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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기자단/우리는대학생기자단

생각해보면 우리 주변에서 항상 함께했던 '통일'




생각해보면 학창시절을 함께했던 '통일'

 

 통일부 상생기자단을 지원할 당시 나와 통일이라는 단어는 그렇게 큰 연관성이 있지는 않았다. 관련된 전공을 공부하지도 않았고, 가족 중에 이산가족이 있지도 않았다. 더욱이 북에서 온 북한이탈주민을 만나본 경험도 한 번도 없었다(아마 내가 모르는 사이에 만났을 지도 모르지만). 아마 아직까지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20대 여대생이라면 나와 같은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싶다. 


 내가 알고 있는 통일과 관련한 기억을 모아본다면 어렸을적 가족끼리 나들이로 종종 갔던 파주의 임진각과 김포의 애기봉에서 먹던 피스타치오맛 아이스크림, 여름 피서로 떠났던 강원도 고성에서 잠깐 들렸던 통일전망대, 매 학년 도덕 교과서 가장 뒷장에 나오던 북한 이야기, 6월만 되면 한 편씩 숙제로 주어졌던 6ㆍ25 글쓰기 대회. 이 정도가 나와 통일과의 유일한 연결고리이다.

 

 

<생각해보면 초등학생때 통일과 관련한 글쓰기 대회에 참가해 수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경험의 절반 이상은 수도권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내 또래의 사람들이라면 다 경험해 봤을거란 생각이 든다. 지금은 역사의 한 획이 되었던 6ㆍ15 남북정상회담은 초등학교 5학년인 나에게는 귀찮은 신문 스크랩 숙제로 다가왔을 뿐이고, 북한이란 존재는 항상 받기만 하는 이기적인 대상으로 기억된다. 나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통일은 선진국으로 발돋움 하는 우리의 발목을 잡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적어도 상생기자단 활동을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다시 만날 줄은 몰랐던 '통일'

 

<통일부 상생기자단이 되어 처음으로 함께 한 워크샵>

 

 처음 통일부에서 기자단을 모집한다고 했을 때, 통일부 상생기자단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은 왠지 재미없고 정치이야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일거라 생각했다. 아무래도 정치, 외교적으로 민감한 대북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담백하다 못해 싱거운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전 기수로 활동한 선배의 이야기나, 가끔씩 방문했던 통일부 블로그의 포스팅을 접하게 되면서 그 생각은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물론 심도 있는 포스팅도 많았지만, 웹툰이나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읽다보니 나도 모르는 새 꽤 잡다한 통일지식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찰나, 학교선배의 권유로 지원서를 넣게 되었고 운좋게 1차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너도 나도 스펙스펙 이야기하던 시점에 스펙을 위해 한 것이 전혀 아니라면 그건 거짓말이다. 하지만 평소 궁금했던 DMZ지역이라던지 나에게는 베일에 싸여있는(?) 정부의 모습을 직접 접할 수 있을 것 같아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면접날 만났던 모든 사람들이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다 상생기자단으로 1년을 함께한 사람들이다. 처음 면접장에서 만난 윤재 기자와 에스더 기자, 바로 옆자리에 앉아서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눴던 유미 기자, 함께 면접을 봤던 동광 기자, 두희 기자님까지! 아마 상생기자단이 된 것은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1년간 함께 했던 '통일'


 임명장을 받고 처음으로 함께 떠났던 워크샵, 그저 신기하기만 했던 공동경비구역 견학을 시작으로 상생기자단 활동을 하면서 참 많은 곳을 방문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가깝게는 서울에서 이뤄졌던 다양한 통일행사와 워크샵, 휴전선 서쪽부터 동쪽까지 구석구석 직접 볼 수 있었던 DMZ 캠프, 매월 치열하게 고민하고 걱정했던 정기회의 등 지난 1년 동안 평범한 대학생이라면 할 수 없었던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었다.

 

 특히 지난 여름에 경원대학생, 탈북대학생, 해외기자단, 상생기자단, 4그룹이 함께 떠난 캠프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한 여름날, 굵은 땀방울 아래 서로 부딪치며 만든 소중한 추억들은 지금까지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우리의 통일문제를 다양한 관점에서 느낄 수 있었고 직접 북에서 오신 분들을 만날 수 있어 개인적으로도 통일에 대한 생각에 큰 변화가 있었던 시간이었다.

 

 

 

<두 눈과 두 발로 직접 통일현장을 느꼈던 DMZ 캠프>


  기자단 활동을 하면서 직접 기사아이템을 찾고, 연락해 인터뷰를 했던 일도 즐거운 추억으로 남는다. 첫 인터뷰를 무사히 할 수 있게 도와주셨던 공릉종합사회복지관의 김선화 부장님, 맛있는 빵과 함께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유쾌하게 나눠주셨던 고재영 빵집의 고재영님, 부족한 질문에도 친절하게 답해주셨던 양창석 통일부 정세분석국장님, 사심 듬뿍 담은 인터뷰에 진지하게 응해주셨던 슈퍼스타 허각씨까지 모든 분들이 다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누구보다 1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도록 지지해준 상생기자단 3기의 모든 훈남훈녀 기자님과 통일부 정책홍보과의 센스 종결자 직원분들이 아니셨다면 절대로 1년동안 활동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여러분들에게 말하고 싶은 '통일'


 1년 전의 나는 꽉 막히고 이기적인 스물 두 살이었지만(여전히 그럴지도 모른다), 1년간 통일부 상생기자단과 함께하면서 통일에 관한 지식은 물론이고, 어떤 것이 서로 함께 하는 진정한 상생인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고 배울 수 있었다. 남들이 보는 1년간의 나의 스펙은 통일부 상생기자단 3기라는 한 줄로 정리될 수 있겠지만, 내가 보는 나의 스펙은 어느 누구보다 더 향상되었다고 생각한다.

 

 '통일'문제는 우리 민족의 숙제이자 해답이다. 어려운 문제일수록 오히려 직접 부딪쳐보는게 더 빨리 답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통일이라는 소재에 대한 걱정, 1년이라는 조금은 긴 시간에 대한 두려움은 일단 지원서를 제출하고 고민해봐도 되지 않을까? 적어도 이 글을 보고 있는 사람이라면 '평양냉면'과 '함흥냉면' 중에 하나는 먹어봤을테니까 말이다. 더울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냉면 한 그릇이, 의외의 남북합작품인 뽀로로가 그러하듯이 통일이라는 이야기와 이를 담당하는 통일부와 당신과의 관계는 의외로 가까울 수 있다.

 

 다가올 따뜻한 봄 날, 새롭게 만나게 될 4기 기자단분들의 달콤한 설렘을 기다리며 나의 상생기자단도 마무리한다.

 




통일부 상생기자단 3기

명세희 기자

earthgirl3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