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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 이야기/정책 돋보기

[테마시리즈:역대 정부의 통일정책] 여섯번째 이야기

 

 

 

[테마시리즈:역대 정부의 통일정책] 

노태우 정부의 통일 정책

 

대한민국 제 13 대 대통령 노태우(1988.2 ~ 1993.2)

 

"자주, 민주 그리고 평화..."

 

안녕하십니까. 통일부 상생 기자단 입니다. 이달의 테마 시리즈인 역대 정부의 통일정책.

이번에는 노태우 정책이 추진한 통일정책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첫째, 7ㆍ7 선언 (1988.7.7)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대통령 특별선언〉

 

    1988년 서울 올림픽이 개최되기 두 달 전 노태우 정부는 대한민국 역사에 길이 남을 '7ㆍ7 선언'을 합니다. 이 선언은 '자주ㆍ평화ㆍ민주'라는 세 원칙 아래 천명된 선언 이었습니다. 본 선언은 유럽의 동구권 및 소련에게 비교적 큰 환영을 받았죠. 때문에 서울 올림픽은 자유주의 국가와 사회주의 국가 간의 긴장이 완화된 채 전 세계인의 스포츠 축제로 성대히 치러졌고, 이것은 역사에서 성공적인 '선언'으로서 기록됩니다.

 

선언의 배경과 내용 자세히 보기

 

 

  

 

    둘째,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 (1989.9.11)

 

    1989년 9월 11일 정기 국회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이 발표한 이 통일안은 7ㆍ7선언 때 천명된 '자주ㆍ평화ㆍ민주'란 세 원칙을 재차 언급하며 노태우 정부가 어떤 가치를 갖고 대북 정책을 이행할 것인지에 대해 아주 선명한 '방점'을 남겼습니다.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의 배경과 내용 자세히 보기

 

 

 

셋째, 남북 통일 축구 (1990.10.11 / 10.23)

 

    '통일 축구'라는 대명사에 가장 잘 어울리는 두 경기가 있었습니다. 1990년 당시 북한과 남한의 대표팀은 두 차례로 나누어 각각 평양 5ㆍ1 경기장과 서울 올림픽 경기장을 상호 방문하여 두 차례 축구경기를 치렀습니다. 이 당시 특이사항이 있다면 서로 유니폼에 국가명을 쓰지 않았다는 점과, 방문기간 동안 상대방의 신변을 확실히 보장해 주었다는 점입니다. 첫 번째 경기는 15만 명의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평양에서 성대하게 치러 졌으며, 홈 그라운드인 북한이 2:1로 이겼고, 두 번째 경기는 서울 올림픽 경기장에서 치러 졌으며 우리나라가 1:0으로 북한을 이겼습니다. 남과 북은 서로 1승 1패를 기록하며 취지에 걸맞게 사이좋게 승패 결과를 나누었습니다.

 

    만약 남북 통일축구가 정기적으로 치러져 2010년까지 이어졌다면 어땠을까요? '스포츠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하는 물음에 당당히 대답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죠. 아쉽습니다.

 

                                           넷째,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1991.9.18)

 

    1991년 당시 열린 UN 총회에서 남북한은 기타 여러 나라들과 함께 표결없이 159개 전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UN동시가입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만들어 냅니다. 서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고 주장한 역사를 뒤로 한 채, 분단 46년, UN 창설 46년 만에 남북한은 독립된 국가로서 국제질서에 발을 들이게 됩니다. 

 

남북한 UN 동시 가입의 배경과 내용 자세히 보기

 

 

 

 

                          마지막, 남북 기본 합의서, 비핵화 공동선언 공동 발효(1992. 2. 19)


 

    1991년 12월 10일부터 13일까지 3일동안 서울에서 열린 제5차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남북한은 서로 화해하며 침략하지 않고, 교류와 협력을 증진할 것을 약속하는〈남북한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라는 문건을 채택합니다.

 

또한  남·북한은 1991년 12월 한반도 핵문제를 협의하기 위한〈남북 고위급회담〉에서 ‘한반도의 비핵화를 통하여 핵전쟁의 위험을 제거하고 조국의 평화와 평화 통일에 유리한 조건과 환경을 마련하자’는 공통된 취지에서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에 합의합니다. 전문과 6개항으로 된 〈비핵화  공동선언〉은 1991년 12월 31일 채택된 뒤 1992년 2월19일 〈제6차 고위급회담(평양)〉에서 〈남북 기본 합의서〉와 함께 발효되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았습니다.

 

남북 합의서의 배경과 내용 자세히 보기

 

  

한반도 비핵화 선언의 배경과 내용 자세히 보기

 

 

 

노태우 대통령 재임 시절의 남북상황은 자주, 민주, 평화라는 키워드로 표현할수 있습니다.

7ㆍ7 특별선언으로 시작된 통일정책은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 남북 합의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등의 남북 합의문을 채택하게 하였습니다.

이런 분위기 가운데 남북의 통일축구와 88 올림픽등

문화, 스포츠, 예술 방면에서 많은 교류를성사 시켰습니다.

또한 남북이 UN에 가입하게 되면서 국제적인 관심과 주목도 받았습니다.

 

이전과 비교해 굉장한 평화의 분위기가 남북을 적셨는데요.

이는 대북정책에서 북방정책으로, 즉 북쪽의 중국과 소비에트 연방등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관계를

해결하면서 남북만의 문제가 아닌 국제적인 해결 방안들을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88 서울 올림픽은 동구권과 서구권의 나라들이 모두 참여해 세계적인 평화의 축제를 즐기는 등

남북은 평화의 아이콘 역할을 하였습니다.

 

앞으로 남북은 서로의 상처를 씻어가는데 있어 각자에게 좋았던 시절의 관계를 추억할 뿐 아니라

앞으로의 관계들도 어떻게 가깝게 만들 수 있을지, 또한 어떤 하나의 모습으로 만들어 갈지,

세계에서 마지막 남은 분단상황에서 어떻게 마지막 평화의 단추를

채워 나갈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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