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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통일문화공간

탈북가수 명성희, 무대에 서던 날

 여러분 혹시 KBS 시추에이션 휴먼다큐 '탈북가수 명성희, 팝페라 무대에 서던 그날' 이라는 프로그램을 보셨나요? 이 프로그램은 2012년 5월 19일에 방송되었는데요. '가수'라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남한으로 탈북한 명성희씨의 이야기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명성희씨는 북한의 평양에서 부유하게 자랐다고 합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1990년 남북통일 축구팀을 이끌었던 북한 축구대표팀 故명동찬 감독님이십니다. 그녀는 평양 넓은 집에서 살던 시절이 그리워서 남한의 좁은 집에서 몇날 몇일을 울며 속상해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복하게 살던 그녀가 탈북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북한에서는 자기가 하고싶은 음악과 가수의 꿈을 이룰 수 없는 삶은 무의미한 삶이라고 생각하여 탈북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어머니 또한 딸에게 일생의 한이 되지 않게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위하여 탈북을 하게 되었다고 하십니다.

 명성희씨는 북한에 있을 때에도 6살부터 조선인민군 협주단에서 노래를 불러왔다고 합니다. 항상 음악과 함께했던 그녀는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서 남한에 온것이죠. 그러나 남한의 생활이 상상한대로 이루어지지만은 않았습니다. 한국에 와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트로트 가수로 방향을 잡고 1집 앨범도 냈지만 홍보도 잘 이루어 지지 않고 경제적인 측면의 어려움도 있어서 팝페라 가수로 전향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는 꿈에대한 믿음과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항상 음악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파페라 라는 분야에 대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무렵 드디어 그녀에게 큰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게 됩니다! 바로 일본의 3대 축제로 꼽히는 '히로시마 꽃축제'인데요. 명성희씨는 이 무대에 한국대표로 올라가게 됩니다. 그녀가 선택한 곡은 아리랑! 큰 무대이니만큼 의상도 하나하나 신경써야 하기에 그녀는 단아한 한복을 선택합니다. 외모만큼이나 아름다운 한복이더라구요! 노래연습을 무리하게 하는바람에 성대에 문제가 오기도하고 트로트 부르던 창법이 남아있어서 연습에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녀는 무대 위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 당당하게 아리랑을 아름다운 목소리로 부르고 내려옵니다. 많은 일본 사람들이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에 감동받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남한으로 탈북한 자체 만으로도 하루하루 삶이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멋있었습니다. 팝페라 가수 임형주씨도 명성희씨의 실력을 보고 조금만 더 갈고 닦는다면 세계 무대에 설 수 있는 북한 제 1호 팝페라 가수가 탄생할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녀의 노래 실력은 손색이 없었습니다. 제가 생각 하기에는 그녀가 트로트에서 팝페라로 방향을 바꾼 것이 오히려 더 잘 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트로트는 한국의 색깔이 강하다면 팝페라는 세계를 무대로 더 널리 알릴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남한으로 탈북한 북한이탈주민들이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일자리 창출 뿐만 아니라 그들의 마음속에 간직 하고 있던 꿈을 이루기 위한 지원도 꼭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주체적인 삶, 의미 있는 삶, 행복한 삶은 그 누구에게도 중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의미한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용기있는 선택을 한 명성희씨!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녀를 묵묵히 뒷바라지 해주시며 버팀목이 되어주신 분은 '어머니'이십니다. 세계 어느나라를 보더라도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은 대단한 것 같습니다! 자신의 꿈 하나만을 위하여 직진한 그녀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또한 앞으로 펼쳐질 눈부시게 아름다울 그녀의 미래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