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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북한 전망대

역사 다시 보기 - 1996년 강릉 무장 공비 침투 사건


과거부터 현재까지 북한의 많은 도발이 있었습니다. 최근 연평도 사건까지 북한의 도발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 것이 역사이지만 우리가 받은 피해를 그렇게 쉽게 잊어서는 안되겠죠?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대비해야 북한과의 관계를 지속해 나가는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는 1996년에 있었던 강릉무장공비침투사건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996년 9월 17일 좌초된 북한의 잠수함 - 국방부 발행 서적 - 누가 이들을 나약한 신세대라 부르겠는가? 中



1.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

당시에는 문민정부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김영삼 정부 시절이었습니다. 김영삼 정부 당시에는 북한 핵 문제와 관련된 국제 사회의 우려와 근심이 많이 표출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994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과 합의를 본 이후 북한 핵 문제는 해소 되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1994년 이 합의 이후 김영삼 대통령과의 남북 회담을 앞둔 김일성은 갑자기 그 해 7월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에 북한은 정권승계 과정때문에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웠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1995년 엄청난 가뭄을 겪으면서 식량 위기를 경험하게 됩니다. 북한은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자연재해를 국제사회에 보고하며 국제사회의 인도주의적 지원을 호소하였습니다. 북한의 공식적인 발표에 따르면 1995부터 1998년까지 22만 명이 아사했다고 하니, 비공식적으로는 이 보다 훨씬 높을 것이라고 국제 사회는 보고 있습니다.

북한의 이러한 사정을 알고도 우리나라는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영삼 정부도 북한에 대승적인 차원에서 식량지원을 하기에 이릅니다. 1995년 우리 정부는 쌀 15만 톤 (2억 1,200만 불)을, 민간차원에서는 담요 8천 매를 지원하였습니다. 북한 정부도 이를 받아들여서, 김일성 주석 사망이후 경색될 수 있었던 남과 북의 관계는 다시 좋아지는 듯 보였습니다.


2. 사건의 발생

시대적인 분위기로 봤을 때 북한의 도발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북한은 늘상 이런 식으로 좋은 분위기에서 도발을 하는 행위를 일삼아 왔습니다. 이 날의 사건도 9월 18일 새벽 1시 30분경 강원도 강릉시 안인진리 대포동 해변에서 약 30m 떨어진 지점에서 소형잠수함이 좌초되어 있는 것을 택시기사 이진규씨가 발견하고 강동경찰서에 신고하면서 본격적인 소탕작전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후에 생포된 무장공비의 증언에 따르면 이 잠수함은 9월16일 함경남도 원산항을 출발 하였으며, 17일 오후 4시경 기관고장으로 표류되어 좌초된 것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부분에서 우리 군의 허점이 많이 드러나게 되면서 많은 비난 여론에 뭇매를 맞게 되었습니다. 잠수함이 실제로 좌초된 시기는 9월 17일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8일이 되어서야 발견되었습니다. 그것도 군에 의해서 발견된 것이 아닌 택시기사에 의해서 발견되었습니다. 또한 잠수함이 발견된 곳은 간첩침투 예상 경로였으며 그 부근에 군 초소가 있었기에 더욱 논란이 되었습니다. 좌초당시에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면 이후에 벌어질 큰 피해를 최소화 시킬 수 있었을 것 입니다.

9월21일 아침, 작전 수행중인 우리 군의 모습 -국방부 발행 서적 - 누가 이들을 나약한 신세대라 부르겠는가? 中



3. 본격적인 소탕 작전과 결과

좌초 이후에 무장공비 20여 명이 내륙지역으로 침투해 들어갔습니다. 우리 군의 보안망이 뚫린 것 뿐만 아니라 민간인들의 안전조차 위협받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군은 즉각적으로 진돗개 하나를 발령하고 본격적인 소탕작전에 나섰습니다. 9월 19일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소탕작전은 무려 11월 5일이 되어서야 종료됩니다.

이 과정에서 침투한 공작원 26명 중 비전투원 11명은 모두 자살했습니다. 그리고 이광수 상위는 9월 20일 생포되었으며 북으로 달아난 1명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사살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측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군인 9명, 경찰과 예비군이 각 1명등 11명이 숨졌습니다. 또한 민간인도 4명이 숨져 총15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또한 작전지역 6개 시군은 관광객감소, 예비군 동원에 따른 경제인력 손실, 농어업 손실 등의 경제적 손실로 인해 2천억 원대의 피해를 본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4. 마치며

북한은 김정일에서 김정은 체제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아직 어린 김정은 체제이기에 내부상황이 그리 안정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그렇기에 이런 상황에서 북이 또 어떤 도발을 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렇기에 이번 정부 들어서 많이 경색된 남-북 관계가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나 군은 과거의 사건들을 본보기 삼아서 더욱 경계를 철저히 하고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참고문헌 
위키리크스
누가 이들을 나약한 신세대라 부르겠는가?(국방부서적, 사진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