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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통일로 가는 길

그대여, 물을 건너지 말아요…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에 대한 남북의 견해차


<정지숙 감독의 서울국제영화제 출품작 '공무도하가'>
가수 이상은의 노래, 공무도하가를 만화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출처 : 유튜브

님아, 님아, 내 님아, 나를 두고 가지 마오.
님아, 님아, 내 님아, 그예 물을 건너시네.
아! 물에 휩쓸려 돌아가시니
아! 가신 님을 어이 할꼬
…….

공무도하 공경도하 타하이사 당내공하
公無渡河 公竟渡河 墮河而死 當奈公何


 한 일간지가 뽑은 한국의 100대 명반 중 10위로 선정된 가수 이상은의 6집,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1996년 발표된 이 앨범에서 단연 돋보이는 곡은 이 앨범의 제목이기도 한 '공무도하가'라는 노래였다. 재즈와 국악의 요소가 서로 뒤섞인 가락 그리고 한 여인의 담담한 절규를 담은 가사가 한 데 어우러진 곡으로 17년 전의 노래라 여기기 무색할 정도로 세련된 느낌의 곡이기도 하다. 

 사실 이 노래는 고조선 시대의 동명(同名) 노래인 공무도하가를 현대적으로 풀이한 것이다. 중국 후한의 채옹이 쓴 <금조>라는 책에선 그 노래의 유래를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조선의 곽리자고(藿里子高)라는 진졸(津卒)이 새벽에 백수광부(白首狂夫 : 흰 머리의 미친 사내)가 아내의 만류에도 머리를 풀어헤치고 술병을 든 채 물을 건너려고 하다가 그만 물에 빠져 죽자 그의 아내가 “그대여, 물을 건너지 말아요…(公無渡河)”라며 노래를 부른 뒤 남편을 따라 물에 빠져 자살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자신이 본 내용을 자신의 아내, 여옥(麗玉)에게 들려주었고 이에 그녀는 공후(箜篌)라는 현악기를 타며 그 소리를 따라하더니 이를 이웃의 여용(麗容)이라는 여인에게 전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슬픈 사랑의 전설이 담겨있는 노래, 공무도하가! 이 노래는 그 가사 내용 자체의 처연한 아름다움과 함께 현존하는 한국 최고(最古)의 창작문학 작품이라는 점 그리고 독특하게도 다양한 인물들이 출연하는 배경설화를 가진 작품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국문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남북을 가리지 않고 많은 국문학자들이 이 작품에 대하여 나름의 다양한 해석들을 제시해왔는데 그렇다면 과연 남북의 학계는 이 작품에 대해 서로 어떠한 입장을 취하고 있을까? 


南, 백수광부는 신(神) 또는 무당이었다!

 국문학자 정병욱은 백수광부가 머리를 풀어헤치고 술병을 든 채로 다녔다는 묘사가 그리스 신화의 디오니소스가 술에 취해 광기를 부리는 것과 유사하며 또한 아울러 아무런 두려움이 없이 스스로 물 속으로 들어간 것은 그가 삶과 죽음의 구분을 초월한 신적 존재라는 증거라 보았다. 하여 그는 백수광부를 주신(酒神)이라 주장했다.

 한편 남편의 죽음을 보고 노래를 부른 백수광부의 처를 그는 악신(樂神)으로 보았는데 이는 남편의 죽음에도 태연히 공후를 타며 노래를 한 뒤에서야 자살을 한다는 설정이 마치 물가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그리스 신화의 님프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둘이 죽은 뒤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곽리자고와 그의 아내인 여옥 그리고 이웃의 여용의 존재는 신화가 인간의 세계로 내려와 하나의 설화로 굳어진 것을 뜻한다고 보았다.

 김학성은 백수광부의 이야기를 입신(入神)상태에 돌입한 미숙련 박수무당[男巫]의 실패담으로 해석하였고 조동일도 머리를 풀어헤치고 술병을 든 백수광부가 강물에 뛰어드는 것은 망아의 황홀경에 접어든 무당의 모습이며 물에 빠지는 행위는 죽음을 이기고 새로운 권능을 확인하는 의식의 거행이라 보았다.
 또한 그것과 함께 그는 백수광부가 끝내 죽고 말게 된 까닭이 고조선의 점차 국가적 체계가 확립돼감에 따라 국가적인 지위를 차지하지 못한 민간의 무당들이 불신과 배격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상황 때문이라 보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공후를 탄 백수광부의 아내도 남편이 죽은 그 자리에서 공후를 타면서 넋두리의 노래를 불렀다는 점에서 역시 남편과 같은 무당으로 볼 수 있다고 해석하였다.


北, 백수광부는 억압 받는 하층 인민 계층이었다!


<아프리카에서 잡아온 사람들을 노예로 팔고 있는 이슬람 상인(왼쪽)과 노예제 사회의 폐단을 그린 드라마, 추노(오른쪽)> 출처 : 위키 백과

 한편 북한의 학계에서는 이 작품을 노예제 사회의 소산이라며 고전시가에조차 공산주의적 이론을 대입한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백수광부가 이른 새벽에 물 속에 빠지며 자살을 한 것과 그것을 통곡하며 남편의 뒤를 따라 자살을 해야만 했던 아내의 행동은 하층 인민들이 고대 노예제 사회에서 겪어야 했던 비극의 반영이고 때문에 이 노래에서 흐르고 있는 비통한 정서는 당시 가난하고 천대받는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과 불행에 대한 창작자의 울분과 슬픔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최고(最古)의 창작문학을 둘러싼 남북의 견해차

 남한의 학자들이 고조선 사회가 신정정치의 고대임을 감안하여 신화적인 텍스트로써 이를 풀이한 것에 비해 북한의 학자들은 고전시가에까지 한사코 공산주의 이념을 대입하여 해석한 것이 매우 흥미롭다. 이렇듯 한국의 가장 오래된 창작문학 작품인 이 시가에서까지 남북의 학계는 일말의 공통점조차 없는, 상이한 해석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60년이 넘는 분단의 세월이 낳은 이러한 극단적 견해차 역시 향후 통일 대한민국 시대를 위하여 요구되는 또 하나의 해결 과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백수광부의 아내가 부른 이 슬픈 노래의 진실에 대해 남북이 합리적이고 일치된 견해를 내놓는 날이 하루 빨리 다가오기를 기원해본다.



<참고자료>
조선문학통사 1, 박종원, 이희문화사 (1996)
<사진출처>
이상은 6집 공무도하가 : 네이트 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