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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통일문화공간

김정은의 프레젠테이션, "제 점수는요..."

  북한의 프레젠테이션은 어떤 모습일까? 물론 북한에서 파워포인트나 키노트 같은 프로그램들을 가지고 프레젠테이션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반드시 이러한 프로그램을 사용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프레젠테이션을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지는 넓은 의미의 '말하기'로 본다면, 전 인민들에게 공개되는 북한의 방송이나 연설을 통해서 북한 프레젠테이션의 흐름을 유추해볼 수 있다.

  북한처럼 폐쇄된 나라에서 최고지도자의 연설은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갖기 때문에 김정은의 연설에는 북한의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번에 공개된 김정은의 연설을 분석함으로써 북한 프레젠테이션의 경향을 엿보고자 한다.


(출처 : 자유북한 - http://www.ifreenk.com, SBS K팝 스타)


김정은의 프레젠테이션 분석

  처음으로 공개된 김정은의 육성은 할아버지인 김일성과 매우 흡사했다. 목소리가 20대 남성의 활기찬 목소리가 아니라 저음으로 깔리는 중장년층의 목소리였다. 이는 김정은이 김일성의 목소리를 흉내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연습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의 중후한 목소리는 안정감을 주기 때문에 나이가 어리다는 그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김일성과 비슷한 목소리를 냄으로써 북한에서 김일성이 가지는 권위를 이용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그의 프레젠테이션은 매우 불안한 모습이었다. 처음부터 고개를 숙인 채 원고를 그대로 읽었고 불안한 듯 몸을 계속해서 비틀었다. 대학생 프레젠테이션 동아리인 피티클럽(이하 '피클')의 남성우 회장은 오히려 김정은의 중후한 목소리가 독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메라비언의 법칙에 따르면, 상대방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하는데 있어서 청각적 요소가 38%의 영향력을 미치는데 반해 시각적 요소는 무려 55%의 영향력을 차지한다. 그만큼 시각적 요소가 중요한데 김정은의 프레젠테이션은 그러한 시각적 요소에서 실패한 것이다. 남회장은 김정은의 자세나 제스처가 매우 불안했기 때문에 도리어 안정감 있는 목소리가 가지는 신뢰감을 완전히 떨어뜨렸다고 설명했다. 차라리 튀는 목소리였다면 불안한 자세에도 불구하고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을텐데, 목소리는 지루하다보니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을 연출했다.


고개를 숙이고 몸을 비틀면서 연설하는 김정은 (출처 : 조선중앙방송)


  남회장은 김정은의 프레젠테이션 실패를 극복할 몇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한 가지 방법은 시각자료를 사용하는 것이다. 고개를 숙이고 몸을 흔드는 것은 불안을 나타내는 전형적인 증상인데, 자신이 없을 때는 시각자료 같은 보조 자료를 사용하면 청중의 시선을 분산시킬 수 있다. 밋밋한 배경의 연단에 서는 것보다 화려한 배경이나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질만한 시각자료를 이용한다면 오히려 김정은의 젊은 이미지를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이미지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연설이 정 어렵다면 아버지인 김정일의 방식을 차용하는 것도 좋다고 한다. 김정일은 평생 단 한번 공개연설을 했는데, 그것도 심지어 "영웅적 조선인민군 장병들에게 영광 있으라."라는 아주 짧은 한 마디에 불과했다. 평소에 김정일은 대중 연설을 두려워했다고 하는데, 그 짧은 한 마디로 자신의 카리스마와 신비감을 더욱 강조했다.


김정일의 짧은 연설
(출처 : YTN)

  남회장은 무엇보다 김정은 프레젠테이션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연습부족을 꼽는다. 고개를 그렇게 심하게 숙이는 것은 기본적으로 원고 숙지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의 연설은 약 20분가량 진행되었는데 5분이나 10분 정도의 짧은 분량을 완벽하게 외우고 몸을 흔들지 않는 연습을 충분히 했다면 더 나았을 것이다.



남한의 프레젠테이션은 어디까지 왔나?

  지금 남한에서는 프레젠테이션 열풍이 한창이다. 이제 프레젠테이션은 단순히 말 잘하는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분야를 막론하고 필수적인 능력이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프레젠테이션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여기에 구체적인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프레젠테이션 능력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선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프레젠테이션 도구는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사의 '파워포인트'인데, 2012년 현재 MS사에서 선정한 파워포인트 MVP 총 32명 중에서 한국인이 무려 11명이나 된다. 특히 감동적인 프레젠테이션으로 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는 쾌거를 이뤘다. 당시의 프레젠테이션은 세계 프레젠테이션의 흐름을 주도한 훌륭한 프레젠테이션이었다.


  

 MVP란?

 MVP는 'Microsoft Most Valuable Professional'의 약자로 MS사가 선정하는 각 분야의 기술 전문가이다. 1년에 한 번씩 자격을 갱신해야하며, 전문가로서 MS사의 기술을 널리 공유하는 것이 선정 기준이다.


현대 프레젠테이션의 키워드는?

  김봉정 MVP는 "진정성이 현대 프레젠테이션의 키워드"라고 강조한다. 바로 진심을 담아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최근 프레젠테이션의 흐름이 이성보다는 감성적인 프레젠테이션으로 기우는 추세인데 진정성은 감성 프레젠테이션의 정점에 위치해있다고 볼 수 있다. 실례로, 요즘 가장 인기 있는 김난도 교수는 사실 기술적으로 말을 잘 하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선생님으로서 진심으로 학생들을 위로하기 때문에 그의 말이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것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의 스타 나승연 대변인 (출처 : 중앙일보 -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ctg=14&Total_ID=5756638)


  진정성의 가치는 평창 프레젠테이션에서도 나타난다. 프레젠터였던 나승연 대변인은 올림픽 유치에 두 번이나 실패한 평창의 이야기를 통해 준비된 도시라는 진심어린 메시지를 전달했다. 게다가 이날 깜짝 게스트로 올림픽 스키 동메달리스트인 토비 도슨이 등장했다. 토비 도슨은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입양된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평창의 잠재력과 평창이 자신과 같은 스포츠 꿈나무들에게 주는 희망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결국 토비 도슨의 진정성 있는 이야기가 평창 프레젠테이션 성공의 핵심이었다.


깜짝 게스트로 나온 토비 도슨 (출처 : 아시아투데이 - http://www.asiatoday.co.kr/news/view.asp?seq=500268)


남북의 프레젠테이션이 상호 보완할 점

  김정은의 연설은 북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그것이 북한 프레젠테이션의 전형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조선중앙방송의 리춘히 아나운서에 주목해야 한다. 리춘히 아나운서의 방송을 보면 사회주의 국가 특유의 선동적이고 격정적인 화법이 강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강한 어조는 사람들의 집중을 유도하는데 있어서 매우 효과적이다. 그러나 김정은의 프레젠테이션에서와 마찬가지로 강하기만 한 어조가 오히려 집중을 방해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하나의 메시지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장황한 연설을 긴 시간 격정적인 화법으로 말하다보니 오히려 지루해진다. 또 목적은 청중들을 감동시키기 위한 것인데 실제 내용은 온갖 이성적인 정치적 구호이다 보니 목적과 그 수단이 어긋나 사람들을 감동시키지 못한다.


김정일 사망을 알리는 리춘히 아나운서 (출처 : 서울신문 -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0123800033)


  북한의 프레젠테이션에 남한의 시각자료 기술이 보완된다면 말이 훨씬 부드럽게 들릴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말의 강약이 조절되어 청중을 덜 지루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해결하기 어려운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사상통제이다. 얼마 전 MBC뉴스의 최일구 앵커가 자신의 솔직한 말투로 뉴스를 진행해 큰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대중들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북한의 프레젠테이션은 누군가 써준 원고를 그대로 읽는 수준에 불과해서 프레젠테이션에 자신의 진정성을 담을 수가 없다. 북한의 프레젠터가 자신의 생각과 진심을 담아 프레젠테이션을 할 수 있다면 특유의 선동적인 어조와 함께 시너지효과를 낼 것이다.


파워포인트, 키노트, 프레지 등 다양한 프레젠테이션 프로그램이 있다.


  남한에서는 감성 프레젠테이션이 대세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프레젠테이션에 있어서 감성의 과잉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너도나도 감동적인 이야기만 하려다보니 역효과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실제로 프레젠테이션의 결과를 실행에 옮기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현실적인 부분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지고 있다. 이 같은 부분은 북한의 프레젠테이션에서 배울 점이 있다.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흐르지 않도록 현실적인 부분을 말할 때는 북한식의 강한 어조를 사용한다면 훨씬 효과적으로 강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선동적인 요소가 결합된다면 진정한 의미의 감성 프레젠테이션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탈북학생을 대상으로 한 프레젠테이션 강의 경험이 많은 김봉정 MVP는 "학생들이 컴퓨터에 대한 기초가 워낙 부족해 기초적인 프레젠테이션 툴의 기능조차 아주 신기해한다."고 말했다. 그만큼 프레젠테이션에 대한 북한의 이해가 많이 부족함을 알 수 있다. 이질적인 문화만큼이나 남북의 프레젠테이션도 많이 다르지만 이 다름이 하나로 통일된다면 프레젠테이션 트렌드의 새로운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도움 말씀 주신분들]


  • 김봉정 

  • - 네이버 파워포인트전문가클럽 카페 부매니저(cafe.naver.com/powerpoint)
  • - 현 Microsoft PowerPoint MVP
  • - 현 프레젠테이션 디자인 전문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