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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 이야기/정책 돋보기

[테마시리즈:역대 정부의 통일정책] 세번째 이야기

 

  

[테마시리즈:역대 정부의 통일정책] 세번째 이야기

장면 정부의 통일 정책

이승만 정부와 박정희 정부 사이, 많은 이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가 있다면?

 

 

 

 

안녕하세요. 오기자와 스더기자입니다.

 

오늘은 여러분들에게 역사 속에서 크게 다뤄지지 않은

'장면 내각'의 통일 정책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장면(1960~1961) 이승만 대통령 시절의 한국 2대 총리

1950년 11월 23일부터 1951년 4월 24일까지 재임

 

 

1) 이승만 정부의 통일정책을 이은 정책 유지

  오기자:) 짧은 재임 기간이었지만 장면 총리 역시 통일정책을 펼쳤습니다. 바로 전 정부였던 이승만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북한을 동족상잔의 전쟁을 도발한 적으로 간주하였습니다. 이승만 전 정부의 북한 불인정 정책을 유지하였고 북한이 주민들의 자유 선거에 의해 수립되지 않았다며 북한 정권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스더기자:) 반면에 장면 총리는 이승만 대통령이 제안한 무력 북진 통일정책을 유지하는 대신 실험적인 의회 정치 형태를 이끌면서 무력 통일정책 포기와 평화 통일정책 채택을 주장하였습니다. 1961년 4월 21일 유엔총회에서 한국 정부는 "우리는 무력이 아닌 평화적인 통일정책을 추구한다"고 선언한 것을 보면 장면 총리는 평화주의를 지지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2) 평화통일을 원하면서도 북한 불인정 정책을 고수

 오기자:) 장면 총리는 1960년 8월 27일 새 국회에서 유엔 감독 하에 모든 한민족이 참여하는 자유 선거에 의한 통일을 주장했습니다. "남한은 유엔 감독 하에서 남북한 자유 총선거를 통해 통일을 이룩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유엔 감독 없이 실시되는 북한 내의 어떤 선거도 인정할 수 없음을 나타내었습니다.

 

 

 

 

3) 통일에 대한 활발한 여론에도 불구, 북한과의 교류 거부

 오기자:) 이승만 정부의 붕괴는 통일에 대한 활발한 토론을 몰고 왔습니다. 학생들은 장면 정부에 북한과의 자유로운 서신 왕래, 문화 교류, 무역 개방, 한국 문제에 관한 국제 회의 개발, 심지어는 미군 철수와 한반도의 중립화 등 현실에 기초를 둔 긍정적인 외교를 펼칠 것을 촉구했습니다.

 

 스더기자:) 하지만 중립화 통일 방안에 대한 토론 대신 장면 총리는 북한을 경계하며 안보 강화에 더 신경을 썼습니다. 북한과의 경제ㆍ문화 등 어떤 형태의 교류도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이를 단호하게 거부하고 한국 정부는 유엔 단독 가입을 통해 북한을 국제 사회로부터 고립시키기 위해 서방 및 비수교국들을 상대로 적극적인 외교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장면 총리의 북한 고립화 정책은 통일 성취와 한반도 긴장 완화의 측면에서

주어진 상황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정책이라고 보여집니다.

 

평화와 안보 사이에서 수없이 고민하고 갈등할 시기였음은 분명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의 북진 통일정책을 포기한 것을 제외하고는 전임자 정책의 연장선이었습니다.

 

먼저 상대를 인정하고 신뢰하는 것이 우선임을 보여주는

장면내각의 통일정책 소개였습니다.~

 

 

 

사진출처 - 제2공화국 국무총리 장면 박사 기념관 htp://unsuk.kyunghee.ac.kr

자료출처 - 대통령 리더십과 통일정책 저자 박봉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