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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통일문화공간

남북한 축구여, 아시아의 맹주자리를 되찾자!

남북한 축구여, 아시아의 맹주자리를 되찾자! -축구박물관을 다녀와서


 전 세계인들의 축제인 월드컵! 드디어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한국 축구대표팀 또한 8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여 많은 국민들이 기대를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선수들의 열정과 관중들의 함성이 넘치는 월드컵을 맞아 '한국과 북한축구'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경기도 수원시에 소재한 수원월드컵경기장 축구박물관을 방문하여 축구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비교적 한산했던 박물관은 조용하고 아담하면서도 진귀한 전시물과 같은 볼거리가 꽤 많았습니다. 특히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눈이 번쩍할 세계 축구스타들의 용품인 베컴의 축구화, 사비 선수의 유니폼, 박지성 선수의 소속 클럽별 첫 골 기록 당시의 유니폼, 수원 삼성과의 방한 경기 당시 FC바르셀로나 페넌트 등이 있어 입장료(1,000원)에 비해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수원월드컵경기장

  수원월드컵경기장은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던 2002 한일 월드컵 때 성공적으로 활용되었으며, 이후에도 각종 국제 축구대회는 물론 삼성 블루윙즈 홈 경기장으로 사용됨으로써 한국축구발전의 중심으로 자리매김 하였습니다. 또한 다목적 스포츠 공간, 레저관광, 문화 이벤트 명소로 재탄생하여 세계적인 명문구장을 향한 제2의 도약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박물관 소개

  저희가 찾아간 곳은 수원월드컵경기장입니다. 경기를 보러갔냐고요? 아닙니다. 저희는 그 거대한 스타디움 바로 아래에 위치한 '축구역사박물관'을 다녀왔습니다. 이곳은 축구와 관련한 사료적 가치를 집대성한 국내 최고의 축구박물관입니다. 1882년 한국 최초의 축구화부터 박지성 기념코너에 이르기까지 한국 축구의 역사는 물론 북한 및 세계 축구의 역사를 한눈에 보실 수 있습니다.


 박물관 구성

■ 로비 및 프리존 : 로비에선 티케팅이 이뤄지며, '프리존'에 위치한 2002 태극전사들의 사진과 함께 촬영이 가능합니다. 한국 축구잡지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수원월드컵 경기장 구조 및 간략한 소개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 박지성관 : 수원 출신인 박지성 선수에 대한 특별전시관입니다. 박지성 선수의 유소년 시절부터 첫 국가대표 선발, 해외진출 및 맨유 시절의 유니폼, 축구화 등의 진귀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특히 박지성 선수의 축구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찬 내용의 초등학교 시절 일기장을 보는 것이 큰 재미를 선사합니다.

■ 축구공 제작기계 : 1950년대 축구공 제작기계와 지푸라기 축구공, 돼지오줌보 축구공, 소가죽 축구공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 안정환 골든볼 : 2002년 6월 18일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한국은 연장후반 12분 안정환 선수의 헤딩 골든골로 2:1 승리를 하고 8강에 오르게 됩니다. 이 경기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최고의 명승부로 기억되고 있으며, 그 감동의 중심에 이 골든볼이 우뚝 서 있습니다. 더욱이 2004년 FIFA가 선정한 '추억의 8대 골든골'로 선정되어 그 역사성과 희소가치가 더욱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 2002한일월드컵관 : 2002년 6월의 태양은 그들이 있었기에 더욱 뜨거웠습니다. 대한민국 축구사를 새로 쓴 자랑스러운 태극전사 24인의 얼굴 금형 조각과 BEST 11의 모형, 붉은악마 관련 자료들을 보실 수 있으며, 2002 한일 월드컵 한국 대표팀의 발자취가 순서대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 유니폼관 : 이곳에는 역대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유니폼과 세계 여러 나라의 유니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특히 한국 축구국가대표팀의 각 유니폼들은 1960년 대표선수들의 동계 훈련복에서부터 2002년 월드컵 당시 이운재 선수가 착용했던 유니폼까지 그 역사적 가치들로 인해 더욱 관람의 재미를 느끼실 수 있습니다.

■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코너 : 1954년 스위스 월드컵,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처음으로 월드컵에 참가하게 됩니다. 비행기가 없어 미군의 수송기를 얻어 타고 오랜 비행시간 끝에 스위스에 입성하게 된 한국 대표팀은 2전 2패(16실점/무득점)의 초라한 성적을 거두지만, 그들의 '내 나라 대표'라는 당당한 자부심만큼은 어느 나라에 못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이곳에서는 당시 대표팀 감독이셨던 故김용식 선생님의 친필 작전메모(원본), 대표팀 관련 신문기사, 대표팀원들의 친필 사인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 영상실 :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에 터진 골 영상, 수원월드컵경기장 홍보영상, 어린이 파이팅 코리아 홍보영상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월드컵 개최국들의 패넌트와 포스터, 역대 K리그 득점왕의 풋프린트 등 다양한 축구 관련 자료가 있어서 취재 내내 감탄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이렇게 박물관에는 축구에 관한 다양하고 흥미로운 콘텐츠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한국과 북한축구의 역사' 코너입니다. 통일이 되어 남북한이 하나의 단일팀으로 세계를 호령하는 상상을 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입니다. 통일이 된 후에 불협화음 없이 남북한의 축구가 잘 융합되기 위해선 먼저 남북한 축구 역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겠죠?  한국 축구의 역사부터 알아보겠습니다.


 

 한국축구의 역사

■ 1882-1942년 한국축구의 태동기

 근대 축구의 종주국인 영국으로부터 19세기말(1882년, 고종 19년) 처음 축구가 전파되었습니다. 그리고 1920년대에 들어서부터 필요한 장비를 갖추고 국제적인 규칙 하에 경기가 진행되었습니다. 이후 한국축구는 1993년 '조선축구협회'가 만들어지면서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고, 당시 가장 유명한 축구경기인 경성(서울)과 평양의 경평대항전은 많은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 1945년-1979년 아시아의 정상에 오르다!

 드디어 한국축구는 1948년 런던올림픽에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참가하여 처음으로 국제대회를 경험하였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바로 다음해(1954년) 힘든 현실에도 불구하고 저력을 발휘하여 스위스 월드컵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이후 1956년, 1960년 아시안컵 대회를 2연패하는 등 60~70년대 아시아에서 열린 많은 국제대회를 우승하였고, '아시아의 호랑이'이라는 지위를 굳혔습니다.

■ 1983년-1995년 프로축구가 시작되다!

 1983년 한국은 아시아 최초로 프로축구를 출범시켰습니다. 당시에는 2개의 프로팀과 3개의 실업팀으로 시작하였으나 2014년 현재 질적, 양적으로 많은 발전을 이뤄냈습니다. 프로축구는 한국축구의 발전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출범 첫해부터 세계청소년대회 4강에 진출했으며, 1986년에는 32년 만에 멕시코월드컵에 진출하여 국민들에게 많은 기쁨을 주었습니다. 이후 1990년 이탈리아, 1994년 미국월드컵에 잇달아 출전하며 한국축구의 위상을 전 세계에 드높였고, 세계축구와의 격차를 조금씩 줄여나갔습니다.

■ 1996-2014년 세계로 나아가는 한국축구

 2002년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개최한 한일월드컵에서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세계 강호들을 격파하며 4강에 올라 전세계 사람들에게 한국축구의 저력과 한민족의 우수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이후 계속되는 발전을 통해 세계적 명문구단인 맨체스터유나이티드에서 맹활약한 '박지성'이라는 걸출한 아시아 최고 스타를 배출하였으며, 현재 많은 한국선수들이 세계무대에서 활약 중입니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 진출이 확정되면서 대한민국은 8회 연속 월드컵진출이라는 대업적을 이룩하였습니다.


 다음은 북한축구 사료를 관람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전시코너입니다. 1966년 북한의 영국 월드컵 8강 진출의 주역인 리찬명씨의 골키퍼 장갑과 북한의 역사적이었던 축구팀인 4 25팀 관련 사료들, 2008 17세 이하 여자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북한 대표 팀의 친필 사인 페넌트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북한축구관련 사료들이기에 그 의미가 더욱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북한축구의 역사

  북한의 축구협회는 1945년에 창설이 되었습니다. 1958년 국제축구연맹(FIFA)에 가입하였고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에서 처음으로 참가해 16강에 올라 이탈리아를 1-0으로 꺾고 8강에 진출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8강전에서도 에우제비오를 앞세운 유럽 전통의 강호 포르투갈을 만나 전반 25분 만에 3골을 기록하는 등 3-5로 아쉽게 패하긴 했지만 각국의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1970년 멕시코월드컵과 1978년 서독월드컵 예선에 불참했고 19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에서는 경기 중 심판을 구타하는 물의를 빚어 수년간 국제대회 출전을 금지 당했습니다. 북한은 1998년 프랑스월드컵과 2002 한일월드컵 예선에도 불참했고 아시아 예선에서의 부진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최종예선에서 극적으로 조2위로 남북한이 월드컵 본선에 동시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물론 조별리그에서 1득점 12실점이라는 초라한 성적만 남긴 채 탈락했지만 전세계에 북한 축구의 저력을 여실히 증명할 수 있었습니다. 북한은 2014년 브라질월드컵 예선에서 탈락했기 때문에 아쉽게도 다가오는 월드컵에선 북한 축구를 볼 수 없습니다.


 혹시 북한의 축구용어에 대해 아시나요? 북한에서는 우리의 표준어와는 달리 이른바 '문화어'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이 한자어와 외래어를 고유어로 대체해 쓰고 있습니다.

문지기(골키퍼), 방어수(수비수), 중간방어수(미드필더), 중간지대(미드필드), 연락(패스), 긴연락(롱패스), 중앙으로 꺾어차기(센터링), 문전바깥(골라인아웃), 가로막대(크로스바), 공격어김(오프사이드), 모서리공(코너킥: 코너킥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함), 벌차기(프리킥), 11m볼차기(페널티킥), 경기과정에 허비한 시간(로스타임), 머리받기(헤딩), 보조주심(부심), 손다치기(핸들링), 금골(골든골)


  한국에는 K리그가 있다면 북한에는 남한의 프로 리그와 비슷한 1급, 2급, 3급과 청년 리그, 각 공장팀이 있습니다. 1급에는 4.25 체육단, 평양시, 소백수, 압록강, 리명수 체육단 등 실력 있는 15개 팀이 있으며, 2급과 3급에는 각각 40개, 80개 팀이 있습니다. 북한의 축구대회는 최상급축구련맹전, 기술혁신경기, 공화국선수권대회 등 크게 3개로 나뉩니다. 리그는 1년에 3단계로 나눠 열리며 7월에 열리는 전승컵만 토너먼트대회고 나머지 두 대회는 풀리그로 펼쳐집니다. 매년 상위 리그의 최하위 한 개 팀과 하위 리그 최상위 팀이 교체됩니다.

 

 

최근 들어 북한의 축구선수들에게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데, 현재 가장 잘 알려진 북한 국가대표 출신의 축구선수로는 정대세(31, 수원 삼성 블루윙즈) 선수와 박광룡(23, FC 바젤) 선수를 꼽아볼 수 있습니다. 정대세 선수는 조금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한 사람인 아버지와 북한 사람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조선학교를 다녔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 북한의 부름을 받고 북한국가대표로 활약했습니다. 현재는 K리그 수원에서 포워드로 뛰고 있으며 지난 시즌 23경기에 출전해 10골 2도움의 준수한 활약을 펼쳤습니다. 박광룡 선수는 지난 2012년 소속팀 FC 바젤이 챔피언스리그 32강 조별예선에서 박지성 선수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맞붙게 되며 국내 축구팬들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당시 박주호(25, 마인츠) 선수 역시 FC 바젤 소속 팀동료로 활약했었고 결국 FC바젤은 접전 끝에 조 2위로 전통의 강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꺾고 챔피언스리그 16강 진출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축구는 남자만 즐기는 스포츠가 아닙니다. 여자 축구 역시 남자 못지않은 파워풀한 플레이와 역동적인 팀워크를 구사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북한 여자 축구 대표 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북한은 주요 체육단에 여자 축구팀 보유를 의무화하도록 해 평양에만 여자 축구팀도 6개가 있으며 전국적으로는 12개 팀이 실력을 겨루고 있습니다. 북한이 세계 여자축구 무대에 첫 선을 보인 건 1980년대 후반으로 2000년대 들어 세 차례나 우승컵을 거머쥐며, 명실상부 아시아 최강팀으로 우뚝 설 수 있었습니다. 2006년엔 러시아에서 열린 20세 이하 여자월드컵 축구 결승에서 상대인 중국 팀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인 끝에 5-0이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우승컵을 품에 안기도 했습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한 대회에서 아시아가 우승을 차지한 것은 북한이 처음일 정도로 북한 여자축구는 강했습니다. 2년 뒤인 2008년, 17세 이하 여자월드컵 대회에서도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계속된 황금기를 맞았습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조별리그 1승2패 승점 3점으로 3위의 성적을 거두었으나 8강 진출에는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해 10월 2012 국제축구연맹(FIFA) U-17 여자월드컵 결승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다시 한 번 북한 여자 축구의 저력을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축구박물관을 통해 축구에 대한 다양한 콘텐츠도 학습하고, 한국과 북한축구 역사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았습니다. 대한민국은 현재 월드컵 본선에는 진출했으나 피파랭킹이 낮은 상태입니다. 북한은 월드컵 본선에 진출조차 하지 못하였습니다. 과거에 아시아를 호령했던 남북한 축구가 현재 소수의 스타들을 제외하고는 약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위 다른 나라들을 살펴보면 중국은 아시아 축구시장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으며, 일본은 꾸준히 축구에 투자하여 일본 국민들이 자국리그에 많은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어쩌면 몇 십 년이 흐른 후에는 한국과 북한은 더 이상 축구강국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상황을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통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일이 된다면 일단 프로리그의 규모가 커져 더 많은 국민들이 축구에 관심을 갖고 참여할 수 있을 것 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자본이 유입되어 대한민국이 아시아축구시장의 중심이 될 수 있을 것이며, 수많은 축구인재들이 배출되어 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호령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통일이 되기 전 남북한 축구가 많은 교류를 나누고 2012 런던올림픽 영국 단일 축구 대표 팀의 예처럼 단일팀으로 국제대회에 출전한다면 더 좋은 성적도 바라볼 수 있을 것이고, 이러한 과정들이 모여 통일로 가는 지름길을 열 수 있을 것입니다.

 빠른 시일 내에 남북한 축구가 아시아 맹주의 모습을 찾길 바라며 이상 이정원, 김창균 기자였습니다!


[출처]

북한의 프로리그, 북한의 여자 축구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68753&cid=685&categoryId=1424 / [네이버 지식백과] 북한의 축구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북한의 축구 용어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68754&cid=685&categoryId=1424  / [네이버 지식백과] 북한의 축구용어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박광룡 선수 사진 - http://blog.naver.com/kdd8871?Redirect=Log&logNo=90124372257

북한여자축구 선수단 사진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28&aid=0000169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