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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북한 전망대

'푸른 눈'의 평양시민! 모순된 이름의 일생

 극단적인 민족주의 체제, 북한!
 북한은 지난 2006년 남북 장성급 회담에서 남한 농촌사회에서의 이주민 결혼 여성에 대한 불쾌감을 드러낼 정도로 극도의 순혈 민족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그런데 몇 해 전 대니얼 고든 감독의 작품인 푸른 눈의 평양시민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된 적이 있었다. 도대체 극단적 민족주의 체제인 북한에서 어떻게 푸른 눈을 가진 시민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일까?


<다큐멘터리 영화 푸른 눈의 평양시민>
북한과 관련된 다큐멘터리 영화 전문 감독인 대니얼 고든의 작품이다.
출처 : 맥스무비


1. 그들은 왜 월북하였는가?

 푸른 눈의 평양시민은 래리 알렌 앱셔, 제임스 조셉 드레스녹, 제리 웨인 패리쉬, 찰스 로버트 젠킨스 총 4. 이들 모두 지난 196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평양시민이 아닌 주한미군이었던 이들로 이들 가운데 그 어떤 정치적 신념을 가지고 월북한 사람은 단 1명도 없었다.



<김일성이 준 선물을 들고 있는 드레스녹>
출처 : 마지막 남은 월북 미군 45년만에 모습 드러내, 동아일보 (2007년 1월 26일)


 이들이 월북한 까닭은 단순히 그들 모두가 ‘문제아이기 때문이었다. 앱셔는 훈련 도중 무기 분실로, 드레스녹은 매춘여성을 만나기 위한 휴가증 위조행위로 각각 군사법정에 설 예정이었고 이를 회피하기 위해 월북하였다.

 패리쉬는 높은 보상금을 준다는 북한의 선동에 넘어가서, 그리고 4명 가운데 유일하게 부사관이었던 젠킨스는 베트남 전쟁으로의 징집에 대한 두려움으로 월북하였다.


2. 그들이 겪은 월북 이후의 삶

 월북 이후 그들은 강제로 하루에 10시간동안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암기해야만 했다. 4명 중 한명인 젠킨스의 술회에 따르면 정말 지옥에 온 것 같았을 정도로 북한 당국은 그들에게 사상교육을 끔찍할 정도로 강요하였다고 한다.

 이후 그들은 북한의 선전물로 철저히 이용되었다. 그들에게는 대외적으로 널리 쓰일 수 있는 가치가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속칭 삐라의 모델이 되기도 하였고 당시 영화광이었던 김정일에 의해 만들어진 많은 선전 영화에서 미군 악역을 맡으며 배우가 되기도 하였다.



<선전영화에서 미군 역할을 맡은 드레스녹>
출처 : 네이버 영화


 또한 북한은 그들에게 여자도 주었다. 허나 북한은 혼혈에 대한 극단적인 반대를 취하는 체제. 따라서 북한은 외국인 여성들을 그들과 결혼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앱셔는 태국인, 드레스녹은 루마니아인, 패리쉬는 레바논인, 젠킨스는 소가 히토미(曾我 ひとみ)’라는 납치된 일본인과 결혼하였다. 현재 드레스녹은 전처와 사별하여 토고 대사관 직원과 북한여성 사이의 혼혈여성과 재혼한 상태이다.


3. 그들의 오늘날

 현재 그 4명 가운데 생존해있는 사람은 드레스녹과 젠킨스 단 2허나 평양에 남아있는 사람은 조선인들이 굶어죽어 갈 때에도 자신은 배급을 먼저 받을 수 있었다.”는 이기적인 말이나 내뱉으며 자신의 삶에 대해 만족하고 있는 드레스녹뿐이다.



<젠킨스(左)와 드레스녹(右)>
유일한 생존자인 둘 가운데 드레스녹만이 평양에 남아있다. 젠킨스는 현재 일본에서 거주하고 있다.
출처 : ‘푸른 눈의 평양시민’ 44년만에 소개, 한겨레신문 (2007년 1월 26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 純一郞) 전 일본 총리의 방북 이후 북한 당국에 의해 납치된 일본인의 문제가 부각되자 젠킨스의 아내 소가 히토미가 지난 2002년 귀환 허가를 받아 도쿄로 가게 되자 2년 뒤 젠킨스는 아내를 만나러 간다는 사유로 방일(訪日)하던 중 탈북에 성공하였고 현재까지 일본에서 거주하고 있다.

 탈북 이후 그는 고백(告白)’이라는 자서전을 출간하여 북한에서의 삶이 그야말로 끔찍했던 지옥이었음을 증언하였다.



<젠킨스의 자서전 고백(左)과 탈북 직후 주일미군으로 복직하여 선불로 월급을 받는 젠킨스(右)>
출처 : 네이버 책(左) & 선불로 월급받는 젠킨스(右), 세계일보 (2004년 9월 12일)


 그의 증언에 따르면 늘 그는 감시당했어야 했으며 어깨에 있는 미 육군(US ARMY)’이라는 문신을 없애기 위해 마취도 하지 않은 상태로 피부를 벗겨내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영어교사로 활동하면서 그의 영어 억양이 북한 사투리의 억양처럼 변했다는 까닭만으로 폭행을 당해야만 하였으며 북한당국이 자신의 두 딸을 간첩으로 양성하고자 하였다고 진술하였다.


4. 그들이 주는 통일에의 시사점

 신비로움 속에 가려진 푸른 눈의 평양시민들! 순혈주의를 강조하는 북한체제 내에서 그들의 존재는 매우 흥미롭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북한에서의 삶에 관하여 만족해하는 드레스녹과 그곳이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고 술회하는 젠킨스. 북한에 대하여 상반된 생각을 가진 이 2명으로부터 명백하게 알 수 있는 것 하나는 벽안의 외모를 가진 그들 역시 보통의 북한주민들처럼 거실에 김일성 일가의 사진을 걸어야만 하고 또 그들에 대한 일방적인 찬양만을 하며 오열해야만 하는 통제된 삶을 살아야만 하였다는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에는 많은 귀화외국인들이 살아가고 있다. 허나 그들은 푸른 눈의 평양시민들처럼 이용당하고 통제되는 삶이 아닌 그야말로 떳떳하고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다. 월북외국인을 철저히 선전용으로 활용하며 그들에게 통제된 삶을 강요하는 체제, 북한!

 오로지 통일만이 북한 내의 외국인 출신 주민들로 하여금 진정한 인간의 삶의 살게 해줄 열쇠가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