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어느 나라를 둘러 보아도, 우리나라 남성들 만큼 군대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국가는 드물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한민국은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만큼, 한국 남성이라면 군대에 대해 정말 다양한 지식을 가지게 되기 마련이니까요.
▲ 군복을 입은 병무청의 캐릭터
하지만 북한의 군대와 군사정책이라면 어떨까요? 참 친근했던(?) 한국 군대와 달리 꽤나 낯선 분을 위해 오늘은 북한의 군사정책과 관련된 기사를 준비해 보았습니다.
북한의 군사 정책 형성 배경
북한의 군사 정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북한이 왜 그러한 군사 정책을 형성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군사 정책 형성 배경은 크게 6.25 이전의 배경, 6.25이후의 배경 두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 6.25 이전의 군사 정책 형성 배경 >
러시아(구 소련)의 정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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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영향을 받은 유격전
1931년, 김일성은 항일동북연합군(이하 동북항일연군)의 사령관이였습니다. 만주에서 동북항일연군으로서 활동을 하던 김일성은 일본인에 대한 소탕작전을 벌이게 됩니다. 그렇게 몇 년동안 활동을 하던 동북항일연군의 일부는 시베리아로, 또 다른 일부는 다른 지역으로 흩어지게 되고 김일성 역시 이 시점에 러시아로 넘어가게 됩니다. 러시아에서 김일성은 3년간 장교로 근무하게 되는데요, 북한의 군사정책은 이러한 김일성의 경험과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러시아에 있던 김일성은 레닌과 스탈린에게서 영향을 받게 됩니다. 특히 스탈린으로부터 김일성은 '정의의 전쟁(just war)'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 정의의 전쟁이란, 전쟁에는 두가지가 있으며, 한가지는 정의의 전쟁, 다른 하나는 부정의 전쟁이라는 개념입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프롤레타리아가 부르조아를 타도하기 위한 전쟁은 정의의 전쟁입니다.)
▲ 모택동
러시아와 함께 김일성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국가는 중국이였습니다. 1949년 중국에서는 마오쩌둥의 군대가 장제스의 군대를 타이완으로 몰아내고 통일을 이룹니다. 이 통일을 이룬 과정이 김일성에게는 큰 영향을 미치었습니다. 당시 마오쩌둥의 군대는 많은 군사를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오쩌둥의 군대가 통일을 이룬것을 보며, 김일성은 자신 또한 이러한 방식으로 전쟁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였고 그것이 바로 인민 전쟁 전략으로 번지게 된 것 이였습니다.
이 인민 전쟁 전략을 수행하면서 마오쩌둥이 수행하였던 정책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무엇을 하나 빌리더라도 차용증을 써주고, 마오쩌둥의 군대가 물건을 훔친다던가 하지 않으며 인심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과정 속에서 중국을 도는 대장정을 마치고 통일을 이룩하였던 것이였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보며 김일성은 군사력만으로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고 바로 이러한 것이 중국으로부터 받은 교육이었습니다.
이러한 점들은 김일성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고, 김일성이 군사 정책을 형성하는 배경으로서 작용하였습니다.
<6.25 이후의 군사 정책 형성 배경>
6.25 당시, 북한은 러시아의 풍부한 군사적 지원은 물론 중국에서 항일 독립 투쟁을 하였던 사람들 또한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정일은 이러한 북한의 강점을 믿고,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오판 속에서 6.25를 일으킨 것이였습니다. 당시 50일 안에 한반도를 석권하겠다는 것이 김일성의 목표였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뜻하던 바를 이루지 못했고, 그해 12월에, 별오리에서 중국 공산당 당 대회를 개최합니다.
1950년 12월, 자강도 별오리에서 열린 이 회의에서 이들은 엄청난 자아 비판을 하게 됩니다. 그 비판을 통해서 나온 결론이 몇가지 있었습니다. 첫째,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남한 주민들이 반기지 않았다는 것, 둘째, 보급이 부족했다는 것, 셋째, 무기가 현대화 되지 못했고, 넷째 대응력이 부족했다는 것, 그리고 야간 전투도 잘 하지 못했다는 것, 질서 정연하게 철수하지 못했다는 것 등. 그들은 별오리 회의를 통해 엄청난 교훈을 도출하게 되고, 이러한 교훈들은 6.25 이후의 군사 정책 형성에 직접적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들은, 북한의 4대 군사노선의 출발점이 되었는데요, 이 4대 군사 노선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전 군의 간부화
2. 전 인민의 무장화
3. 전 군의 현대화
4. 전 국토의 요새화
이러한 북한의 4대 군사노선을 통해 북한이 추구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북한이 추구하는 군사전략은 3가지 입니다.
북한의 3대 군사전략
1. 기습전
2. 배합전
3. 속전속결전
기습전에 대해서 설명할 때에는 간단한 예를 들 수 있습니다.
수업중에 졸고 있는 학생이 한명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화가난 교수님이 이 학생에게 분필을 던졌고, 학생은 머리에 분필을 맞았습니다. 이 학생은 바로 기습을 당한것 입니다. 기습은 다른것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시간과 장소에 공격을 하는것이 바로 기습입니다. 기습을 할 경우에는, 공격하는 사람은 공격당하는 사람 보다 당연히 우위에 설 수 밖에 없습니다. 공격하는 사람의 입장에서야 시간과 장소를 선택할 수 있지만, 공격 당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으니까요. 수업시간에 졸고 있던 학생이 분필을 맞고 깜짝 놀란것 처럼 말이죠.
북한 또한 이러한 기습전을 추구합니다. 휴전선의 경우 서울에서 40km 거리 입니다. 요즘 전차의 속력이 60~70km이므로 북한에서 고작해야 반시간을 달려서 닿을 수 있는 곳이 서울인 셈이지요. 이렇듯 서울과 북한이 무척이나 가깝기 때문에, 기습전이라는 북한의 군사전략은 더욱 위협적입니다.
또한 북한은 배합전을 추구합니다.
배합전은 말 그대로 "섞어버리는' 전쟁 방식입니다. 정규군과 비정규군을 섞으며, 군과 민을 섞으며 육해공군을 섞는 것이 바로 배합전입니다. 이러한 배합전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정규군과 비정규군을 섞는것 입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릴 북한의 군사전략은 속전속결전입니다.
우리의 6.25전쟁은 37개월 정도가 걸린 긴 전쟁이였습니다. 하지만 요즈음의 상황은 이전과는 다릅니다. 걸프전은 100일만에 전쟁이 끝났고, 이라크전의 경우 43일, 아프가니스탄 전 역시 완전한 함락까지 43일 만이 걸렸을 뿐이였습니다. 심지어 코소보 전쟁은 공군으로만 79일안에 끝이났습니다.
만일 전쟁을 할 경우, 전쟁은 오래끌수록 북한에게만 손해입니다. 비록 북한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3개월치 식량을 구해놓았다 하더라도, 그 또한 실제로 전쟁이 일어난다 하면 여의치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북한은 아주 짧은 시간에 전쟁을 시작하고 끝내는 것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북한군의 70%가 휴전선으로부터 100km 내에서 근무하고 있는데요, 이 또한 단기결전을 위한것 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보신 북한의 군사정책이 어떠셨나요?
최근들어, 많은 문화적 창작물의 영향으로 북한에 대해 친숙하게 느끼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는 듯 하지만, 그러한 가운데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북한과 우리는 아직도 적대관계를 청산하지 못했으며, 북한은 우리의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충분한 군사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 인것 같습니다. 앞으로, 경계대상으로서의 북한과 민족공동체 건설을 위한 협력 대상으로서의 북한을 동시에 인식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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