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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 이야기/정책 돋보기

[테마시리즈:역대 정부의 통일정책] 다섯번째 이야기

 

[테마시리즈:역대 정부의 통일정책]

 

전두환 정부의 통일정책

 

< 전두환 전 대통령의 대통령 취임 선서하는 모습 >

 

 

  * 제5공화국이란, 1981년부터 1988년까지  제 11,12대 대통령을 역임했던 전두환 정권을 말합니다. 제5공화국은 박정희 정권과 마찬가지로 쿠데타로 성립된 군사 독재 정권이었습니다.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 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탄생한 이 정권은 물가 안정, 서울 올림픽 대회 유치 등의 업적을 남겼으나, 부정부패와 민주화 운동 탄압, 고문 등의 인권 유린 행위로 국민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마침내 1987년 6월에 일어난 6월 항쟁으로 6·29 선언이 발표되면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약속하고, 12월 16일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가 당선되어 1988년 2월 평화적 정권 교체가 이루어 졌습니다.

( *출처 : 두산 대백과 사전 )

 

   이런 제5공화국 시기는 이전의 정권과 더불어 권위주의 정권이라고 불립니다. 그러나 "통일"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이전의 정권들과는 다르게 많은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그 전의 "선건설 후통일" 또는 "선평화 후통일"등의 기본 원칙에는 기초하되, 앞서있던 강경한 정책들 보다는 좀 더 순화되어 "민족 화합 민주 통일 방안(1982)"을 기치로 한 통일 정책을 펼쳐 나갔습니다. 게다가, 80년대에 이르러서는 남한의 경제력이 많이 발전했고, 이미 서로 다른 정책을 펼친 기간이 길어졌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을 흡수하는 식의 통일은 서로가 부담스러운 시기였습니다.

  

   "민족 화합 민주 통일 방안"은 당시까지 한국 정부가 내걸었던 통일 정책을 기초하고 있으나, 남북한 상호간에 신뢰를 회복하고 민주적인 통일을 이룰 것을 제의하는 것이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이렇습니다. 민주 통일의 단계에서는 남북한에서 각자 대표를 뽑아 가칭 '민족 통일 협의회의'라는 기구를 구성하여 통일 헌법을 만들어 이 헌법을 국민 투표를 통해 확정합니다. 또한 통일 국회와 정부 역시 민주적인 총 선거로써 "통일 민주 공화국"을 수립하자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한편, 이 시기의 북한이 내놓은 "고려 민주 연방 통일안"은 상대방의 사상과 체제를 그대로 두자는 과도기적 연방제 안이었습니다. 즉, 연방제 형태의 통일 정부 하에, 남한과 북한은 같은 의무와 권한을 갖는 지역 자치제를 실시한다는 내용입니다.

  

   또한, 전두환 정부는 1985년 여러 차례의 경제 회담과 예비 회담, 적십자 회담, 체육 회담 등의 다양하고 활발한 논의를 가짐으로써 남북 관계 진전의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비밀리에 이루어진 여러 차례의 회담까지 포함하면 남북한 교류의 횟수는 더욱 늘어납니다. 처음에는 민주화 운동을 무력으로 짓밟은 정부에 대해 냉담하던 북한이 1984년 남한의 큰 수해에 복구 물자 지원을 보내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남한에서는 교류의 기회로 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는데요. 실제로 여러가지 회담 뿐만 아니라 남북 고향 방문단(1985년 9월 20일~23일) 100명이 서로 서울과 평양을 방문하여 이산 가족과 친척들을 만났습니다. 이 때 예술단도 함께 교환하여 2회씩 공연도 하였습니다.

  

 ⓒ조선일보 <남북 고향 방문단 사진>

 

 

  남한 정부가 이렇게 통일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선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는, 남북 관계 개선에도 일조하면서 부수적으로는 민주화 항쟁 등을 무력으로 막은 것에 대해 실추된 이미지와 정당성을 되찾기 위함으로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이유로는, 사회 전반에서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함께 통일에 대한 논의와 관심이 확대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론 검열 등 탄압에서도 민간에서의 통일의지는 쉬이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한 방면의 접촉과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은 구체적인 결실을 맺지 못하였는데요. 이는 많은 회담이 이루어졌음에도, 남북한의 팽팽한 의견 차로 인하여 실질적인 결과물을 내놓지 못한 데다가, 무엇보다도 수십년간 쌓여 높아진 불신의 벽을 단시간에 허물어뜨리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판단됩니다. 물론 불신의 벽은 현재에도 여전히 높고 점점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한 번 뿌리 내린 불신이라는 씨앗을 뿌리 뽑기는 굉장히 힘들어보입니다. 그러나 힘들어보인다고 노력하지 않으면 그 뿌리는 점점 더 깊어질 뿐입니다. 과거에 있었던 통일에 대한 논의들과 노력들, 이를 교훈으로 삼아 통일의 밑거름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풀어야 할 숙제일 것입니다.

 

  

 

* 자료 출처

1. 심지연, 「통일론의 변천 3 - 박정희, 전두환의 통일정책」

2.「전두환 대통령의 통일의지」(국정연설모음집)

3. 이정진, 「대북정책 결정과정에 나타난 대통령과 여론의 영향력 변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