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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통일로 가는 길

천지를 두고 벌어진 태초의 싸움! : 창세신화로 살펴본 남북의 동질성

<빅뱅의 상상도> 출처 : 빅뱅, 네이버캐스트

 인간은 누구나 한번은 이 우주의 시원(始原)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기 마련입니다. 과연 이 세상은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또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는 과연 어떻게 태어난 존재이며 코끼리와 호랑이, 물고기와 새들 그리고 저 높다란 산과 깊다란 바다는 누구의 작품일까요?

 현대인들은 이 물음에 대해 빅뱅이라는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해답을 제시할 수가 있습니다만 고대인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허나 그 덕분에 오히려 그들은 논리적이고 과학적이지는 않지만 현대인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내용의 해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창세신화(創世神話)입니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한국에도 창세신화가, 그것도 여러 편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두 편을 소개해드리고자 하는데요. 하나는 오늘날 한반도 북단에서 전승되던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한반도 남단에서 전승되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과연 그 두 이야기는 어떤 내용을 품고 있을까요?


창세가(創世歌) - 우주의 처음을 노래하다.

<창세가의 창조신, 미륵> 창조신 미륵이 금(金)벌레와 은(銀)벌레로 인간을 만들고 있다. 출처 : 한국 신화를 찾아서, EBS


 창세가는 함경남도 지역에서 전승되던 서사무가(敍事巫歌)로 1923년 당시 함경남도 함흥군의 무당, 김쌍돌이가 구연한 것을 손진태가 <조선신가유편(朝鮮神歌遺篇)>에 수록함으로써 알려진 신화입니다. 한국 각지에서 전승되는 창세신화 가운데 가장 원초적인 형태로 평가받는 이 신화는 다른 종교나 민족의 전승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독자적 줄거리를 품고 있는데요.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출처 : 한국 신화를 찾아서, EBS


 태초에 하늘과 땅은 서로 붙어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거대한 신, 미륵님께서 나타나시었다. 미륵님께선 서로 붙어있던 하늘과 땅을 서로 가르시더니 땅의 네 귀에 구리기둥을 세우셔서 그 둘을 영원히 떨어지게 하시고 그 뒤에 각각 둘씩 돋아난 해와 달을 하나씩 떼셔서 북두칠성을 비롯한 여러 별들을 만드셨다.

 이후 미륵님께선 소하산 샘물을 통하여 물의 근본을, 그리고 쥐를 통해 아시게 된 금덩산에서 차돌과 시우쇠를 서로 부딪치심으로써 불의 근원을 깨우치시고 금쟁반과 은쟁반을 두 손에 드신 채로 하늘에 비시어 금(金)벌레와 은(銀)벌레 다섯 마리씩을 받으신 뒤 그것들을 각각 남자들과 여자들이 되게 하시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석가님이라는 신이 나타나 세상의 주도권을 두고 미륵님께 도전하였다. 그는 잠을 자면서 먼저 무릎에서 꽃을 피우는 쪽이 천하를 갖자는 내용의 내기를 제안하였다. 허나 그는 정당하지 못한 신이었다. 미륵님께서 주무시는 틈을 타 그는 미륵님께서 피우신 꽃을 가져다 자기 무릎에 꽂고서는 자신이 이겼다고 주장하였다. 석가님의 그러한 성화에 미륵님께선 견디지 못하시어 석가에게 세상을 내주신 뒤 어디론가 사라지셨다. 그때부터 세상은 질병과 악(惡)으로 고통 받는 곳이 되었다.

(주 : 본 신화에서 등장하는 미륵과 석가라는 이름은 그 이름만 불교에서 따왔을 뿐, 실제 불교와 그 이상의 연관은 전무하며 그저 토착 샤머니즘이 불교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결과일 따름입니다.)


대별왕과 소별왕 – 천하의 패권을 향한 형제의 대결

<만화 ‘신과 함께’의 대별왕과 소별왕> 맨 왼쪽의 푸른 옷을 입고 있는 신이 대별왕, 그 옆의 붉은 옷을 입고 있는 신이 소별왕이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대별왕과 소별왕 이야기는 제주에서 전해지는 창세신화인 천지왕본풀이(天地王本풀이)의 일부입니다. 얼마 전, 인기리에 완결된 인터넷 만화 <신과 함께>에서 다뤄지기도 하여 아마 많은 이들에게 친숙한 작품이기도 할 텐데요. 과연 제주의 신화에서는 창세의 순간을 어떻게 묘사할까요? 

출처 : 한국 신화를 찾아서, EBS

 아득히 먼 옛날, 하늘과 땅은 서로 붙은 채 뒤섞여있었다. 허나 갑자년 갑자월 갑자일 갑자시에 하늘이 열리고 을축년 을축월 을축일 을축시에 땅이 열려 천지가 개벽됨으로써 세상이 열리게 되었다. 그리고 하늘에서 푸른 이슬이 떨어지고 땅에서 검은 이슬이 솟아나더니 그 둘이 서로 뒤섞이어 삼라만상과 함께 각각 두 개의 해와 달이 생겨났다.

 우주의 지배자, 천지왕은 자신의 두 아들인 형, 대별왕과 아우, 소별왕에게 세상을 다스리게 하였다. 하늘에서 강림한 형제는 당시 각각 둘이었던 해와 달을 화살로 쏘아 하나씩 떨어트려 그 파편들을 별들로 만든 뒤 대별왕은 이승의 왕으로, 소별왕은 저승의 왕으로 각각 등극하였다. 허나 소별왕은 내심 이승을 다스리고 싶었고 이에 형인 대별왕과 이승의 지배권을 두고 대결을 신청하였다.

 허나 소별왕은 여러모로 대별왕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하여 꽃을 먼저 피우는 쪽이 이기기로 한 마지막 대결에서 소별왕은 대별왕이 먼저 꽃을 피우자 그 꽃을 훔치는 비열한 방법으로 승리, 마침내 이승의 지배자로 등극하였다. 그에 따라 대별왕은 약속대로 저승의 지배자가 되었고 그때부터 인간세상은 혼란과 범죄로 가득하고 저승은 공정한 세상이 되었다.


너무나도 유사한 얼개의 두 신화, 통일에 대한 또 하나의 까닭

<창세가와 대별왕, 소별왕의 이야기> 함경남도에서 전승돼온 창세가와 제주도에서 전승돼온 대별왕과 소별왕의 이야기는 놀라울 정도로 서로 닮아있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어떻습니까? 그리스 신화나 기독교 성경의 창세기와는 또 다른 맛이 있지 않습니까? 헌데 이 두 이야기, 내용이 조금 서로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하늘과 땅의 갈라짐, 별들의 근원이 되는 제2의 해와 달, 꽃 피우기 대결, 정당치 못한 방법을 통하여 세상을 차지하게 되는 악신(惡神)과 그것에 승복하고 사라지는 선신(善神)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혼탁하게 되었다는 인간세상….

 이 두 이야기가 전승돼온 각각의 무대는 함흥과 제주. 이 두 곳은 서로 지리적으로 상당히 떨어져있는 곳입니다. 함흥은 한반도 북단인 함경남도에, 제주는 한반도 남단인 남해바다 한 가운데에 있는 섬입니다. 활발한 교류가 있고자 하여도 있을 수가 전혀 없었던 곳입니다. 그런데도 각각의 지역에서 수 세기 동안 전승돼온 이 두 신화의 얼개는 마치 어떠한 하나가 다른 어떠한 하나를 표절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서로 너무나도 닮아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바로 우리가 하나의 겨레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남북이 서로 다른 인종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과거 남한의 문화나 북한의 문화나 다를 것이 없어왔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함경도의 무당이 읊었던 신가(神歌)의 내용과 제주도의 무당이 읊었던 신가의 내용이 서로 같은 얼개를 가지고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남북은 같은 문화적 키워들를 공유해온 하나의 겨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이 되지 못한 채 분단의 현실에 있으니 이 얼마나 역설적인 상황입니까? 함흥의 창세가와 제주의 천지왕본풀이. 이 두 신화는 대한민국은 하나라는 너무나도 당연한 진리를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신화 속 미륵님과 석가님 그리고 대별왕과 소별왕에게 이 땅이 둘이 아닌 하나였던 원래대로의 통일 대한민국으로 하루 빨리 돌아가게 해달라고 우리네 할머니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모두 한번 정화수(井華水) 한 사발 떠놓고 빌어보는 것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