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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기자단/우리는대학생기자단

인연이라 불러도 된다면.. '이산가족'과 나의 이야기

 

이산[離散] - 헤어져 흩어짐.

남북이산가족 - 남과 북으로 헤어져 흩어진 가족.

  
  이산[離散]이라는 말 속에 내재된 恨은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이자, 동시에 이산가족 아래 개별화된 슬픔들을 우리민족 하나의 슬픔으로 묶어내는 단어이다. 남과 북으로 헤어지고, 흩어져서 지난 60년을 겨우겨우 살아 온, 한반도의 수많은 이산가족들의 슬픔은 지난 1년, 상생 기자단이라는 이름 아래 이뤄진 나의 취재 전반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것을 인연이라고 해도 맞는 건지, 지난 일 년, 나와 이산가족과의 인연은 계속되었다. 첫 번째, 한명호 할아버지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남북이산가족 상봉 행사 취재, 마지막 한신옥 할머니 인터뷰까지 이산가족들의 가슴 찢어지는 사연을 직접 두 귀로 듣고, 그들의 눈물나는 만남을 두 눈으로 보았다.

 

  지금도 내 주위를 스쳐 지나가고 있을 이 땅의 수많은 이산가족들의 사연 하나하나를 글로 옮겨 적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아픔을 고스란히 글로 옮기는 일 또한 나의 능력밖에 일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옮겨지고 있는 글들이 그들의 아픔을 옮기는 행위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난 일 년 간 내가 보고, 듣고, 느낀 몇 가지들을 같이 공유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공유가 우리들의 마음 속 아주 작은 일부분이라도 살짝 움직이는 힘이 되길 빌어본다.

   

1# 발가락이 닮았다.

 

  어린 시절, 김동인의 단편소설 「발가락이 닮았다」를 읽으면서, 닮았다는 말의 의미를 되새기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아직 부모가 되어보지 못한 나는 소설 속 ‘닮았다’의 참된 의미는 어림짐작할 뿐이다. 흔히 ‘닮았다’는 표현은 가족 간에 많이 쓰이는 표현이다. 유전에 의해 부모 자식 간에, 형제간에 비슷하게 빼닮은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함께한 부부는 서로 닮아가고, 많은 시간을 함께 지내는 친구 사이도 서로 닮아간다. 이렇듯 닮았다는 것은 유전에 의한 닮음에 오랜 시간을 함께하면서 서로 닮아간다는 것이 합쳐진 의미일 것이다.

 

   지난 해, 개최된 남북이산가족 상봉에서 수많은 슬픔 앞에 잠시나마 가슴 뭉클한 기쁨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발가락이 닮았다.’는 말처럼 그들이 닮았다는 것이다. 멀리서 들어오는 북측가족을 6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한눈에 찾는 남측가족들의 모습에서 ‘피의 끌림이란 이것이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서로 부둥켜 울고 웃는 그들의 얼굴은 세월의 흔적아래 너무 나도 닮아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한편으로 너무나 가슴 아픈 닮음이었다. 만약 이들이, 휴전선이라는 물리적 갈라짐이 없었더라면, 60년 전 생이별을 경험하지 않았더라면, 현재 더 많이 닮아 있을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사람은 서로를 보고,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환경에서 지속적으로 함께 살아간다면, 점점 닮아간다. 이것이 바로 ‘환경에 의한 닮음’일 것이다. 그러나 지난 60년간 ‘환경에 의한 닮아감’을 잃어버린 수많은 이산가족 앞에서 나의 북받쳐 오르는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이렇게 남북관계도 환경에 의한 닮아감이 단절된 상태이다. 본래 한반도는 하나이기에 유전에 의한 닮음은 그대로 존재한다. 하지만, 서로 떨어져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문화를 접하다보면 서로에 대한 이질감만 키울 뿐이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유전적인 동질감마저 잃어버리게 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생각이 든다. 그러기에 하루 빨리 비슷한 환경 속에서 서로의 닮아감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통일에 대한 준비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북한이 ‘남’이 아닌, 혹은 ‘다른’이 아닌 ‘우리’라는 인식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이산가족의 닮음 앞에서 나는 대한민국의 과거-현재-미래를 동시에 보았다. 그리고 그 미래가 우리의 얼굴만큼이나 많이 닮아 있는 남과 북의 화합으로 끝 마쳐질 것이라 믿는다. 60년의 세월을 무색하게 만드는 그들의 닮음 앞에서 통일의 당위성은 더욱 분명해 진다.  

   

2# 가슴 찢어지는 그들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

 

  지난 일 년 간, 이산가족들의 인터뷰를 하면서 매번 드는 생각이 있었다면, 그것은 ‘정말, 이건 너무 슬프다.’였다. 매번 이 사연이 제일 가슴 아프다고 생각했지만, 결론은 인터뷰에 응해주신 모든 분들의 사연은 24년을 살아온 내가 공감하고 받아드리기에는 너무나 벅찬 슬픔이었다.

 

  “눈 한번 깜빡였는데, (가족들은 모두 인파에 휩쓸려가고) 나와 등에 업은 갓난아이, 이렇게 둘이었지...”

  “죽은 뒤, 백골이라도 고향땅을 밟고 싶어...”

  “잃어버린 아들을 찾으려고, 고아원을 수없이 돌아다녔고, 하나 남은 아들마저 잃어버릴까 다 큰 아이를 등에 업고 다녔지...”

 

  지독한 그리움과, 사무치는 한을 어떻게 감당하며 지난 60년을 살아 오셨을까를 생각할 정도로 그들의 이야기는 슬펐고, 매번 인터뷰를 진행할 때마다 눈물을 흘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아니기에 느끼거나 생각할 수 없었던 슬픔이 밀려 들어와, ‘마음이 아프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러한 느낌은 나뿐만 아니라, 이 땅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고 있다는 것을 지난 이산가족들의 상봉을 보면서 알았다. TV앞에 멈춰 선 많은 사람들은 이산가족들의 상봉을 지켜보며 함께 슬퍼하고, 울었던 것이다.

  이것이 공감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들의 슬픔을 넘어선 우리들의 슬픔인 것이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이 있다. 남북 이산가족 문제, 나이가 남과 북의 관계 역시 이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만의 슬픔이 아니기에 우리 모두 그 짐을 나눠 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슬픔을 공감하고, 그들의 아픔을 공감하는 것에서부터 통일의 움직임은 시작되는 것이라 믿는다.

   

  개인적인 감상에 젖어 지난 일 년 간 만난 이산가족들의 이야기를 써내려 왔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상생기자단의 활동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시점에 작은 바람이 하나 있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특히, 많은 대학생들이 통일과 남북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더 많은 생각을 하고, 마음이 움직이는 많은 활동을 하길 바란다.

 

  지난 1년 뼈저리게 느낀 사실은 우리는 하나라는 아주 흔해 빠진 사실, 그렇지만 우리가 잊어버리고 있던 사실 한 가지와 통일의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무관심이라는 것이다. 통일로 나아가는데 있어 가장 기초가 되는 처음은 바로 반쪽짜리 한반도에 대한 인식과 이러한 사실에 대한 관심이다.

 

 상생 기자라는 이름으로 지낸 작년 한 해, 나의 작은 노력이, 소수의 사람들에게 통일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아주 작은 움직임이라도 되었길 바란다. 그리고 보다 더 훌륭하고 멋진 다음 상생 기자단이 통일을 위한 작은 움직임을 이뤄내길 빈다.

  

 

 

통일부 상생기자단 3기

강세미 기자[seminsu88@naver.com]

 

이기사는 2011/3/31, 정부부처 블로그 위젯 '정책공감'에 소개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통일 미래에 이바지할 수 있는 콘텐츠를 작성하는 통일 미래의 꿈이 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