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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현장과 사람

대피소(待避所, Shelter)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던 지난 8월 11일. 약 200여 명의 사람들이 파주 평화누리 공원 내 한 대피소에 모였습니다. 중학생부터 중장년층까지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를 잡았습니다. 저마다 약간은 설레는 표정으로 곧 시작할 행사를 기다렸습니다. 행사장 한켠에는 "북한알기 토크콘서트"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습니다. 사단법인 '1090 평화와 통일 운동'(이하 1090)에서 개최한 행사였습니다. 1090의 "북한 알기 토크콘서트"는 이미 지난 5월에 한 차례 개최된 바 있습니다. 지난 번 행사와 같은 강연자가 연단에 오를 예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행사가 특별했던 이유는 광복 70주년을 기념한다는 상징성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날 강연 뒤에는 광복 70주년이라는 의미를 더하려는 듯 지난 "토크콘서트" 행사에서는 없었던 제 3땅꿀과 도라전망대 등의 DMZ 안보견학이 이어졌습니다.

 

△지난 8월 11일 (사)1090 평화와 통일운동에서 개최한 '광복 70주년 기념 북한알기 토크콘서트'가 파주 평화누리공원 내 대피소에서 진행되었다.△지난 8월 11일 (사)1090 평화와 통일운동에서 개최한 '광복 70주년 기념 북한알기 토크콘서트'가 파주 평화누리공원 내 대피소에서 진행되었다.

 

 대피소. 그렇습니다. 이번 행사가 특별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행사 장소가 대피소였다는 점입니다. 이번 행사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 파주시에서 왜 대피소를 행사 장소로 제공했는지는 모릅니다. 아마도 대피소가 가지는 상징성 때문이었겠지요. 파주시를 비롯한 휴전선 일대 접경지역에는 약 200여개의 대피소가 있습니다. 이들 대피소는 유사시 주민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공간으로 활용됩니다. 실제 대피소 안에는 유사시 행동요령을 담은 안내판이라던가, 적의 화생방 공격에 대비한 일반인용 방독면 등의 구호물품이 구비되어있습니다. 대피소의 출입문은 성인 남자 팔뚝 굵기만한 두께의 철문이었습니다. 1090과 파주시 측은 '북한알기'와 '통일'라는 주제를 가지고 토크콘서트를 열면서도 장소를 대피소로 정했습니다. 남북통일이라는 밝은 미래를 이야기하면서도 휴전국가에서 '안보'라는 어젠다가 갖는 무게감을 강조하고 싶었을 겁니다.

 

△대피소 내 구비되어있는 화생방용 방독면들.△대피소 내 구비되어있는 화생방용 방독면들. △대피소 한켠에 붙어있는 비상대비국민행동요령 안내판.△대피소 한켠에 붙어있는 비상대비국민행동요령 안내판.

 

 대피소. 그 곳에서의 행사는 굉장히 유쾌하게 진행되었습니다. 흥남철수 당시 매러디스 빅토리아 호에서 태어난 아기 '김치5'(이경필 장승포가축병원장), 그리고 북한에 선진농법을 전수한 한국농수산대학의 박광호 교수의 강연이 이어졌습니다. 이들은 분단의 아픔과 전쟁의 참혹함을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한때는 활발했던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직접 확인시켜주기도 했습니다. 좌중은 분단의 안타까운 현실에 탄식하면서도, 과거 남북관계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의 기억도 떠올리며 들뜬 마음으로 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했습니다. 행사 중간에는 막간을 이용한 '골든벨(퀴즈경연)'도 열려 행사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렸습니다.

 

△이날 행사 중간 골든벨(퀴즈경연) 시간에 참가자들이 사회자의 말에 집중하고 있다.△이날 행사 중간 골든벨(퀴즈경연) 시간에 참가자들이 사회자의 말에 집중하고 있다.

 

 대피소. 그렇게 왁자지껄, 화기애애했던 공간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역주민들이 두려움에 떨며 대피해 있었습니다. 언론매체에서는 연일 대피소 앞이라며 현장에서 생중계를 해주었죠. 주요 일간지에서는 대피소에 머무르며 긴박하고 답답한 현실을 온몸으로 견뎌내고 있는 지역 주민들에 대한 인터뷰를 실었습니다. 토크콘서트 취재 차 들렀던 당시와는 굉장히 다른 모습에 그저 놀랄 따름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새삼스럽게 우리나라가 아직 전쟁 중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2주전에는 같이 박수도 치고 웃기도 하고 간식도 함께 먹으며 서로 통일에 대해 이야기했던 곳. 그랬던 곳이 이번 남북고위당국자 협상이 타결되기 전까지만 해도 언제 전쟁이 날지도 모른다는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 다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던 공포의 공간이 되었던 것입니다.

 

△파주 도라전망대 앞에서 기념촬영하는 행사 참가자들.△파주 도라전망대 앞에서 기념촬영하는 행사 참가자들.

 

 대피소. 접경지역 뿐만 아니라 서울 시내 곳곳에도 존재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이 단어가 주는 심각성을 잊고 살았는지도 모릅니다. 북한의 포격도발이 있기 하루 전, 우리는 전국 단위 민방위훈련을 했었죠. 당시 대다수의 국민들이 비협조적이고 훈련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는 점이 언론에 지적되었습니다. 이후 민방위 훈련 제도 자체를 대대적으로 손보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습니다. 다음날 북한의 포격도발이 있자 이런 주장은 어디론가 쏙 들어가 버렸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이 나라가 분단국가란 사실도 잊은 채 당장 눈앞의 현실에 급급해 하며 살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런 점에서 얼마 전 국방부 페이스북 페이지에 달린 대한민국 예비군들의 애국심 불타는 댓글과 최전선 부대 장병들의 자발적 전역 연기 소식은 굉장히 다행스러운 현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DMZ 견학 중 제3땅꿀 앞에서 참가자들이 시청한 안보 관련 영상물.△DMZ 견학 중 제3땅꿀 앞에서 참가자들이 시청한 안보 관련 영상물.

 

 대피소. 학교 가는 길. 학교 앞 지하보도를 걷습니다. 이곳도 대피소입니다. 평소 같으면 뜨거운 햇볕을 피해 걸으며 "아 시원하다"를 연발했을 그곳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아무 표정도 지을 수 없습니다.

(사진=하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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