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에 정착하여 살고 있는 북한이탈주민들. 종교의 자유가 없는 북한에서 남한으로 넘어오면서 그들에게도 신념이 생기고 종교가 생겼을 텐데요. 그렇다면 북한이탈주민의 신앙생활과 정착에 대한 이야기를 안 들어 볼 수가 없겠죠.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자 통일부 상생기자단과 해외기자단은 서울시 양천구에 위치한 교회에 다녀왔습니다.
다음은 예배 후에, 담임전도사님과 한 권사님, 북한이탈주민 한 분을 모시고 인터뷰한 것을 정리한 글입니다.
대화의 키워드는 종교에서 정착에 관한 문제들로 이어졌어요.
어떻게 하나님을 믿게 됐나요?
북에서는 하나님이고 뭐고 아무것도 몰랐지만 탈출하기 전, 나도 모르게 기도를 하게 됐어요. 기도를 하는 방법을 몰랐으므로 다만 ‘하나님, 남한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라고’ 무작정 눈감고 빌 뿐이었죠. 북-중 국경을 넘어 중국에 도착한 다음에도 중국어도 전혀 구사할 줄 몰랐지만 필요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귀인을 보내주셔서 지금 제가 여기 이렇게 남한 땅에 올 수 있었던 겁니다.
종교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나요?
교회를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는 데 처음에는 강한 거부감이 들었어요. 바로 단체 활동과 암기, 이 두 가지 때문이었죠. 북한에서는 집단으로 움직여야 되는 일이 많은데다가, 김일성과 김정일 정권에 대한 찬양 글을 외우는 것이 날마다의 생활이었답니다. 교회에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예배드리고 성경책을 읽고 말씀을 암송하는 문화가 북한에서의 일상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에 힘들었던 거에요. 처음엔 그렇게 낯설었지만 계속 기도하다 보니 믿어지고 은혜도 받게 되는군요.
북한에 로마시대 카타콤과 같은 ‘지하교회’가 있나요?
북에서 본 적이 없어요. 제가 교회나 신앙에 대해 북에서 알지 못했던 이유에 대해 간단히 설명 드릴게요. 북한에서는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서로 경계심을 늦추지 않아요. 보통 3명이 한 조로 활동하면 그 중 한 명은 정부에서 심어 놓은 스파이이기 때문에, 신앙얘기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않는거죠. 만약 신양 이야기 등을 나눴다면, 그 사람은 바로 그 날 저녁 어디론가 끌려가게 됩니다.
북에서는 가족조차 함부로 믿지 못해요.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북한에서 한 딸아이가 자신의 아버지가 성경책을 한 장 한 장 뜯은 채로 감춰 보고 있는 걸 목격했데요. 그 아이는 밤새도록 고민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를 신고 할 지, 말지를 가지고. 북한에서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세뇌교육을 받으며 자라기 때문이에요. 심지어 태어나면 먼저 배우는 말이 엄마 아빠 보다 ‘김정일 장군’ 이거든요.
북한에 지하교회가 있을 수 있다는 말 자체의 진위가 의심스럽네요. 아마도 없을 것 같습니다.
정착 이후 .. - 참된 지원은 물질이 아닌 정신적인 치료
보통 한국 사람은 탈북자들의 정착에 대해 이렇게들 생각합니다. “정부에서 살 집 주지, 교통비니 생활비니 하며 또 따로 주지, 대학 다닌다고 하면 등록금까지 대주는 데 왜 정착을 제대로 못하지? 그만큼 해줬으면 앞으로 직진해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그러나!! 이것은 지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태어나고 살아온 남한사람들의 입장입니다. 북한사람들은 북한에서 뿐 아니라 남한에 넘어오기까지 엄청난 극한 상황 속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내면에는 쌓이고 쌓인 트라우마(트라우마란 심한 신체적·정신적 충격을 겪은 뒤 나타나는 정신적 질병으로 천재지변, 대형 사고, 범죄 피해 등을 겪은 뒤 발생)를 먼저 치료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자가 방문했던 교회의 한 권사님은 이런 제안을 하셨어요. 탈북자들이 국정원에서 조사를 받은 뒤 하나원에 가기 전에 심리상담을 필수과정으로 받도록 하는 것을 정책으로 만든다면 참 좋겠다는 제안이었죠. 그 사람들에겐 ‘남한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설립된’ 하나원의 좋은 취지 따위는 상관없이 또 하나의 ‘수용소’에 들어가는 것으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다친 아이에겐 다른 무엇 보다 상처부터 먼저 치료해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이 권사님은 또한 탈북자들에게 어떤 역할이든 주어 자존감을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탈북자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소통 하기 위해서는 몸으로 직접 부딪히며 자주 만나 그들과 눈높이를 먼저 맞출 것을 당부하였다.
역사를 알면 자존감을 세울 수 있다. – 자신이 탈북자임을 부끄러워 할 필요 없어져
우리나라 이민의 역사를 보자구요. 혹시 작가 조정래 선생님의 대하소설 '아리랑'을 읽어보셨나요? 거기에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와이로 끌려가 강제노동부터 정착해가는 과정이 아주 실감나게 그려지지요. 그런데 그 '코쟁이 말'도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동물 이하로 취급하는 사람들과 친해지는 게 우선 목적이었을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어떻게든 무슨 일이든 해서 그 나라에서 굶어 죽지 않고 살아 남는 것이 제 1의 목표였습니다. 이민 1세대는 그 지역의 사람들과 동화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생존입니다. 그 땅에 뿌리박고 사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인 것이죠. 그렇게 1세대의 희생 위에 2세대 부터는 자연스럽게 동화됩니다. 우리 남한사람들이, 북한이탈주민을 이민 1세대로 바라보는 것이 어쩌면 그들과 조화롭게 살 수 있는 첫번째 열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끝으로, 저희 기자단은 예배 후에 작은 봉사활동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북한이탈주민 분과 교회 관계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해외기자단 Grace Kim, Daisy A. Chang 기자
상생기자단 이석호 기자
상생기자단 정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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