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동물을 좋아하시나요?
저는 동물을 무척 좋아하는데 그중 특히 개를 좋아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듬직하고 순한 백구에 등에 매달려 놀았고 산과 들도 백구와 함께 쏘다니며 컸습니다. 이후에도 아키타, 또 다른 백구, 말티즈 등의 다양한 반려견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서울로 유학을 와서도 유기견이나 입양이 필요한 반려견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가 '우리'라는 말티즈 종 반려견을 입양하여 가족으로 맞이했습니다. 이후 '우리'는 제 개인적인 사정으로 다른 가족들 품으로 가게 되었지만 '우리'와 함께 했던 시간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기쁨과 감동으로 가득했습니다.
'우리'가 두 살때 모습입니다. 너무 혈기왕성한 녀석이라 무슨일이 있어도 하루에 2시간은 산책을 시켜줬던 녀석입니다. 많이 까불기는 했지만 눈치 빠르고 똑똑한 녀석이라 큰 사고 한번 치지 않았습니다. 상황파악부터 애교작전까지... 모든 전략의 시작은 흘겨보는 저 눈빛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은 개를 곁에 두고 좋아합니다. 역사적으로도 개들은 인간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수십 세기 이상을 함께 해왔습니다. 요즘은 강아지, 개들이 '애완'의 대상을 넘어 '반려'의 상대로 인정받으며 '반려견'이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가족 같은 존재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사실 한국에서 '애완'이나 '반려'같은 단어가 강아지나 개(그 외 기타 모든 동물들)에게 제대로 자리 잡은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습니다. 강아지나 개가 사람의 품에 안겨 다니는 것은 불결하게 생각했고, 사람이 생활하는 실내에 '그것들'을 들인다는 것은 엄청난 사랑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청와대에서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꾸준히 반려견에 각별한 애정을 쏟는 대통령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소위 '퍼스트독'들이 존재했고 국민들과 많은 애견인들은 대통령들의 임기가 바뀔 때 마다 퍼스트독에 꾸준한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전 대통령부터 '한국 퍼스트독'에 대한 전통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굉장한 애견인으로 미국 생활을 함께 했던 카발리에 킹찰스 스패니얼 네 마리를 데려와 키웠으며 각종 행사에 데리고 다니며 자유로이 풀어뒀다고 합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진돗개에 큰 애정을 쏟았고 전두환 전 대통령도 두 마리의 진돗개에 애정을 쏟았습니다.(훗날 전 前 대통령의 진돗개들은 경매에 붙여지는 수난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사진 자료는 찾지 못했지만 윤보선 전 대통령 또한 청와대에서 진돗개를 키웠다고 합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 또한 상당한 애견인으로 네 마리의 요크셔테리어를 청와대에 자유로이 풀어뒀다고 합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청돌이'라는 진돗개를 애지중지 했으며, 최근의 박근혜 대통령 또한 당선 소식이 알려짐과 동시에 삼성동 사저를 떠나면서 동네 주민들에게 진돗개 한 쌍을 선물 받아 현재도 청와대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반려견과 함께 가족사진을 촬영하는 이승만 전 대통령일가의 모습입니다. 네 마리의 스페니얼들이 착하게 잘 앉아있습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각종 행사, 군부대 시찰 시에도 반려견들을 대동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와이 망명시에도 비밀리에 모두 다 데려갔다고 전해집니다. | 박정희 전 대통령 또한 반려견 사랑이 대단했다고 합니다. 진돗개는 물론, '방울이'라는 이름의 스피츠 종의 반려견도 키웠다고 합니다. 또, 올해 국가기록원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한 사진을 공개했을 때도 반려견이 함께 찍힌 사진이 다수 발견되어 박 전 대통령의 반려견 사랑이 알려졌습니다. | 전두환 전 대통령은 두 마리의 진돗개를 키웠습니다. 대통령 비자금 사건으로 인해 재산몰수 판결이 났을 때, 이 두마리의 진돗개 역시 재산으로 인정되어 경매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순종이 아니라는 판정이 나와 40만원이라는 헐값(?)이 매겨지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임기중에도 SNS를 통해 청돌이와의 생활을 활발히 알리기도 했습니다. | 당선이 확정되고 삼성동 사저를 떠나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진돗개를 선물하는 동네 주민들. 이 때 선물 받았던 두 마리의 진돗개는 현재도 청와대를 늠름하게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
이렇게 살펴보니 유독 진돗개를 곁에 두었던 대통령들이 많습니다. 진돗개는 한국의 천연기념물 제53호로 전라남도 진도군과 한국을 대표하는 견종입니다. 진돗개는 주인에게 충성심, 복종심이 강하고 영리하다는 특징 때문에 국민들은 물론, 많은 대통령들에게 사랑 받았고, 받고 있습니다.
한국의 대표 견종 진돗개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던 대통령들……. 하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진돗개 한 쌍, '평화'와 '통일'이를 북한에 선물합니다. 이에 북한 역시 풍산개 '자주'와 '단결'이를 한국으로 보냈습니다.(풍산개는 춥기로 소문난 량강도 풍산지역의 사냥개입니다. 영리하고 용맹하여 '호랑이 잡는 개'로 불릴 정도로 사냥과 경비에 탁월한 능력을 보인다고 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재임 시기에 개는 '남북 화합의 상징'이 되어 민간 사절단 역할까지 맡게 된 것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견종 진돗개 한 쌍과 북한을 대표하는 견종 풍산개 한 쌍의 교환은 당시 국민들에게 통일의 기운을 느끼게 하며 보는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습니다.
북한의 선물로 청와대의 퍼스트독이 된 풍산개 '자주'와 '단결'이. 하지만 곧 김대중 전 대통령은 '우리'와 '두리'로 개명을 했다고 합니다.
한국으로 온 풍산개 '자주'와 '단결'이는 이름을 '우리'와 '두리'로 개명하고 5개월간 청와대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이후 이 풍산개 한 쌍을 국민들에게 공개하라는 김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고 풍산개 부부는 서울대공원으로 보내졌습니다. 북한으로 건너간 진돗개 한 쌍 역시 곧바로 평양중앙동물원으로 옮겨졌다고 알려졌습니다.
그로부터 어느새 10여 년이 지났습니다. 북한으로 건너간 '평화'와 '통일'이, 그리고 한국으로 왔던 '우리'와 '두리'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어느새 노견이 되어버린 '우리'와 '두리'의 모습. 2010년 서울대공원에서 사육사와 산책하며 찍은 사진입니다.
먼저 풍산개 '우리'와 '두리'는 서울대공원으로 옮겨진 후 금슬 좋은 부부로 잘 살았다고 합니다. 너무 금슬이 좋은 나머지 격리를 시켜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고 하는데요, 수컷인 '우리'가 암컷 '두리'에게 먹을 것을 계속 양보하여 너무 야위자 사육사가 극단의 조치로 격리까지 시켰다고 합니다. 이 금슬 좋은 풍산개 한 쌍은 2013년 14살의 나이로 천수를 다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4월에 '우리', 10월에 '두리'가 세상을 떠난 것을 두고 많은 사람들은 냉각기에 있는 현재의 남북관계와 연관 지으며 안타까운 마음을 표했습니다. 하지만 이 금슬 좋았던 풍산개 부부는 28마리 이상의 새끼를 낳았고 이 새끼들은 한국의 각지로 흩어져 자손 번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정확한 수치 계산은 어렵습니다만 3대에 걸쳐서 수백 마리의 자손을 뒀다고 알려집니다. '우리'와 '두리'가 가지고 있던 통일의 불씨는 전국으로 퍼져 꺼지지 않고 살아있는 것입니다.
북한으로 갔던 진돗개 한 쌍 '평화'와 '통일'이 역시 금슬 좋은 부부로 40여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고 전해집니다.
2007년 9월 공개된 평양중앙동물원의 '평화'와 '통일'이의 모습. 영상으로 확인했을 때도 아주 활발하고 건강한 모습이었습니다. | 2006년 북한 매체(조선신보)를 통해 공개된 '평화'와 '통일'이의 네 마리의 새끼들. 새끼들은 안고 있는 사람들은 평양 중앙동물원의 사육사들입니다. |
40여 마리의 새끼들은 북한 전역의 동물원으로 보내져 길러지고 있다고 합니다. '평화'와 '통일'이의 사망 소식은 알 수 없지만 북한에서도 통일의 불씨는 진돗개 2세, 3세로 계속 이어져 가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동물을 이용한 외교는 군, 경제 분야의 외교보다 부드러운 이미지로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기에 요즘 많은 국가들 사이에서 적극 활용되고 있습니다. 중국의 '판다외교'나 지난 6월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으로부터 따오기 기증을 약속 받은 것 또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국으로 건너온 풍산개 한 쌍, 북한으로 건너간 진돗개 한 쌍. 한반도를 대표하는 두 견종 모두가 화목하고 금슬 좋게 살았다는 소식을 단순히 흐뭇하게만 볼 수 없는 현재의 남북 냉각기가 안타깝기만 합니다. 한국과 북한에서 여전히 살아 숨쉬는 '우리'와 '두리', '평화'와 '통일' 두 쌍의 동물외교관들을 추억하며 하루 빨리 한반도에 따뜻한 평화의 바람이 불어와 다양한 분야의 교류, 웃음, 행복, 친밀감이 회복되길 빌어봅니다.
사진 출처: 대통령기록관, 국가기록원, 청와대 공식 트위터, MBC 뉴스 캡쳐, 연합뉴스 보도 자료, 서울대공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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