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팅에 앞서 여러분께 시 한편 소개해 드릴게요.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였습니다. 익숙한 시였나요? 시를 읽으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저는 백석이 로맨티스트였을거라 짐작했습니다. 출중한 외모뿐만 아니라 시 또한 아름다운! 꽃미남 시인, 얼짱 시인! 백석을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 시인 백석
어린시절 및 학창시절
평안북도 정주 출신. 본명은 기행(夔行). 작품에서는 거의 ‘白石(백석)’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
백석은 1929년 정주에 있는 오산고등보통학교를 마치고, 일본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그 뒤 8·15광복이 될 때까지 조선일보사·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함흥 소재)·여성사·왕문사(일본 동경) 등에 근무하면서 시작 활동을 했습니다. (한때 북한에 남아 김일성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고 전하지만, 확실치 않음) 백석은 그 시대 어느 문학동인이나 유파에도 소속되지 않고 독자적으로 작품 활동을 했습니다.
작품활동
백석은 193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현상모집에 단편소설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되면서 등단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마을의 유화’·‘닭을 채인 이야기’ 등 몇 편의 산문과 번역소설 및 논문을 남기고 있으나, 실제로는 시작(詩作) 활동에 주력했습니다.
1936년 33편의 시작품을 4부로 나누어 편성한 시집 『사슴』을 간행함으로써 문단 활동이 본격화되었습니다. 이후 남북이 분단되기까지 60여 편의 시작품을 자신이 관여했던 『여성』지를 비롯하여 당시의 신문과 잡지에 발표했습니다.
1937년 겨울, 백석은 두 해 동안 묶여 있던 신문사 교정직을 버리고, 본격적으로 시를 쓰려고 함경도로 내려갑니다. 그는 이때의 전후 상황을 같은 해 9월 <조선일보>에 게재한 산문 ‘가재미·나귀’라는 글을 통해 밝힙니다. 여행을 즐기던 그는 이 무렵 여러 고장을 돌아다니며 고유의 민속, 명절, 향토 음식 같은 갖가지 풍물과 방언 등을 취재해 시에 담아냅니다. 이런 풍물과 방언은 특히 ‘남행시초(南行詩抄)’를 기점으로 이후 해마다 나오는 백석의 기행시 형식의 연작시에서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후 연작시를 주로 발표하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남북은 분단됩니다. 북한에서 ‘뿌슈킨 선집 - 시편’을 번역하기도 하고, 꾸준히 시를 발표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아쉽게도 분단 이후의 북한에서의 작품 활동에 대해서는 자세히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백석은 서른 살도 되기 전에 한반도에서 가장 뛰어난 서정 시인으로 입지를 굳힙니다. 그의 시는 발표될 때마다 화제를 낳고, 그의 시가 실린 잡지는 책방에 나오기 무섭게 팔려나갔다고 합니다.
세련된 외모의 반전, 토속적인 백석
토속성과 모더니티 시기 ‘구인회’를 비롯한 모더니스트들의 서구적 취향과 달리 백석은 영문학을 전공한 시인이면서도 또다른 향토 시인 김소월이 무색할 정도로 작품 속에 북녘 지방의 토속 방언들을 꽉꽉 채워 넣었습니다. 마가리, 개니빠디, 잠풍, 몽둥발이, 벌배, 열배, 매감탕, 토방돌, 아릇간, 홍게등, 텅납새, 무이징게국, 가즈랑집, 깽제미, 물구지우림, 둥글레우림, 광살구, 모랭이, 노나리꾼, ……, 고조곤히, 지중지중, 쇠리쇠리하야, 씨굴씨굴, 째듯하니, 자즈러붙어, 벅작궁, 고아내고, 너들씨는데, 오구작작, 살틀하던, 임내내는, 이즈막하야, 깨웃듬이, 홰즛하니, ……, 이처럼 이제는 거의 들을 수 없는, 들어도 무슨 말인지 가늠하기 힘든 북쪽 지방의 방언들을 백석은 시 속에 아름답게 녹여냈습니다. 백석의 현저한 토속어 지향의 시 세계는 한국인의 얼과 넋을 황홀할 정도로 빼어나게 담아냅니다.
백석은 이미 표준어가 정착한 시기에 창작 활동을 한 문학인입니다. 또 신문사의 편집 일을 맡기도 한 그는 표준어와 방언의 차이를 잘 알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가 굳이 방언을 고집한 것은 작품 세계의 심화를 위한 것이라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구사한 방언은 용례가 매우 구체적이고 세밀해서 한국어의 질량을 한껏 느끼게 해줍니다. 또한 백석 시의 방언 구사는 아이의 시각과 목소리로 이루어지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로맨티스트 백석의 사랑
사랑은 시의 자양분! 백석의 작품도 그를 스쳐간 아프고 애틋한 사랑에서 완성됐습니다. 당대 인기가 컸던 ‘모던 보이’ 백석은 많은 여성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노천명(1912~1957)과 최정희(1906~1990) 등 당대 주요 여류 문인도 백석에 대한 애정을 작품으로 표현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로 시작하는 노천명의 대표작 ‘사슴’의 사슴은 백석을 가리켰다고 하네요.
이런 인기에도 백석의 사랑은 늘 비극적이었습니다. 백석이 ‘란(蘭)’이라 지칭한 경남 통영 출신의 박경련은 그가 평생을 두고 사랑한 여인이었습니다. 백석은 이화고녀를 다니던 박경련을 보고 한눈에 반했지만 박씨 집의 반대로 결혼은 무산됩니다. 박씨가 그의 친구이자 조선일보 동료 기자였던 신현중과 결혼하자 충격을 받고 백석은 함흥으로 떠납니다. 박씨를 만나기 위해 통영을 찾았던 기억은 시 ‘통영’ 등과 ‘남행시초’ 연작으로 남게 됩니다.
요정 대원각의 주인으로 법정 스님에게 길상사를 기부한 김영한씨와의 사랑이야기도 회자가 되곤 하는데요~ 실연의 충격에 빠져 허우적대던 백석은 1936년 함흥 영생여고보 회식에서 만난 기생 김 씨와 사랑에 빠집니다. 백석은 김씨를 ‘자야’라 부르며 잠시 동거하기도 했지만, 1939년 백석이 만주로 떠나며 헤어지게 됩니다.
자야는 1938년 발표한 백석의 대표작 ‘나와 나타샤와 당나귀’ 속 나타샤의 모델로 알려져 있습니다. 백석과 헤어진 뒤 그녀는 백석을 그리며 평생 홀로 살았다고 합니다. 자야는 책 <내 사랑 백석>에서 "백석이 사귄 다섯 여자 가운데 진정으로 사랑했던 여인은 자야였고, 자신 또한 백석에 대한 사랑을 평생 올곧게 간직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아름다운 시인 백석
백석은 몇 작품을 제외한 많은 작품에서 자신의 주관적 감정을 철저히 억누르는 극도의 절제를 발휘합니다. 바로 이런 것이 백석을 모더니즘적 시인으로 불리게 하는, 그러면서도 다른 모더니즘 시인들과 구별하게 하는 특징입니다. 반도시(反都市)적, 산촌(山村)적 성격은 백석의 시를 더욱 독특하게 보이도록 합니다. 시집 『사슴』에는 총 33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중에서 도시 문명 또는 도시 감각에 바탕을 둔 시는 한 편도 없습니다.
흔히 백석 시에 나오는 시골은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공간이 아니라 안온하고 풍요로운 전원으로 비춰집니다. 때론 이런 그의 시가 현실과 동떨어진 것으로 비판되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슬픔과 그리움을 삭이려는 시인의 힘겨운 얼굴이 숨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세련된 외모와 향토적인 작품이라는 반전, 절제된 순수함을 지닌 시인, 진정으로 사랑을 할 줄 아는 로맨티스트, 백석의 매력에 빠지셨다면 지금 백석의 시집을 찾아 시 한 소절 읽어보세요. 싱그러운 봄, 그처럼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있을 거예요.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박문각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나는 문학이다, 장석주, 2009.9.9, 나무이야기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2067483&cloc=olink|article|default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5912
사진 출처
시인 백석 사진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32&aid=0002113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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