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제7기 통일부 대학생기자단 임혜민입니다. 지난 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지만 이글거리는 뙤약볕도 통일을 향한 남북 문인들의 결의를 막을 수는 없었나 봅니다. 7월의 첫째 날 삼청동 소재 극동문제연구소에서는 탈북문학 세미나 및 남북 문인 시낭송회가 개최되었습니다.
▲ 탈북 문학 세미나 및 남북문인 시 낭송회 안내책자 ▲ 탈북 문학 세미나 및 남북문인 시 낭송회에 참여한 문인 및 전문가들
이호철 소설가, "지금이야말로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통일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이번 세미나는 한국 문학계에서 처음으로 북한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합니다. 본격적인 세미나에 앞서, 북한에서 내려와 소설 '탈향'을 시작으로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온 이호철 소설가의 기조강연이 있었습니다. 이 씨는 '드레스덴 구상'과 외교부 국립외교원의 '2040 통일한국 비전 보고서'를 언급하며, 남북문제를 여전히 큰 테두리로 "나라의 문제" 같은 것으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은 각자의 처지에서 남북의 험난했던 역사를 더 살펴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이호철 소설가는 기조강연을 마친 후 최근 재출간된 자신의 작품 '남과 북, 문 열리나'에 직접 사인을 해서 청중에게 선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귀중한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많은 이들이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렸고, 저 또한 제 이름과 이호철 소설가의 친필 사인이 적힌 책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날 선물 받은 작품 '남과 북, 문 열리나'는 이 씨가 탈북하기 전에 실제로 겪은 3년여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였습니다. 이 씨는 이 작품을 통해 현 북한 정권이 처음 탄생하였을 때의 생생한 모습을 살펴보는 것은 남북이 합쳐질 때를 고려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 '남과 북, 문 열리나'에 친필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 이호철 소설가의 친필 사인을 받고 있는 임혜민 기자
박덕규 문화평론가, "한국 문학에서의 탈북의 의미는 무엇인가"
본격적인 세미나가 이어졌습니다. 문학평론가 박덕규 교수는 직접 탈북 작가들이 쓴 것은 아니지만 한국 작가들이 쓴 탈북문제 소설을 몇 편 소개하였습니다. 2009년 이응준이 지은 '국가의 사생활'은 2011년 남에 의한 흡수 통일 방식으로 남북이 통일된 것으로 가상해서 그로부터 5년 뒤인 2016년을 배경으로 통일 한국의 미래를 끝없는 욕망의 바다에서 침몰할 배로 상정합니다.
실제로 2000년대 들어 더욱 많은 북한이탈주민들이 남한을 찾았지만, 한국은 "정박할 곳 없는 바다를 떠도는 욕망의 배"인 것인지 생각해 볼 문제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북한이탈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한국에 편입한 이들의 시선은 지금 한국의 현실과 미래를 짚어줍니다. 탈북문학은 통일을 위한 바로미터인 것입니다.
▲ '한국문학에서 탈북의 의미'를 논하는 박덕규·한원균 교수 ▲ '문학인 북한인권 선언 초안'을 발표하고 토론한 방민호·박현수 교수
북한이탈주민을 주인공으로 한 문학이 다룬 내용이 어떻게 바뀌어왔는지도 논하여졌습니다. 분단 이후 한국문학이 분단 문제를 다루어온 과정은 대개 ①6.25전쟁의 체험적 상황, ②그 이후 분단이 고착되고 심화되던 1960년대와 1970년대적 사회 정황, ③분단 체제의 모순이 지적되고 통일 지향의 의식이 크게 대두되던 시기 등의 수순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탈북 소재 소설은 ①1990년대 중후반 국내적 관점으로 탈북 문제를 이해하던 작품에서 ②21세기에 들면서 국제적 경험과 인식을 포괄하는 작품으로 전개되어 왔다고 합니다. '찔레꽃' 연작, '바리데기', '리나', '로기완을 만났다' 등 여러 편의 탈북 소재 소설은 탈북과 더불어 시작된 마이너리티의 삶이 여러 나라를 체류하면서 조금씩 극복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탈북은 완전한 통일로써만 치유되는 것이지만, 보다 넓은 차원에서는 북한이탈주민 스스로의 게토 의식으로 인하여 지위 해결의 첫 장을 열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입니다.
여기서 잠깐, '게토(ghetto)'란 무엇일까요?
게토는 사회집단에서 격리된 유대교구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20세기 후반 미국이 뉴욕 등 대도시에 마련한 흑인들의 거주영역으로도 확인됩니다. 오윤호의 '탈북 디아스포라의 타자정체성과 자본주의 생태의 비극성'에서 북한이탈주민은 북한을 벗어나면서부터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비장소적이고 탈영토적인 곳에서 문화혼종성과 초국가성을 경험하며 사는 게토적 삶을 살게 된다고 진단하고, '바리데기'와 '리나'를 통해 새롭게 건설되는 게토의 의미를 읽어냅니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사람들이 머문 땅이 소외된 자들의 힘으로 재건되는 것입니다.
한원균 교수는 위에서 박덕규 교수가 논의한 사안에 대하여 토론문을 제시하였습니다. 한 교수는 '탈북문학'에 대한 개념정리가 정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또한 '탈북문학은 분단문학'이라는 관점이 요구된다고 하였습니다. 탈북문학은 '고립된 전체주의'와 '천민자본주의'를 모두 비판하는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분단극복 문학으로서 분단문학의 범주를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방민호 문화평론가, <문학인 북한 인권선언>초안 발표
세미나의 두 번째 장을 연 것은 문학평론가 방민호 교수의 '문학인 북한 인권선언 초안'이었습니다. 지금 문학인들이 해야 할 일은 북한 지역에서 모든 정치적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어야 함을 선언해야 한다는 취지였습니다. 그에 따르면 문학인은 말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하며, 한국에서 누릴 수 있는 인권을 북한에서도 똑같이 누리게 되는 그 날까지 문학인들은 양심과 양식을 걸고 말하고 써나가야 한다고 합니다.
이에 대하여 박현수 교수는 북한 인권문제가 주로 정치권에서 다루어진 현실을 고려하여 '문학인 북한 인권선언 초안'이 정치적으로 이용·오도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즉 북한 인권문제가 그 자체의 의미보다 남북의 이념 투쟁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한 것입니다. 또한 북한이 아닌 한국에서 이루어진 이런 선언이 상징적인 의미만을 지니지 않도록 실제적인 효력을 지니기 위하여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질문하며 토론하였습니다.
이지명 탈북문인, "사회와 인간 그리고 문학"
끝으로 탈북 시인 장해성 씨와 탈북 문인 이지명 씨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장해성 시인은 북한 김정일 시대 문학과 김정은 시대 문학에 대해 논하면서, 북한 소설·영화들의 특성은 김일성의 혁명 활동을 최대한 우상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지명 작가는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3정보의 땅으로 인하여 북한 정부가 제한하는 부농 계층으로 분류되었던 지난 시절을 회상하였습니다. 그로 인하여 열아홉 살에 쓴 첫 단막극이 인민군문예에 대서특필로 실렸지만 인정받지 못하였고, 탄광기사로 일하면서 고심 끝에 써낸 작품으로 조선작가동맹 작가로 공식 인정받았지만 정작 영화화된 작품에서 자신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었던 아픔을 털어놓았습니다. 2008년 대한민국에서 '삶은 어디에'를 발표하고, 이것이 한민족 방송드라마로 각색되어 자신의 이름이 소개되었을 때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자신도 잘 알지 못했던 부농이라는 출신성분 때문에 북한에서 단 한 번도 인정받지 못하다가 대한민국에 와서야 비로소 자신의 이름으로 작가로서 인정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씨는 자신도 '탈북문학'의 개념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겠다는 말을 전하며, 굶주림보다도 북한의 억압적 분위기가 더 견디기 힘들었다고 말하였습니다.
▲ 첫 순서를 맡아 자신의 작품 '백두산 천지'를 낭송한 오탁번 시인 ▲ 자신의 시 '한림정역에서'를 낭송한 이기철 시인과 경청하는 청중
세미나가 끝나고 남북 문인 시 낭송회가 있었습니다. 오탁번 시인이 자신의 시 '백두산 천지'를 낭송하며 시작되었는데, 합일 혹은 통일을 주제로 한 시가 울려 퍼지는 장내에서 엄숙한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이기철 시인은 '한림정역에서'를 읊기 전에 시의 원래 제목은 '통일호의 추억'이었지만 운문의 비유적 의미를 살리고자 제목을 변경한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저 또한 본래부터 좋아했던 '우리가 물이 되어'라는 강은교 시인의 작품도 들을 수 있어 감동이 컸습니다.
여섯 시간동안 이루어진 세미나와 시낭송회를 통하여 문인들 사이에서도 북한 인권과 통일에 대한 염원을 표현하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남북 분단이라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작품 활동을 통하여 정면으로 마주하겠다는 문인들의 결의에 비장함 또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면의 한계로 인하여 세미나에서 거론된 많은 작품들과 심화된 내용을 다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추후 기사를 통하여 남북 분단과 통일을 주제로 한 다양한 작품을 소개해 드리고 함께 읽어보는 기회를 만들겠습니다. 이상 제7기 통일부 대학생기자단 임혜민이었습니다.
<자료 출처>
데일리NK-南문단서 처음으로 '北인권 개선' 목소리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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