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천상륙작전
7월 27일 개봉을 앞두고 이정재, 이범수, 리암 니슨이라는 초특급 캐스팅 덕분에
벌써부터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는 등 그 관심이 대단한데요.
영화로 바로 만나기 전, 통일부 기자단에서 미리 준비했습니다!
한반도의 상황을 모조리 바꿔놓았던 1950년의 한국전쟁, 그리고 그 속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작전인 "인천상륙작전"에 대해서
같이 공부해보도록 합시다.
참고 : 설민석의 영화 "인천상륙작전" 해설강의 https://youtu.be/_ySEeRtd-dM
작전의 발단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김일성 부대는 소련제 탱크로 무장한 채 기습 남침을 감행합니다.
단 사흘 만에 서울이 북한군에게 함락당했고 한 달 만에 낙동강 동쪽을 제외한 전 지역이 북한군의 손에 들어가게 됩니다.
미국은 침략 전쟁을 저지하기 위해 16개국 (미국,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뉴질랜드, 필리핀, 태국, 그리스, 터키, 남아프리카공화국, 벨기에, 룩셈부르크,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군인들로 구성된 유엔군을 이끌고 부산항으로 입항합니다.
그리고 유엔군 총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은 우리가 전면전을 펼칠 경우에 아군에게 피해가 클 것이기 때문에
남해와 서해를 돌아서 인천을 쳐 버리고 상륙을 하는 '인천상륙작전'을 떠올립니다.
UN군 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
"왜 인천으로 상륙하려 했을까요?"
1. 지리적 요인 - 서울하고 34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게다가 수도를 회복하면 적의 주력부대에게 심리적 타격감을 줄 수 있습니다.
2. 전략적 지역 - 모든 길은 수도인 서울로 나있습니다. 서울을 차단해 버리면 이들의 보급로를 끊을 수 있고 식량과 탄약 공급을도막을 수 있습니다.
물론 당시 미군 합동참모본부와 미 해군에서는 반대 의견을 냅니다.
1. 인천으로 들어가는 수로가 너무 좁습니다. 당시 유엔군의 함정이 261척에 7만 명을 태우고 있었는데, 수로가 좁으면 신속하게 군함들을 이동시킬 수 없습니다. 거기다가 기뢰(물에 떠 있는 지뢰)라도 떠있으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2. 조수간만의 차이가 엄청납니다. 밀물 때 신속하게 상륙을 해야 되는데 그 밀물 차 있는 시간(만조)이 2시간밖에 안 됩니다. 북한군이 격렬하게 저항을 하면 빠른 시간 안에 상륙할 수 없고, 그러면 약 4km나 되는 엄청난 갯벌에 갖히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아더 장군은 인천을 고집합니다.
성공 가능성이 낮으니 오히려 적이 가장 방심하는 지역일 거란게 그의 판단이었습니다.
밀물이 가장 많이 들어와서 인천 항구에 수심이 가장 깊을 때 날짜를 계산해 봤습니다.
9월 15일, 10월 11일, 그리고 11월 3일 단 3일.
그런데 10월이나 11월로 가면 아무래도 지금 전략적으로 다급하고 겨울이 가까워 오기 때문에 기후적으로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9월 15일 은밀하게 진행하는 야심한 시간, 밤 12시로 정해졌습니다.
작전의 내용
1. 장사상륙작전
"동쪽에서 소리를 쳐서 적군의 시선을 쏠리게 한 다음에 적의 허점이 되는 서쪽을 친다."
당시 맥아더 장군은 그전부터 마치 상륙할 것처럼 거짓 무전을 계속 적에게 흘립니다.
평양 서쪽, 남포로 상륙한다, 해주, 군산이다, 등.
그리고 그것을 믿게 하기 위해서 폭격을 가하기도, 아예 병력을 상륙시키기까지도 합니다.
그것이 바로 유명한 '장사상륙작전'입니다.
적의 시선을 끌기 위한 페이크 상륙작전을 위해 772명의 중고등학생들이 뽑혀 갑니다. (애국심만으로 군에 자진 입대한 학도병)
그들은 총을 쏘는 훈련도 약 보름밖에 받지 못했지만 문산호를 타고 인천상륙작전 직전에 상륙을 시도합니다.
하지만 태풍을 만나서 배는 좌초되었고,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10대 소년들은 육지로 헤엄쳐 갔습니다.
그리고 당시 포항과 영천 방면을 잇는 국도를 점거하였고, 북한군의 시선을 전부 동쪽으로 쏠리게 만들면서,
결국 적의 북상을 저지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안타깝게도 구조선이 출발했지만 소년병들은 그곳에서 교전하다가 대부분 전사하게 됩니다.
출처 : 서울신문
2. X-RAY 작전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모티브가 된 작전입니다.
상륙작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첩보부대가 구성되었습니다. 이때 구성된 첩보부대가 해군 첩보부대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이정재 씨가 맡은 장학수 대위가 해군 첩보부대의 리더입니다.
이 해군 첩보부대는 은밀히 인천 지역으로 잠입을 합니다.
그리고 지역 주민의 도움을 받아 적의 해안포의 위치, 병력 규모, 그리고 수로에 배치되어 있는 기뢰의 위치와 제거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을 했습니다.
이때 또 하나의 특수부대 '켈로 부대'라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인천 앞바다에 있는 팔미도 섬으로 상륙을 해서 북한군과 치열한 교전 끝에 등대를 점령하게 되고,
상륙 당시 불빛을 켬으로써 맥아더 장군의 함대를 무사히 인천으로 부르게 됩니다.
해군첩보부대 대위 '장학수'
작전의 결과
이렇게 작전은 성공했습니다. 서울을 9월 28일 수복을 하고, 적의 보급로를 차단했습니다.
북의 주력부대는 오합지졸이 되었고, 우리 국군이 북진을 해서 결국 압록강과 두만강 지점까지 밀고 올라가게 된 것이 바로 인천상륙작전의 결과입니다.
북한군 인천 방어사령관 '림계진'
- 영화 줄거리 - (출처 : 네이버영화)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불과 사흘 만에 서울 함락,
한 달 만에 낙동강 지역을 제외한 한반도 전 지역을 빼앗기게 된 대한민국.
국제연합군 최고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리암 니슨)는 모두의 반대 속 인천상륙작전을 계획한다.
성공확률 5000:1, 불가능에 가까운 작전.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단 하나, 인천으로 가는 길이 확보되어야 하는 것뿐이다.
맥아더의 지시로 대북 첩보작전 ‘X-RAY’에 투입된 해군 첩보부대 대위 ‘장학수’(이정재)는
북한군으로 위장 잠입해 인천 내 동태를 살피며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인천 방어사령관 ‘림계진’(이범수)에 의해 정체가 발각되는 위기에 놓인 가운데
‘장학수’와 그의 부대원들은 전세를 바꿀 단 한번의 기회, 단 하루의 작전을 위해
인천상륙 함대를 유도하는 위험천만한 임무에 나서는데...
역사를 바꾼 비밀 연합작전
그 시작은 바로 그들이었다!
영화 인천상륙작전 포스터
한반도의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던 1950년 한국전쟁, 하지만 그 과정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6.25 전쟁이 왜 일어난 줄 아세요?"
"방심해서요"
"북침? 남침? 북침은 북한이 남한을 공격한 건가요?"
그래서 사실 인천상륙작전에 대해서도 생소하시거나, 자세히 알지 못하시는 분들도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맥아더 장군이라는 이름과 6.25 전쟁 당시 인천으로 우리 군이 상륙했다는 정도?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힘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70년도 지나지 않은 남북한의 기록이라면 계속적인 관심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도 그 때의 상황은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지요.
동시에 역사의 단편적인 모습만을 기억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승리를 역사에 기록할 수 있었던 건 당시 학생들, 지역주민, 그리고 군인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지켜 준 분들을 위해서라도 보다 '구체적'인 역사를 마음 속에 새겨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영화를 계기로도 인천상륙작전에 숨겨져 있던 영웅들을 만나며
잘 알려진 역사에만 국한하거나, 단편적인 사실이나 결과에 대한 판단에 동조하기 보다는
역사를 바라보는 더욱 올바른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같이' 노력합시다.
이상, 제9기 통일부 대학생 기자단 선정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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