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3일과 4일, 시진핑 중화인민공화국 주석이 우리나라를 방문했습니다. 1박 2일의 일정 중 둘째 날인 4일 금요일 아침, 서울대학교에서 강연을 진행했습니다. 이 기사에서는 당시 강연 현장과 함께, 이후 7월 중순과 8월 초순에 서울대학교 윤영관 교수(전 외교통상부장관)와 북경대학교 주펑(朱锋) 교수를 각각 모시고 진행한 인터뷰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강연 전문은 번역문 및 고사의 출전과 현장 설명을 함께 담아 첨부하였습니다.
1. 관악산의 아침, 삼엄하지만 환영하는 분위기 속에서
서울대 국제협력본부는 6월부터 특강 전날까지 준비 작업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고 합니다. 강연 날까지 보안 문제를 이유로 학내에 강연 공지 및 학생 공개모집을 하지 않기도 하여 많은 학생들이 아쉬워하기도 하였습니다. 강연 전날 저녁부터는 도로 교통 통제가 이루어지고 경찰과 경호원이 곳곳에 배치되었습니다.
강연 당일 아침에는, 일정 간격을 두고 정문에서부터 배치된 경찰 인력을 지나 글로벌공학교육센터(38동)로 향했습니다. 38동 건물에 커다랗게 내걸린 현수막에서 국빈 방한을 환영하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강연이 열린 아침, 38동.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는 붉은 양탄자가 깔려있다. 총장 환영사, 강연, 학교 선물 전달 순.
2. "안녕하십니까?"
건물 5층에 마련된 강연장에는 서울대 국제협력본부 주관 프로그램인 '스누인 베이징'(SNU in Beijing)‘ 참가 학생 100여명과 교수진이 착석했고 곧 이어 주중대사를 포함한 귀빈들이 속속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10시 40분이 조금 지나서 드디어, 시진핑 중화인민공화국 주석이 부인 펑리위안 여사, 오연천 서울대 총장, 중국 고위관료들과 함께 청중의 박수 속에서 강연장에 도착했습니다.
오연천 총장의 환영사에 이어서 연단에 오른 시진핑 주석은, "존경하는 오연천 총장님, 내외 귀빈 여러분, 교수님, 학생 여러분, 신사숙녀 여러분, 친구 여러분"이라고 말한 후 곧이어 우리말로,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해 다들 놀라는 분위기였고, 웃음과 박수가 이어졌습니다. 시주석은 이렇게, 다소 긴장감이 감돌았던 강연장을 특유의 친근함으로 부드럽게 풀고 난 후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이번 방한이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에 대한 답방 형식인 만큼, 박 대통령의 방중 당시 중국어를 곁들인 칭화대학교 강연에 대한 화답의 의미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3. 한국과 중국, 2200여년의 역사 속으로…
한편, "안녕하십니까?"에 이어진 인사말에서는 청중과 더불어 '모든 한국 국민'에게 인사를 전한다고 말함으로써 단순히 서울대학교 관계자를 대상으로 한 강연을 넘어서 우리 국민들에게도 메시지를 던지고자 한다는 점을 예고하기도 하였습니다. 약 35분 동안 이루어진 이날 강연은 인사말에 이어서, 방문 배경과 전날 있었던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간단한 언급으로 시작하였습니다. 방문 배경으로는 "박근혜 대통령님의 초청으로 국빈 방문을 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웃집을 나들이하고 친구들을 만나러 온 것이기도 합니다(到邻居家串串门,看看朋友)."라고 밝혀 가까워진 한중관계와 한국에 대한 정(情)을 나타냈습니다.
그리고는 곧이어, 한국은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웃인데 '좋은 이웃은 돈과도 바꾸지 않는다'(百金买屋,千金买邻,好邻居金不换)며, 본 강연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부분 중 하나인, 한중관계의 역사 속 인물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불로초를 찾으러 일본 쪽으로 가다가 제주도에 도착한 서복(徐福), 중국 구화산에서 입적하여 금불상이 된 신라 왕자 김교각, 당나라에서 공부를 하여 관료가 된 '동국유종' 최치원, 원나라에서 고려로 건너가서 한반도 공자 후손 일가의 시조가 된 공소(孔紹), 중국 각지를 27년 간 전전했고 한국 독립에 큰 공헌을 한 김구 선생, 한국에서 태어난 '중국인민해방군 군가'의 작곡가 정율성 등의 인물 이름을 한 명 한 명씩 설명과 함께 나열하며 거명함으로써 역사가 깊은 한중관계를 강조하고 강연 초반부터 청중의 집중도를 높였습니다.
특히 김구 선생은 일제강점기 당시 한중 양국에서 모두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임시정부를 계승하는 대한민국의 법통을 경계하는 북한의 존재와 당시 김구 선생이 협력했던 대상이 중국국민당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그간 한중관계 담론에서 공식적인 주목을 받지 못하여 아쉬웠던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강연에서 시주석이 직접 거명하여 한중관계 역사의 전면으로 나오자 반가웠습니다. (뒤에 나오는 윤봉길 의사, 상해 임시정부, 광복군, 안중근 의사 부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편, 시주석은 곧이어 "한중 양국 국민의 우의는 ‘매번 서로 속마음을 털어놓고, 맑은 마음이 차가운 달빛으로 빛난다.(간담매상조 빙호영한월(肝膽每相照 氷壺映寒月)’라는 허균(許筠)의 시구가 완벽히 잘 나타내고 있다"라고 말하며 박수를 이끌어냈습니다. 사실 이 시구는 '김구 선생' 언급과 더불어 '항일 한중협력' 관련 내용이 이어질 것임을 암시하고 있었습니다.
'간담매상조 빙호영한월'이라는 시구는, 선조 30년(1597) 임진왜란으로 파병된 명나라 문인 장수 오명제(吳明濟)가 중국으로 돌아갈 때 작별하며 허균이 쓴 시 속에 등장합니다. 오명제의 시집 편찬을 전폭적으로 도와줄 정도로 서로 친하게 지낸 허균은 오명제를 중국으로 떠나보내며, "나라는 안팎의 구별이 있지만, 사람은 구별이 없다. 태어난 곳이 달라도 서로 형제다. 갑작스레 이별을 하게 되었는데, 조선은 아직 전쟁 중이지만, 조심히 가도록 하라."라는 내용의 시를 썼고, 해당 시구가 이 시에 등장합니다.
오랜 역사 속 국경을 넘어 친한 친구로 지냈던 양국민의 우정과 더불어 왜에 맞서 연합했던 조선과 명의 관계를 시주석은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얼마 전 중국에서도 큰 인기를 누린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도 허균이 잠깐 등장하여 이목을 끌었는데, 우연인 것 같지만, 강연 후반부에서 언급하는 '별그대' 내용에 대한 복선이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4. 시주석이 꼽은 한중관계 역사 속 주요 장면…임진왜란과 임시정부
허균의 시구에 대한 박수가 멎자, 시주석은 더욱 분명하게 일본에 맞선 한국과 중국의 역사 이야기를 이어나갔습니다. 400여 년 전 임진왜란과 100여 년 전 일본 군국주의를 차례로 이야기했습니다. 임진왜란을 이야기할 때에는 이순신 장군과 명나라 등자룡 장군, 그리고 명나라 지휘관 진린을 언급하였고, 일본 군국주의를 이야기할 때에는 중국 내 대한민국 임시 정부 옛터, 윤봉길 의사 기념관, 광복군 주둔지 옛터를 언급해서 현장에서 청중의 집중도가 고조되었던 것 같습니다.
“명나라 등자룡 장군과 조선왕조 이순신 장군은 노량해전 중 함께 순직(전사)했으며, 명나라 지휘관 진린의 후손은 오늘날까지도 한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중국 내 “대한민국임시정부 옛터”, 상하이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 시안 광복군 주둔지 옛터 등은, 모두 그간 눈물겨운 난망의 역사를 증명합니다.”
5. ‘중국의 꿈’ … 시진핑 주석의 약속
그리고 역사 이야기를 마치며, 오늘날 한중관계의 현황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중국의 꿈'을 이야기했습니다.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주제가 이동한 것입니다. 최근 중국의 급성장과 각종 분쟁으로 많은 나라가 불안해하고 있는데, 이러한 ‘중국위협론’을 불식시키기 위해서 시주석은 다음 세 가지 중국의 미래상을 제시하였습니다. 시주석이 서울대학교 학생들과 중국의 미래에 대해서 세 가지 ‘약속’을 한 셈입니다.
첫째는, 중국이 앞으로 평화를 지키는 국가가 될 것이라는 약속이었습니다. ‘국가가 강하고 크더라도 전쟁을 좋아하면 반드시 망한다.’는 중국의 옛 잠언을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중국의 평화로운 발전을 말하는 것은 ‘일시적인 대책이 아니고, 외교적 언사도 아니라고(这不是权宜之计,更不是外交辞令)’ 강연에서 말한 만큼, 현재 벌어지고 있는 분쟁의 해결과 앞으로의 아시아 평화에 일말의 희망을 품게 하는 대목이었습니다.
둘째는, 협력을 촉진하는 국가가 될 것이라는 약속이었습니다. 이웃나라의 희생을 대가로 중국이 발전하는 일은 없을 것임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이웃나라에는 손해를 끼치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이러한 약속은, 강연 후반부에서도 또 다시 등장하여 두 번 강조되었습니다.
셋째는, 겸허히 배우는 국가가 될 것이라는 약속이었습니다. 현재의 발전으로 자만하지 않을 것이며 다른 문명권과의 조화를 추구하며 배우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6. 스물여덟 번의 박수, 그리고 ‘한국의 꿈’
중국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한 후에는, 아시아에서 중국이 한국과 정치·경제·사회·문화적 협력과 교류를 증진해나가는 방향에 대한 내용이 이어졌습니다. 네 가지 방면을 이야기했는데, (1) 아시아 국가끼리 뭉쳐야 하며, (2) 자국의 이익만이 아닌 공동의 이익을 추구해야 하고, (3) 평화로운 환경을 조성해야 하며, (4) 사회문화적 교류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네 가지 방면 중에서 단연 청중의 큰 반응을 이끌어내었던 것은‘(3)평화로운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이야기’ 중에서도 남북통일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나머지 (1), (2), (4)의 이야기에서는 한 번이나 두 번의 박수가 있었는데, (3)에서는 무려 다섯 번의 박수가 터졌고, 그 중 네 번은 북한 문제의 해결과 남북통일 지지에 대한 이야기에서 터진 박수로, 이날 강연에서 있었던 총 스물여덟 번의 박수 중에서 가장 밀도 있게 박수가 이어진 부분이었기 때문에, 시주석도 강연 현장에서 통일이 우리 민족의 숙원이라는 점을 직접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강연 녹음 파일을 통해 박수 소리의 크기와 분포를 볼 수 있다.
시주석은 강연에서 ‘중국의 꿈’을 설명하는 데에 짧지 않은 시간을 할애하였는데, ‘중국의 꿈’이란 시주석이 취임 이후 국정철학으로 제시한 표어입니다. 시주석은 ‘중국의 꿈’이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의미한다고 요약하였는데, 중국에‘중국의 꿈’이 있다면, 한국에는‘한국의 꿈’이 있고,‘통일’이 ‘한국의 꿈’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청중들은 박수로 화답하여 전달했습니다.
시주석은 중국 인민들이‘중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듯이 한국 국민들은‘한국의 꿈’인‘제2 한강의 기적’을 만들기 위해 힘쓰고 있다고 연설했는데, ‘대동강의 기적’이 곧 ‘제2 한강의 기적’이 될 수 있고, 이렇게 실현되는‘한국의 꿈’이 곧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해서‘중국의 꿈’과 만나‘아시아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점에서, 통일이 아시아에 기여할 날이 기다려집니다.
“당장, 중국인민들은 바야흐로 중국 공산당의 지도 아래에 있는데, 중국특색 사회주의 노선을 따라서, 소강사회를 전면적으로 완성하는 것을 실현하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 인민 또한 ‘국민 행복 시대’를 열고, ‘한국의 꿈’인 ‘제 2 한강의 기적’을 만드는 데에 힘쓰고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발전적 합류는 중한양국이 협력을 강화하는 데에 역사적인 기회를 제공하였습니다.”
강연은 2008년에 있었던 한중관계의 감동적인 미담과 더불어, 청년들에게 전달하는 내용과 서울대학교 학생들에게 주는 선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한편, 청년들에게 전달하는 내용 속에서는 안중근 의사를 직접 언급하며‘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 청춘은 다시 오지 않는다.’라는 유묵을 인용하기도 하였고,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중국 젊은 층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고 언급해서 청중의 웃음과 박수가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연설의 마지막에는, 시작 때와 마찬가지로“감사합니다!”라고 우리말로 친근하게 인사하여, 웃음과 박수로 강연을 마쳤습니다. 별도의 질의응답은 마련되지 않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강연이 마무리되었습니다.
7. 전문가 인터뷰 (1): 윤영관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전 외교통상부장관)
Q. 당시 시진핑 주석의 강연을 들으신 후 간단한 소감이나 기억에 남으시는 부분이 있으셨나요?
A. 적극적으로 한국인의 마음을 끌어들이려고 노력하고 호소하는 것 같았다. 임진왜란을 비롯한 몇 백 년 전 과거역사로부터 한중 협력사례들을 나열해서 놀라기도 했다. 일본 문제에 대해 한국과 중국이 손잡고 공동대응하기를 희망하는 듯 하는 메시지가 기억에 남는다.
Q. 그러한 메시지에 대해서 우리나라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요?
A. 최근 우리나라가 일본과 관계가 안 좋기는 하지만, 우리는 한미동맹이 있고 일본은 미일동맹이 있어서 북한의 위협에 공동으로 대처하는 구조 속에 있다. 가령, 북한의 우리나라에 대한 도발이 있으면 일본 오키나와 미군 기지에서 전투기가 뜨는 식이다. 따라서 이러한 현실적인 측면도 고려해서 전략적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물론, 중국과 관계가 깊어지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하다. 특히 북한 문제에 있어서도 중국은 중요하다. 경제적 상호의존이 심화되고 양국이 가까워지는 등 한중관계가 깊어지는 것은 바람직한 측면이 있다.
Q. 최근 격화되고 있는 중일 갈등 속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하나요?
A. 현 정부에서는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을 내걸고 있는데, '구상'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한중일 협력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하는데, 가만히 있지 말고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 동북아 평화를 주도해야 한다. 서울에는 '한중일 협력사무국'도 있지 않은가. 중일 갈등 속에서도 중국을 말리고 일본을 말려서, 중국이 싫다고 해도. 일본이 싫다고 해도 양쪽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대화에 나서야 한다. 현재로서는 연례적으로 개최하던 한중일 정상회의도 불발되었다.
Q. 그러나 중일 갈등과 한일 갈등은 결국 아베 총리의 역사 인식 때문이지 않나요?
A. 최근 아베는 '역사 수정주의' 움직임을 보이며 과거에 했던 사과 입장을 뒤집으려 하고 있으므로, 문제의 출발점이 그곳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 간 채널을 유지하고 대화와 설득을 지속해나가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는 지금보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설 필요가 있다.
Q. 한편, 많은 언론에서는 시주석이 평양보다 서울을 먼저 방문한 것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는데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A. 북한에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측면이 있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북한이 좀 더 전향적이고 협조적인 입장을 취하기를 압박하는 측면이 있다. 가령, 2013년 봄 북한이 전쟁 분위기를 조성해서 국제적 관심이 집중되었는데, 그러한 방식의 행동이 계속해서 나타나면 중국으로서도 가만히 북한을 따라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시주석이 서울을 방문하고, 북한에 대한 한중 간 입장이 수렴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Q. 한편으로는 시주석이 '북한 비핵화' 대신에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써서 이번 방한성과에 한계가 있었다는 지적은 어떻게 보시나요? 그리고 아직 중국은 통일에 비협조적인 입장일까요?
A.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남한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을 제거하라는 의미로 주장한다. 그러나 물론 한국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이다. 현재는 북한이 내부의 핵시설을 포기하기로 하는 전향적인 조치를 성의 있게 취하고 6자회담에 나서도 핵문제의 해결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시주석이 말한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이 주장하는 그것과 똑같지는 않다고 본다. 그리고 통일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우리가 하기에 따라 다를 것이다. 중국의 우려 사항을 잘 파악하고 그것을 해소해주면서 협조 요청을 하면 긍정적으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8. 전문가 인터뷰 (2): 주펑 북경대 국제관계학원 교수
Q. 시진핑 주석 방한의 의미를 어떻게 보시나요?
A. 시진핑 주석은 평양보다 서울을 먼저 방문했다. 그리고 다른 국가와 함께 방문하는 것이 아닌, 단독 방문 일정이었다. 중국은 수교 이래로 줄곧 남한과 북한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정책을 취해왔다. 그러나 이번 방한은 시진핑 주석이 그간 길고 길었던 균형 전략을 깨고, 남한을 선택했음을 보여준다. 한중관계는 단순히 따뜻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뜨거워지고 있다. 시주석의 이번 방한 전까지는 중국 지도부의 전략이 불분명한 측면이 있었으나, 이제는 단순한 제스처가 아닌 실제 정책으로써 남한으로 기울었음을 보여준다. 한편, 중국은 이번 방한 일정을 통해 한국이 경제적 동반자를 넘어서 지역에서 더욱 중요한 역할을 맡는 것을 환영했고, 정치적 안보적 동반자로도 거듭나기를 희망했다.
Q. 그렇다면 현재 한국의 동북아 외교에서 과제는 무엇인가요?
A. 미국을 어떻게 대할 지가 중요해질 것이다. 전통적으로, 한국은 안보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미국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중국이 북한에 대해 미국보다 더 많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한국은 중국과 미국보다 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중국과 가까워지는 것은 닥쳐온 현실인데, 이러한 현실에 어떻게 대처할 지가 중요해질 것이다. 한국은 여전히 정신적으로나 이데올로기적으로 미국과 더 가깝기 때문이다.
Q.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 외교는 어떤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보시나요?
A. 한국은 단순히 두 대국 사이에서 때때로 어느 한쪽 편을 드는 식의 정책을 구사하기보다, 스스로 목소리를 더 높여서 지역 안보 질서에 기여하는 정책을 구사해야 한다. 한국은 중국과 미국 모두와 친한 국가이기 때문에 균형 정책의 성공적인 구사가 충분히 가능하다.
Q. 최근 ‘역사 수정주의’ 움직임을 보이는 일본과 협력을 하자고 하는 중국 사이에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취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A. 한국은 아베의 역사 수정주의는 받아들일 수 없으며 지역 불안정의 원인이 된다고 더욱 강력하게 주장해야 한다. 중국과 협력해서 일본으로 하여금 역사 수정주의가 지역의 안정과 협력을 해친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도록 해야 한다.
Q. 한국의 일부 언론에서는 시주석이 서울대에서 언급한 “历史无法更改,但未来可以塑造”(“역사는 고칠 수 없지만, 미래는 만들 수 있습니다.”)이라는 말에서 ‘역사’는 ‘한미동맹’을, ‘미래’는 ‘한중 안보 협력’을 빗댄 것이라고 이야기했는데, 동의하시나요?
A. 지나친 해석이다. ‘역사’는 일본과의 역사문제를 말하는 것이고, ‘미래’는 동북아 협력을 말하는 것이다.
Q. 시주석은 강연의 일부를 남북통일에 대한 언급에 할애했는데, 그 내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중국은 중국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서 통일을 돕겠지만, 결국 한국은 한국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한국은 단순히 중국을 바라보기만 하기보다는 북한에 직접 바람직한 영향을 주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Q. 일각에서는 시주석이 ‘북한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 비핵화’를 언급해서 아쉬웠다고 지적합니다.
A. ‘한반도 비핵화’라는 단어는 관습적으로 사용한 것일 뿐이다. 물론 중국은 오래 전에 철수된 미국의 전략 핵무기의 재배치를 여전히 경계하고 있다.
<참조> 이상덕 외교부 동북아국장: (7월 9일 외교부 ‘라이브 모파’ 방송 인터뷰) “한반도 비핵화라 함은 이미 북한의 비핵화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국내외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2005년 9.19 공동성명 당시에 6자회담의 목표가 ‘검증 가능한 한반도 비핵화’라고 명시를 했고, 그 이후로 국제적 문서에서 북한 비핵화라는 용어 대신에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사용해오고 있다. 중국 지도자들도 그간 정상회담 등 다양한 계기에, 북한의 핵보유와 추가 핵실험에 결연히 반대한다고 했고, 그래서 그 비핵화의 대상이 북한임을 분명히 해왔다.” |
Q. 중국은 북한을 군사적 완충지대로 간주하기 때문에 남한 주도의 통일에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하나요?
A. 그런 지적이 많지만 동의할 수 없다. 오늘날 과학기술은 안보 환경을 뒤바꿨다. 현대의 전쟁은 다층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지구 공간에서도 이루어지고 우주 공간에서도 이루어지며, 사이버 공간에서도 이루어진다. 나아가 1·2차 세계대전 때와는 달리, 오늘날에는 육군보다 공군과 해군이 훨씬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예를 들어 최근 미국 군대의 육군 비율은 18%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군사적 완충지대로서 북한의 중요성은 낮아지고 있다. 다만, 이데올로기적인 혹은 심리적인 완충지대로서 북한의 기능은 남아있다고 본다.
Q. 중국이 통일에 대해서 우려하는 점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A. 미군이 북한 지역에도 주둔하게 된다면 중국은 심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 핵시설이 있는 북한 지역에서 불안정 사태가 발생했을 때 위험하다는 점, 주민이 북중 접경 지역으로 대량 이탈했을 때 관리하기 힘들어진다는 점, 이 세 가지가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일 것이다. 다만 미군이 휴전선 이남에만 주둔하기로 하고 한국, 중국, 미국이 협력해서 핵 시설과 주민의 대량 이탈을 관리하기로 사전에 협력해서 정한다면 우려가 불식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 혹은 중국과 미국 간의 통일에 대한 다양한 사전 논의는 북한이 매우 민감해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사전 협력이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문제가 있다. 한국과 중국 사이에 신뢰가 더욱 쌓인다면 논의가 가능할 수도 있다.
Q. 교수님이 그리는 이상적인 통일 과정은 무엇인가요?
A. 북한이 핵을 먼저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선 북한이 정상국가로 거듭나도록 한국과 중국이 이끌고, 나아가 북한이 지역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핵은 버릴 것이다. 북한이 정상국가로 거듭나면 한국과 실제 통일 논의도 본격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 강의현장 영상
취재에 도움을 주신 통일부와 인터뷰에 응해주신 윤영관 교수, 주펑 교수께 감사를 드리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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