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문화, 어떻게 변하고 있을까? ①에서 이어집니다)
북한 문화에 대해 북한대학원대학교의 이우영 교수는 외부문화 유입에 따라 북한 주민들의 문화적 눈높이가 몹시 향상되었으며, 북한 당국이 이에 걸맞는 문화예술품을 만들려고 시도하지만 주민들을 만족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 발제 내용에 대해서 오양열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과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토론을 진행했습니다. 먼저 각 토론자의 토론 내용과 이우영 교수의 답변을 살펴볼까요?
왼쪽부터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우영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조현성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 오양열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석좌초빙연구위원.
김정은의 김일성 따라하기 by 오양열 연구위원
오양열 연구위원은 이우영 교수의 발제가 정치, 경제, 사회 등 큰 맥락과 더불어 예술정책과 같은 세부적인 맥락까지 잘 분석돼있다고 감사를 표했습니다. 오 연구위원은 이에 몇 가지 의견을 보충했습니다.
오늘날 문학예술 부문이 주저앉아 일떠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 김정은
김정은은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2015.05.16~5.17)에 보낸 서한인 "시대와 혁명발전의 요구에 맞게 주체적 문학예술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나가자"에서 위와 같이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그 근본요인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첫째로 예술인들의 사상적 각오가 투철하지 못하고 사색과 열정을 바치지 않으며 패배주의에 빠져있고, 둘째로 예술부문 관료들 또한 정치사상적 수준과 실력이 낮아 설익은 작품을 그대로 통과시키고 있으며, 셋째로 세 새대 예술인들이 전(前) 세대를 능가하겠다는 야심과 열정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김정은은 이처럼 북한 예술가들을 무섭게 질책하고 있습니다.
이우영 교수는 김정은의 선전선동 방식을 친인민성과 공개성으로 특징지어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김정은의 김일성 따라하기가 추가되어야 합니다. 김정은은 김정일식의 착취적 권위주의 이미지에서 탈피하고자 노력하고 있는데, 김일성의 온정적 권위주의 이미지를 따라하며 김일성의 후광을 이용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토론하는 오양열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석좌초빙연구위원(오른쪽)
또한 이우영 교수는 발제를 통해 모란봉 악단이 전자 악기를 이용하는 것은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일이라고 설명했는데, 김정일 시대의 왕재산경음악단과 보천보전자악단의 사례가 있어 조금은 잘못된 설명입니다. 1983년 결성된 왕재산경음악단과 1985년에 결성된 보천보전자악단 또한 전자악기를 이용했었기 때문입니다. (관련기사: 보천보전자악단에 관해서는 여기를 참조하세요!)
또한 모란봉 악단은 북한 정부가 외부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한다기보다, 북한의 사상적 정신은 유지한 채 기술만 받아들이는 것으로 판단하는게 더 알맞다고 덧붙였습니다. 모란봉 악단은 북한 사회에 한류가 이미 광범위하게 퍼진 상황에서, 조선노동당이 의도하는 내용을 자본주의적 형식에 담는 그릇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북한 당국은 모든 예술 분야가 모란봉 악단의 창조적 기풍을 따라 배워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특히 산업미술과 상업미술 분야에 대대적 육성 의지를 보이고 있다며 토론을 마쳤습니다.
김일성 따라하기는 필요에 의한 것일 뿐, 큰 의미는 없어
이우영 교수는 오양열 연구위원의 몇 가지 토론에 대해 답했습니다. 그는 먼저 왕재산경음악단과 보천보전자악단에 대해 대답했습니다. 왕재산경음악단, 보천보전자악단과 모란봉 악단은 내용적으로 정도의 차이가 크다는 것입니다. 왕재산경음악단도, 보천보전자악단도, 모란봉 악단도 역할과 기능이 모두 다릅니다. 가령 왕재산경음악단은 비교적 춤에, 보천보전자악단은 비교적 음악에 중점을 두었던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우영 교수가 모란봉 악단이 서구의 문화를 수용한다고 말한 것은 방법이나 기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으로, 오 연구위원이 말한 것과 별 차이가 없는 말입니다.
이우영 교수는 오양열 연구위원이 지적한 김일성 따라하기에 대해서도 대답했습니다(김일성 따라하기는 두 번째 토론자인 조한범 연구위원도 지적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김정은이 김정일이 아닌 김일성을 따라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최초에 이러한 논의가 불거진 것은 김정은이 첫 연설을 했을 때부터입니다. 김정일은 연설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김정은은 연설을 했다는 것입니다. 김정은이 양복을 입는다거나, 머리카락을 김일성과 닮게 한다거나 하는 사실부터, 김정은이 성형수술을 했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도는 것도 김일성 따라하기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7차 당대회에서 양복을 입고 안경을 쓴 김정은. 이를 두고 할아버지 따라하기라는 언론 비평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북한은 효과적인 선전선동은 다 한다는 것입니다. 김일성은 연설을 했는데 김정일은 연설을 하지 않았다는 근거에 대해 생각해보면, 오히려 김정일이 아버지 김일성을 따라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 이유는, 김정일의 목소리가 좋지 않으며 따라서 선전선동에 효과가 없으며, 김정일의 연설이 정치적 효과를 내기 힘들었던 것입니다. 김정은도 마찬가지로 김일성을 따라하는게 정치적으로 효과가 있기 때문일 뿐, 별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정치적 선전선동에 도움이 되기만 한다면 할아버지를 따라하든 아버지를 따라하든 누구나 따라할 수 있습니다.
또한 김정은은 비교적 어린 나이에 최고지도자 자리에 올랐는데, 아버지 김정일은 50대가 넘어서 최고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김정일은 지도자로서의 젊은 이미지가 별로 없고, 따라서 김정은은 청년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할아버지 김일성을 따라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최근 북한의 예술작품에는 지도자가 아니었던 젊은 김정일의 모습이 나오거나, 청년시절의 김일성이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김정은이 젊은 시절의 지도자 이미지를 찾는 것이며, 특별한 이유를 가지고 김일성을 따라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김정은이 김일성을 따라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는, 김정은의 어머니가 김정일의 정식 부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혈통적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거나, 권력의 불안정성이 있기 때문에 김일성을 따라한다는 식의 분석이 따릅니다. 하지만 이는 확대해석이고, 김정은은 단순히 선전선동을 위해 김일성을 따라하는 것입니다. 가령 김정은이 성형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외모가 달라졌다면 미용에 신경을 쓴다는 것이고, 이는 김정은 또한 이미지 정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김일성 따라하기도 이와 같이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오양열 연구위원의 토론과 이우영 교수의 답변을 들었습니다. 오양열 연구위원은 특히 김정은의 김일성 따라하기에 대해 첨언을 했고, 이우영 교수는 이에 대해 김일성 따라하기는 그다지 중요한 현상이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김정은이 김일성을 따라한다는 식의 보도가 연일 쏟아지고 있는데, 이우영 교수의 답변을 통해 이에 대한새로운 시각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는 조한범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의 토론과 이우영 교수의 답변을 살펴보겠습니다.
김정은 정권은 여전히 불안 by 조한범 연구위원
북한의 7차 당대회는 북한체제의 중요한 변화 계기라기 보다 김정은 정권의 안정화가 주 목적이었습니다. 특히 군부 세력이 약화되고 북한 사회 내의 민간 사찰과 감시를 담당하는 공안세력이 약진한 것을 눈여겨 보아야 합니다. 이는 군부 세력이 약화된 대신 당 관료의 세력이 강화되었다는 다른 학자들의 분석과는 조금 다른 것입니다.
토론하는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맨 왼쪽)
김정은 정권은 집권 초부터 모란봉 악단을 통해 미키마우스를 무대에 올리거나, 부인인 리설주를 정치 무대에 등장시키는 등 이미지 정치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미지 정치를 위한 섬세한 기획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것인데, 선전선동은 조선노동당의 정무국(비서국이었으나 7차 당대회에서 정무국으로 개칭) 선전선동부에서 기획됩니다. 한편 김여정이 선전선동부 부부장(부장 다음의 차장급)에 있는 것으로 보아, 김여정의 역할 또한 커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북한에 외부 문화가 유입되고 있고 김정은이 이에 발맞추기 위해 파격적으로 대중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문화적 차원에서 개방정책이 시행될 가능성은 낮습니다. 김정은은 물놀이장, 놀이공원, 스키장 등을 건설하고 있지만, 이는 주민들에게 대내적으로 제공되는 것일 뿐 외부 문화에 대한 통제는 강화되었다고 평가해야 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김정은은 대북전단 및 확성기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적으로 추론해보면, 김정은 정권의 내적 안정성은 불안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김정은 정권의 정치적 정당성이나 권위가 김일성과 김정일 시기보다 부족하며, 정경유착형 빈익빈 부익부 구조가 심화됨에 따라 사회갈등구조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김정은 정권이 청년을 강조하는 것 또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기 위함이 아니라, 청년을 김정은 시대를 지탱해줄 권력기반으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조 연구위원은 공안세력이 권력을 잡았던 독재국가들은 다 망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습니다.
북한의 숙청이 정권의 불안정성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이우영 교수는 조한범 연구위원의 토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우선 북한의 현 상황에 대해서 이우영 교수는 조한범 연구위원과 견해차이가 있습니다. 서로가 주목하는 지점이 다른데, 조한범 연구위원과 달리, 이우영 교수는 지도자의 다층적인 카리스마에 집중합니다.
가령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군부대를 시찰할 때, 어린이날 행사에 참석할 때, 국무회의에 참석할 때의 이미지가 다릅니다. 지도자의 이미지는 상황에 따라 다차원적인 것입니다. 지도자로서 다차원적 이미지를 갖는 것은 김정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김정은 정권이 불안하다는 가장 큰 근거로 제시되는 것이 북한 권력층에 대한 김정은의 정치적 숙청입니다. 하지만 유념해야 할 사항은, 김정은이 김일성이나 김정일보다 숙청을 더 많이 하는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김정은 정권이 김일성 정권과 김정일 정권보다 더 강도 높은 공포정치를 한다고 평가하기에는 근거가 미약합니다. 북한의 숙청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북한의 불안정성이 아니라 권력구조의 변화입니다.
통일문화 정책포럼 현장 사진
북한 주민들 또한 정치인들 간의 숙청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으며, 일본의 한 북한학자에 따르면 주민들이 오히려 숙청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정경유착형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북한 권력층이 주민을 억압하고 있다는 인식 때문에, 권력층의 숙청을 오히려 반긴다는 것입니다. 이우영 교수는 이것이, 우리나라 독재정권 시절의 비리 관료가 법적 처벌을 받을 때 국민들이 반겼던 것과 비슷한 현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추가적으로 북한의 변화하는 문화정책이 북한 주민들의 취향 변화에 대해 호응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국가가 주도하는 문화정책은 아무리 현실적 상황을 반영한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선전선동이라는 목적이 있습니다. 북한의 선전선동은 남한의 홍보나 광고와 같은 원리인데, 북한의 경우 홍보의 목적이 정권 수호입니다. 이처럼 선전선동의 정치적 목적이 있는 한, 질적으로 세련된 외부 문화를 선호하는 북한 주민들의 호응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오늘날 북한에서 휴대폰 이용량이 300만 대 가량 되며, 보급률로 보면 전체 인구의 10% 정도 됩니다. 전 세계 휴대폰 보급률이 10% 정도인데, 이는 북한 주민들이 휴대폰을 굉장히 많이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높은 휴대폰 보급률도 양면성이 있습니다. 먼저 핸드폰을 통해 주민 간 정보 공유가 빨라지는 것을 북한 당국이 전부 통제하는 것은 무리고, 따라서 북한의 주민 통제 정도가 약화된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반면 북한 당국에게 핸드폰은 굉장히 효율적인 사회 통제 수단입니다. 가령 휴대폰을 전 국민에게 배급하면 전 국민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핸드폰이 중요한 소통의 통로이기도 하지만, 효율적인 통제 무기로도 쓰일 수 있다는 점도 충분히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북한의 문화적 상황과 문화정책을 다룬 통일문화정책포럼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보셨습니다. 북한의 문화 상황 뿐만 아니라 정권의 전반적 상황에 대해서도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던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끝으로, 북한 문화와 관련하여 기사에서 미처 다루어지지 못한 부분에 대해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아래 기자단 명함에 있는 메일로 언제든지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추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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