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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통일로 가는 길

분단사학의 현실과 통일사학 준비

여러분, 통일이 되면 우리 민족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북한 주민들의 구제? 통일 경제 활성화? 물론 많은 과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역사 문제입니다. 우리 민족은 반만 년을 한반도라는 터전 위에서 함께 살아왔으며 같은 역사를 공유하고 있으나, 분단의 세월 동안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는 매우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통일 후 큰 문제로 대두될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민족의 동질성 회복 차원에서라도 남북한 역사인식의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되는데요, 오늘은 바로 남북한 역사인식과 서술의 문제를 통해 통일사학의 필요성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분단이 가져온 역사학의 분열

1945815일 해방 이후, 한국의 역사학은 일제하의 식민사학을 극복하고 민족주의 사학, 사회경제사학을 중심으로 하는 반식민사학과 새롭게 대두되는 실증사학을 바탕으로 현대역사학의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민족 분단으로 인해 남, 북으로 갈린 우리 민족은 각기 다른 이념과 체제 속에서 별개의 역사관을 이룩하게 되었고, 분단의 세월이 길어지면서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지고 말았습니다.

역사서술 목적에 있어서 남한은 과거 사실의 올바른 이해와 민족의 방향 제시라는 지극히 일반론적이고 원론적인 입장을 표방하고 있는데 비해, 북한은 국가 체제의 특성상 김일성, 김정일의 영도 하에 사회주의 혁명 완수라는 것에 그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이처럼 김일성, 김정일(그리고 이제는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 체제와 노동당 일당독재 체제 아래에서 북한의 역사학은 체제 옹호용 어용 학문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남북한의 역사서술과 역사교육의 차이는 결국 남북한이 같은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족사에 대한 상반된 이해를 가져오게 되었고, 민족의 동질성을 파괴하는 거대한 벽으로 자리잡게 된 것입니다.


북한에서의 역사인식의 특징

북한에서의 역사인식의 특징은 첫째로 모든 역사적 현상을 인민들의 투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점입니다. 실상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 체제로 운영되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인민대중의 투쟁을 강조하는 북한에서는 역사인식에 있어서도 지배계급의 활동을 부정하고 인민들의 활동이나 역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북한에서는 이순신 장군을 민족의 영웅이라 칭송하면서도, 이순신 장군이 양반지주계급이었다는 점을 언급하며 공적을 깎아내리고 이순신 장군을 도와 임진조국전쟁(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인민(조선 백성)들의 역할을 더 높이 칭송하고 있습니다.

둘째, 김일성 교시로 대표되는 주체사상의 반영입니다. 북한에서는 어떠한 책에도 맨 첫 장에서 의례적으로 김일성 교시를 인용하며 시작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특히 최근에는 김정일의 유시가 추가되어 김일성-김정일 교시로 대표되는 주체사상이 역사인식과 서술의 방향으로 정해져 획일적이고 개인숭배적인 그릇된 역사인식의 양산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셋째, 북한의 역사인식체계에서는 북한 정권에 대한 정통성 부여라는 정치적 목적이 깔려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김일성 한 사람의 우상화를 통해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체제와 북한의 공산정권에 정통성을 부여하려는 정치적 목적을 엿볼 수 있는데요, 이러한 정치적 목적은 고대사의 서술에 있어서도 잘 드러납니다. 북한에서는 고대사 서술에 있어 한민족의 본토 기원설을 비롯하여 고구려사 위주로 서술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는 고조선과 고구려의 도읍이 평양이었다는 점을 강조하여 고조선-고구려-북한 계승론을 뒷받침하기 위한 포석인 것입니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단군릉과 동명왕릉의 발굴과 복원을 통해 한민족의 기원을 평양 일대에서 찾기 시작했으며, 우리 민족의 역사가 평양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각종 왜곡과 날조도 서슴지 않고 있는 현실입니다.

(사진: 북한에서 출판한 고구려사 서적 - 출처: 연합뉴스)

끝으로 북한의 역사인식은 시대구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유물론적 법칙에 입각하여 서술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역사란 개체 사실의 내면적 발전과정과 과거사실의 객관적 서술, 그리고 우연적인 요소까지도 중시해야 하기에 하나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나 북한은 이러한 역사의 기본적인 원리마저 무시하고 역사 위에 군림하는 김일성주체사상이라는 초월적인 존재와 획일적인 법칙 속에 역사를 뜯어 맞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남한

북한 

 선사시대

원시사회

원시사회 

 원시사회

 원시사회

 부족연맹시대

초기국가

고대 

 고대

 노예제사회

 삼국시대

 고대국가시대

봉건사회 

 봉건제도의 성립

 통일신라시대

 남북국시대

 봉건제도의 발전

 고려시대

 귀족문벌사회

중세 

 봉건적 예속의 강화

 권문제족, 신흥사대부사회

 봉건체제의 재편성

 조선시대

 양반관료사회

근세 

 자본주의적 관계발생

 사림정치

 봉건제도의 위기

 조선후기의 사회변동

근대 

 부르죠아 운동의 시작

 양반사회의 파탄

 부르죠아 개혁

 개화, 보수의 갈등

근대 

 부르죠아 운동의 종말

 동학혁명, 근대개혁

현대 

 항일무장투쟁시대

 대한제국, 국권수호

 민주건설시대

 일제

 일제, 국권회복운동

 사회주의 건설시대

 대한민국

 미군정시대

현대 

 대한민국

(표: 남북한 시대구분의 차이 - 출처: 『韓國史學史』, 신형식 저, 삼영사)

 

『한국사』(남한 국사교과서) 

 『조선역사』(북한 교과서)

 역사를 공부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과거에 대한 이해를 통하여 현재를 바로 인식하고, 미래를 올바로 설계함에 있는 것이다. 민족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우리의 현재와 미래의 문제를 바르게 처리할 역사적 능력을 계발, 신장시키고, 민족의 역량을 확신하는 속에서 현재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게 한다.

(중략) 우리 민족이 이루어 놓은 전통과 역사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민족의 삶을 이해하는 문제, 민족의 삶에 이바지하는 문제가 달라진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고, 이를 토대로 오늘의 역사적 사명인 조국의 통일과 민족의 번영을 하루 빨리 이룩하여 우리 후손으로 하여금 자랑스러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다.

 오늘 우리나라(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는 위대한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 선생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끝없이 번영하는 <주체의 조국>, <사회주의 모범의 나라>로 온 세상에 빛나고 있다. 위대한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 선생님의 향도에 따라 나아가는 우리 인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자랑스러운 인민이다. 이 땅우에 우리 인민의 행복이 어떻게 마련되었는가를 알고 주체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나가자면 우리나라 력사학습을 잘하여야 한다. 조선의 력사와 문화를 잘 알아야만 조선혁명을 잘 할 수 있으며, 주체가 선 참된 조국의 애국자, 공산주의자가 될 수 있다. 혁명과 건설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자주적으로 주체의 실정에 맞게 풀어 나가며 혁명과 건설을 자기 인민의 지향과 요구에 맞게 해 나가자면 자기 나라의 것을 잘 알아야 한다.

(표: 남북한 역사인식의 차이 - 출처: 『韓國史學史』, 신형식 저, 삼영사)

 

남북한 역사서술의 차이

이처럼 남북한의 역사학이 지향하는 목적이 다르다보니 역사서술에 있어서도 큰 차이가 나타날 수밖에 없겠지요?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반란, 투쟁에 대한 설명과 근현대사에 대한 인식문제입니다. 남한은 지배자 중심의 관료적, 제도적, 정치적 사건의 서술에 큰 비중을 두고 서술하고 있으나, 북한은 인민들의 활동을 부각시키기 위해 관료 중심의 서술이 아닌 반역자가 역사의 주역인 것처럼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왕조 중심, 정치체제 중심의 역사인식을 하는 것과 달리 북한에서는 왕을 비롯한 지배층은 역사를 거스른 반동세력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특히나 근현대사에 들어서면 남북한 역사서술의 차이는 더욱 커지게 됩니다. 북한은 그들의 우상이자 정권의 정통성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김일성의 우상화를 위해 근현대사를 왜곡, 날조하고 있기에 그 차이가 현격하게 벌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민중에 대한 배신행위로 규정되었고, 김일성 일가의 항일투쟁이 민족운동의 주류가 되었습니다.

통일사학을 준비해야 할 때

국사(國史)는 올바른 국가관을 함양케 할 뿐만 아니라, 민족의 정체성을 밝히고 동질성을 확인함으로써 민족화합의 밑거름이 될 수 있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는 분단이라는 가슴 아픈 현실 속에 살고 있기에, 훗날 민족의 재통일을 위해서라도 그 중요성이 날로 부각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분단의 세월이 길어지며 남북한은 국사에 있어서 서로 다른 인식과 해석을 하고 있고, 그 차이는 나날이 커지고 있는 형국입니다. 이는 민족의 동질성 문제에 커다란 장애로 작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나 북한은 1968년 이후 소위 주체사상의 도입으로 역사학이 갖는 본연의 의무를 잊어버리고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에 대한 개인숭배로 점철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만약 우리 민족이 통일이 된다면 서로 다른 역사인식을 가진 남북한 주민들의 동질성 회복과 민족 화합에 크나큰 어려움이 있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통일을 준비하기 위한 사전 과제로 통일사학의 정립이 필요한 때입니다. 남북은 남북통일을 대비하여 우리말을 통일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2005년부터 겨레말큰사전편찬사업을 실시한 바 있습니다. 우리말의 통일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역사학의 통일일 것입니다. 통일 후 닥쳐올 역사학의 위기와 혼란에 대비하기 위해서, 북한 주민들의 바른 역사인식 함양을 위해서 남북한이 머리를 맞대고 통일사학의 정립을 준비해야 합니다.

(사진: 남북한 겨레말큰사전 공동편찬위원회 9차 회의 사진 - 출처: 연합뉴스)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의 한국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정립된 식민사학에 맞서 백암 박은식, 단재 신채호 등의 민족주의 사학자들은 반식민사학으로 투쟁을 벌였고, 이는 해방 직후 우리 민족의 역사학 정립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통일시대를 대비하여 통일사학을 준비하는데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이상으로 상생기자단 5기 김경준 기자였습니다.

 

 

<출처 및 참고문헌>

1. 『韓國史學史』, 신형식 저, 삼영사, 1999

2.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