한 통일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특히 1494년에 프랑스가 이탈리아를 침공했을 때, 통일왕국의 위력에 이탈리아가 맥을 못 추는 모습이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드러나 통일에 대한 염원이 더욱 커지게 되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이런 시대상이 낳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죠. 또한 그의 염원과 시대의 염원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건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이탈리아의 앞선 사례를 통해, 분단된 조국에 살고 있는 우리는 많은 점을 느끼고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이탈리아와 주변 국가들의 사례는 '하나의 나라'가 가지는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케 하지요. 통일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만연해있는 현 시대에 시사점을 주는 역사적 사실이 아닌가 싶습니다.
통일된 하나의 나라 대한민국,그 대한민국이 지니게 될 위력이 어느 정도일지 여러분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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