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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현장과 사람

방송인 이상벽이 이야기하는 '뿌리깊은 통일나무'


거침없는 솔직 담백 토크, 이상벽

통일 이루려면 ‘미친 사람’이  있어야 한다?

통일부 홍보 대사 이상벽이 제안하는 ‘통일 수목원


구수한 입담과 푸근하고 친근한 진행으로 명실상부 국민 MC로 일컬어지는 방송인 이상벽 씨. 방송 생활 40년을 거치면서 시청자들과 함께 웃고 울었습니다. 특히 13년간 진행한 KBS의 간판 프로그램 ‘아침마당’을 통해 우리에게 참 친근한 방송인으로 각인되어 있는데요. 지난 달, 한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방송 중인 이상벽씨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안정감 있는 진행에 “역시”라는 감탄사를 연발하게 되더군요. 게스트와 방청객, 스태프들을 아우르는 그의 모습에서 베테랑 방송인의 아우라가 느껴졌답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방송인 이상벽씨 뿐만 아니라 통일부 홍보 대사 이상벽씨를 만나실 수 있는데요. 통일부 홍보대사로 위촉된 사연과 그만의 통일 철학, 지금부터 함께 하시죠!  


안녕하세요. 이상벽 씨 반갑습니다. 지난 9월에 통일부 홍보 대사로 위촉이 되셨는데요. 이상벽 씨만의 강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통일에 대해서는 당사자인 우리 부모님만큼 절박하진 않더라도 그들이 항상 외롭게 살았고 늘 고향을 그리워하며 가슴 아파하는 면면을 보아온 나로서는 가족을 잃은 설움에 대해 깊은 이해가 있어요. 


황해도 옹진에서 내려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황해도 옹진군에서 4살 때 넘어왔으니 솔직히 그때 기억은 하나도 안 나요. 할머니 할아버지랑 여동생 한 명이 내려오지 못했는데... 헤어짐이 장기간이 될 것을 예상 하지 못하고... 그 이후로 만나지 못하고 있어요. 연락도 한 번 못하고. 고향에 대한 이야기도 부모님께 들어서 알고 있을 뿐이에요.


그 후 기억에 남아 있는 유년 시절은 어떠셨나요?

피난 대열에 섞여 들어왔는데, 이슬이 내리니까 피난민들이 다리 밑에 휴식을 취하고 아침이 되면 이동을 하고 아주 고통스러웠어요. 모기가 많고. 우리 어머니가 애가 너무 우니까 아이를 업고는 소리가 안 날 때까지 한참을 걸으셨대요. 갑자기 ‘번쩍’ 하는데 보니까 비행기가 다리를 폭격한 거예요. 그러니까 애기였던 나를 어머니가 살린 셈이죠. 어머니, 아버지는 이남에 내려와서 수소문 끝에 만났어요. 월급쟁이 아버지를 따라 전국을 전전했죠. 지연, 혈연, 학연이 아무것도 없는 외로운 생활이었어요. 명절 날이면 갈 데도 없고 올 사람도 없어 하루 종일 집에서 TV만 보는 그런 명절을 보냈습니다. 선친께서는 고향에 한번 못 가보시고 작고하셨습니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긴 이상벽 씨>


7남매 중에 장남이기 때문에 책임감이 막중했어요. 열심히 공부했고,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죠. 대학은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학자금을 10원도 내지 않고 다녔어요. 군에는 장교로 입대했었죠. 이후에 신문사에 입사해서 10년간 기자 생활을 했어요. 저는 학연·지연·혈연에 대한 아쉬움을 누구보다도 절박하게 느꼈습니다. 친척이라고는 8촌 이상 밖에 없었으니까요. 세상 공부도 하기 위해서기도 하지만 이러한 주변 인적 구성에 대한 아쉬움이 늘 있었죠. 언론계에 몸담은 것도 인적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서 이기도 합니다.


실향민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경험하신 적이 있나요?

ROTC 소대장을 해서 임관할 때 ‘이북 출신은 상세하게 기재할 것’ 이라고 되어 있는 거에요. 후보생 때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임관을 하고 난 후에도 계속 이걸 기입하라고 하니, 안 그래도 소외된 삶을 살았는데 얼마나 서글펐겠어요. 더군다나 젊은 그 혈기에 이런 걸 받아들이기 쉬워겠어요?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제가 장교로 임관하던 시절에는 그랬어요. 차라리 장교 포기하자하고 나왔죠. 그래서 군인과 상관없는 길로 가게 된 겁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이 취업을 할 때 불리하거나 차별을 받는 경우가 있을 텐데, 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다문화 가정에 대한 관심은 많이 정착이 됐다고 생각해요. 농촌에서는 다문화 가정이 그리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에 수긍을 하는데, 이탈주민에 대해서는 오히려 같은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아직 따뜻하지 않아요. 사선(死線)을 넘어 온 사람인데, 끌어안지 않아 섭섭한 기분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국민 모두가 따뜻하게 받아줄 용의가 있어야 하죠. 수행할 수 있는 적절한 일을 만들어주고, 살아나갈 수 있는 기본적인 근거를 마련해줄 필요가 있죠. 그래야 좀 더 많은 동포들이 남한의 품으로 돌아오지 않겠어요?


실향민의 시각에서 통일을 이뤄가는 그 간의 과정, 어떻게 보십니까?   

통일이라는 것이 현실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일이고, 우리나라만 갖고 있는 불행한 사안이긴 한데, 통일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대단히 부족한 것이 늘 안타까워요. 우리처럼 고향이 없는 실향민의 입장에서는 훨씬 더 절박하게 다가오죠. 그러나 남북통일은 실향민 만의 일은 아닌, 대한민국 전체의 일입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통일에 대한 인식과 의지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것 같아요. 통일에 대한 것도 개념적으로만 다가가니까 국민에게 설득이 잘 안되는 것인데, 이것을 좀 가시적으로 통일 사업을 운영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가시적인 통일 사업 방안이라면요?   

가령, 내가 옛날부터  생각 해 온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실제 국내는 물론 북한도 나무가 부족한 황폐한 상태예요. 북에 필요한 나무가 50억 그루라고 합니다. 그래서 당장 내년부터라도 나무 심어서 ‘통일 수목원’ 같은 것을 만들었으면 해요. 전 국민이 나무를 심되, 북녘 땅에 직접 나무를  갖다 심는 건 이념과 상관없는 초등학교 3학년에서 중학교 2학년 정도의 아이들에게 맡기는 거죠. 38선부터 함경도까지 올려 심는 겁니다. 예를 들어, 4월 5일 날에 북에 나무 1000그루를 심고 내려오자는 거죠. 아이들이 통일의 중요성도 알고 언젠가 내가 심은 나무를 내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우리가 통일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자는 모티브가 될 수 있지 않겠어요?

누가 통일의 중요성, 남북 관계에 대해 주입하지 않더라도 ‘내가 평안남도 ~시 뒷산에 심었는데 그게 살아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정서적으로 통일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언제라도 내가 심은 나무를 확인 할 수 있도록 명찰도 다 달아 놓고, 함께 나무 심었던 북한 친구들과 같이 사진도 찍고 하면서 말이죠. 이런 가시적인 이벤트, 직접 심게 하는, 현실적인 이벤트, 관념적이기보다는 가시적인 통일 사업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또 한가지는 은행 같은 곳에서 우수 고객들을 대상으로 전국 규모의 콘서트 등을 하죠.  통일도 마찬가지에요. 지금 대학생들, 군 입대 직전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해서 우리가 왜 군대에 가서 총 검수를 해야 하는지, 지금 남북한이 어떠한 상황으로 대치가 되어 있으므로 우리들이 어떠한 역할을 해야 되는 것인지 이런 것들을 전달할 수 있는 매개적인 홍보 프로그램, 공연도 좋고요. 이런 것들을 하자는 거죠. 일단 청소년들이 모여야 거기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겠습니까? 당장 북한 주민이 먹고 살기 힘드니까 쌀, 식량 등을 보내되, 이렇게 직접적으로 체감이 될 수 있는 방법을 통해 세대를 아우르는 통일 사업을 하자는 거죠. 이런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통일을 자꾸 인식시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통일을 이루는 과정에서 ‘이것만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것이 있다면요?

실향민의 시각에서 보면 통일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어 보여요. 어떤 모임이든, 테마든 그 팀이 운영이 되려면 ‘미친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 분야에 대해서 올인 할 용의가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통일 분야에 대해서는 ‘미친 사람’이 없어요. 예를 들면 축구 하면 김흥국씨가 생각나지 않나요? 김흥국씨 같은 ‘미친 사람’이 한 명쯤 있어야 합니다. 김흥국씨는 축구 밖에 모르잖아요. 그것이 홍보성이 강하잖아요. 


지금까지 많은 통일 사업을 해 오셨고, 신의주 학생의거기념 청년의 날 대통령상도 수상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셨나요?

실향민 2세 들을 중심으로 한 청년회에 오랫동안 참여를 해서 가상적인 향토 운동, 통일이 되었다고 가정했을 때 어떻게 우리가 통일 사업, 재건 사업을 할 것인지를 논의했습니다. 그 안에서 예비 프로젝트를 운영하기도 했었고. 당시 방송 때문에 바쁘기도 했지만 그 와중에도 자문 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고, 북한이탈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라든가 연말연시 연로한 실향민 어른들 경로 잔치에서 재능 기부 차원에서 사회를 보기도 했었죠.


이상벽 씨에게 ‘통일’이란 무엇입니까?

목숨과도 같은 것이죠. 비유하자면 혈관이 지금 막혀 있는데, 이를 뚫어야 체증으로부터 헤어 나올 수 있고, 남북 모두 활성화 될 수 있습니다. 즉 우리 민족이 풀어야 할 동맥 경화증의 해결이라고 할까요.


통일부 홍보 대사로서의 활동 계획이 궁금합니다. 

“정부에서 어느 정도 지원할 테니 당신이 해봐 마스터 플랜을 짜서 갖고 오십시오.” 하는 식으로 통일부 홍보 대사로서 실제적인 역할 임무가 주어지면 좋겠어요. 그걸 저에게 맡겨주시면 열심히 하겠어요. 앞서 제가 제안한 ‘통일 수목원’ 만들기에 대해 구체적으로 추진할 자신이 있어요.



“우등상은 못 타도 개근상을 타는 것은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상벽씨, 실향민으로서 겪은 차별을 꿋꿋이 이겨낼 수 있었던 힘도 바로  이 ‘성실함’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을까요. 앞으로 통일부 홍보대사 이상벽씨의 활동이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다가오는 새해에 그가 제안한 ‘통일 수목원’ 만들기를 추진해 보는 건 어떨까요? 


지금까지 통일부 상생기자단 5기 강인경, 김유경이었습니다.



강인경김유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