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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북한 전망대

일당독재 북한에도 야당이?

▲ 지난 28일, 연설 중인 민주통합당의 한명숙 대표와 새누리당(구 한나라당)의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출처 : 코리아중앙데일리)


최근 정치권의 변화가 핫 이슈다. 정치인들은 4 ·11 19대 총선을 앞두고 민심을 끌어모으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젊은 인재를 영입해 정치 전면에 내세우는가하면, 정당을 통합하고 당명을 개정해 변화를 꾀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공화국으로서, 정치적 기본질서 중 하나인 복수정당제를 허용하고 있다. 일당제, 양당제, 다당제 등 다양한 정당 제도가 있지만, 이 중 2개 이상의 정당을 허용하는 형태가 바람직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정당 수는 총 21개이다.(2012. 3. 7 기준) 교섭단체별 의석 수를 기준으로 새누리당이 58.98%로 가장 많으며, 이어서 민주통합당(30.17%), 자유선진당(5.08%), 통합진보당(2.37%) 창조한국당(0.68%), 무소속(2.71%) 순이다.

북한에는 조선로동당, 조선사회민주당, 조선천도교 청우당 등이 있다. 여러 정당이 있지만,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 사실상 모든 국가 결정은 조선로동당에 의해 이뤄지는 일당독재체제다.

▲ 망치, 낫, 붓이 조선로동당의 상징이다. 망치는 노동자를, 낫은 농민을, 붓은 인텔리 지식 계급을 말한다.


북한의 모든 것은 우리가 결정한다, 조선로동당

북한의 대표정당이자, 유일 집권 정당이다. 북한의 현행 헌법인 '사회주의 헌법' 11조는 "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조선로동당의 령도 밑에 모든 활동을 진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945년 10월 10일 창당됐으며, 주체사상과 혁명적 수령관을 이론적 기초로 하고 있다.

조선로동당의 시작은 1945년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이다. 학계는 1926년 김일성이 세웠다는 타도제국주의동맹에서 기원을 찾고 있으나,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이 실질적 기원이라 할 수 있다. 해방 직후에는 서울에 있던 박헌영의 조선공산당이 중심이 되었으나, 김일성은 소련을 등에 업고 1945년 10월 10일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을 설치했다. 이후 크고 작은 숙청과 흡수를 통해, 1949년 6월 30일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하여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

현재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최영림 내각총리, 리영호 당 중앙군사위부위원장이 당 대표이다. 이 셋은 모두 조선로동당 상무위원으로 선출됐다. 
 


있으나 마나한 조선사회민주당
조선사회민주당은 다당제의 구색을 맞추기 위한 정당으로 구색정당, 혹은 위성정당의 역할을 하고 있다. 체제를 지지하고 그 내에서 이익을 추구하나, 정권교체는 불가하며 스스로 바라지도 않는다.

1945년 조만식이 창당한 조선민주당이 그 기원이다. 이후 조만식은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펼치다 숙청당했으며, 조선민주당은 조선로동당에 예속됐다. 일부는 이에 반발해 남한으로 내려와 1946년 1월 본 거지를 서울로 이전했다. 1960년대에 이르러 도당조직마저 해체되자, 상부조직만 남게 되어 이름 뿐인 정당이 됐다.


유일하게 종교적 색채를 띤 조선천도교청우당
대한민국에는 기독교 색채를 띤 정당이 더러 있다. 북한에는 종교 색채를 띤 정당이 유일하게 하나 있다. 바로 조선천도교청우당이다.

청우당은 1919년 김기전을 당수로 해 최초로 창당됐다. 해방 이후에는 천도교 세력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소련은 당시 김달현 천도교 고원군종무원장을 회유해 1946년 2월 8일 '북조선 천도교 청우당'을 창당케 했다.

그러나 한국 전쟁 때 노동당원이었던 청우당의 고위당직자들과 달리, 일반 신도들은 반공대열에 합류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김달현은 숙청됐고, 수많은 천도교 신자들이 탄압을 받았다. 

이후 조선사회민주당과 마찬가지로 몰락하기 시작했으며, 현재는 북한의 대외 간판 역할만 담당하고 있다. 북한은 1980년대 이후 월북한 최덕신을 포섭해 청우당 당수로 임명해 대남선전에 이용하기도 했다.

▲ 1972년 8월 남북적십자회담


실제로 북한에서 야당의 역할과 비중은 미미하다. 그러나 그들의 존재는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라는 타이틀에 맞게 대외적으로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1970년대부터 남북대화가 시작되자, 북한은 '일당독재'의 이미지를 지우기 위해 종교적 색채가 강한 청우당을 전면에 내세웠다. 강장수 청우당 부위원장을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 자문위원으로 내세우는가하면, 1993년 3월 25일에는 핵 확산 금지조약 탈퇴를 지지하는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또한 2000년에는 제1차 남북이산가족 북측 방문단 단장에 류미영 청우당 위원장을 선임한 바 있다. 

그러나 정작 청우당 고위 관계자들은 천도교와는 무관하다. 1972년 강장수 청우당 부위원장은 천도교의 교리도 모르는 노동당원이었으며, 2002년 청우당은 남한 야당의 '대북기본노선'을 규탄하기도 했다. 지금은 조선사회민주당과 더불어 조선로동당의 정책발표에 지지성명 내는 정도만 취하고 있으며, 야당 아닌 우당(友黨)으로서의 역할을 수행 중이다.



출처
- 위키백과
- 대한민국국회
- 한국학중앙연구원
- 하종필, 『북한의 종교문화』, 선인,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