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일 미래 길잡이/통일로 가는 길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 한국광복군

지난 10월 1일은 건군 제65주년 기념 국군의 날이었습니다. 숭례문에서부터 광화문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육, 해, 공군 삼군 의장대와 다양한 신무기들이 시가행진을 하는 모습에 시민들은 든든함과 뿌듯함을 느꼈답니다. 발을 맞춰 행진하며 시민들에게 거수로 경례하는 군인들의 모습에 시민들은 태극기를 열심히 흔드는 것으로 답례를 하며 서로의 신뢰를 확인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렇듯 든든한 우리 국군의 뿌리는 과연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을까요? 바로 대한민국 최초의 국군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입니다. 그래서 이번 기사에서는 광복군 창설 제73주년 및 건군 제65주년을 맞아 우리 국군의 뿌리인 한국광복군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국군, 한국광복군

한국광복군은 1940년 9월 17일, 중국 충칭(重慶)의 가릉빈관(嘉陵賓館)이라는 작은 식당에서 열린 한국광복군총사령부 성립전례식을 통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직할 국군으로 창설되었습니다. 한국광복군의 창설은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이래 정식 국군을 보유하지 못했던 임시정부가 드디어 본격적으로 독립전쟁에 뛰어들 기회가 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진: 한국광복군 성립전례식 기념사진 - 출처: 독립기념관)

광복군이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은, 그 자체로 좌우통합의 상징이라는 것입니다. 당시 독립운동 세력은 공산주의 좌파와 민족주의 우파의 양 세력으로 분리되어 각자 독립운동을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좌파 계열의 최대 독립운동 세력이었던 김원봉(金元鳳)의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가 임시정부에 합류하였고, 임시정부는 조선의용대를 광복군 제1지대로 편성함으로써 드디어 좌우를 아우른 민족의 국군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대한제국군과 의병·독립군을 계승한 한국광복군

광복군 창설식에서 임시정부 외무부장 조소앙(趙素昻)한국광복군은 일찌감치 190781일 군대해산 시에 곧이어 성립한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적인(敵人: 일제)이 우리 국군을 해산하던 날이 곧 우리 광복군 창설의 때인 것이다.”라고 말하며, “금년 8월로 광복군은 성립된 지 33년을 맞게 되었다.”라고 광복군의 연혁을 밝히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일제에 의해 강제로 국권을 빼앗기기 전까지 우리의 국군이었던 대한제국 군대 뿐만 아니라, 군대해산 직후 각지에서 벌어진 의병, 독립군까지도 계승하여 국군의 정통성이 광복군에 있음을 천명한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임시정부는 이 성명을 뒷받침하기 위해, 광복군의 주요 간부를 대한제국군 출신 혹은 의병, 독립군 출신들로 임명하였습니다.

(사진: 한국광복군 총사령장 임명장을 받는 지청천 장군 - 출처: 국가보훈처)


한국광복군의 활동

광복군이 창설된 이듬해인 1941128, 일제의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임시정부는 대일선전포고를 발표하고, 연합군과 함께 대일전쟁을 전개하였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인도·버마 전선에 투입되어 영국군과 공동작전을 수행한 것입니다. 당시 인도에 주둔하고 있던 영국군은 버마를 침략한 일본과 대치중이었으며, 일본군에 대한 심리전과 정보 수집 및 포로 심문 등의 작업이 필요하자 임시정부 측에 광복군의 투입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임시정부는 1943년 한국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印緬戰區工作隊)라는 이름으로 광복군 대원들을 파견하였고, 인도에 도착한 대원들은 영국군에 배속되어 공동작전을 수행했습니다.

광복군은 영국과의 연합작전 외에도 미국과의 합작을 추진하였는데요, 바로 미국 전략첩보대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s)와의 연합작전을 추진한 것이었습니다. 작전의 이름은 독수리 작전(Eagle Project). 일명 국내진공작전으로도 불리는 이 작전은, 특수훈련을 받은 광복군 대원들을 한반도 각지에 투입시켜 미군의 상륙을 위한 사전공작을 전개하는 위험천만한 작전이었습니다. 임시정부는 광복군 제2지대와 광복군 제3지대로 하여금 미군의 지휘 아래 국내진공작전을 위한 OSS 특수훈련을 3개월 동안 받게 하였고, 마침내 84일 훈련을 모두 수료한 1기 훈련생들은 국내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었습니다.

(사진: 인도에 파견된 광복군 대원들 - 출처: 독립기념관)(사진: OSS 훈련을 받던 청년 광복군 노능서, 김준엽, 장준하 - 출처: 장준하기념사업회)

그러나 참전을 준비하던 광복군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바로 일본의 항복 소식이었습니다. 광복군은 국내진입을 위해 대기하고 있던 중 뜻밖의 항복 소식을 접한 것이었습니다. 일본의 항복으로 해방은 되었지만, 국내진공작전이 무산됨으로써 우리 손으로 독립을 이루지 못한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는 임시정부가 국제무대에서 발언권을 가질 수 없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그래서 일제의 항복 소식을 접한 임시정부 주석 김구는 자서전인 백범일지를 통해 왜적이 항복한다는 소식은 나에게 희소식이라기보다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이었다. 수 년 동안 참전을 준비한 것도 모두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다.”고 안타까운 심경을 드러냈습니다.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 한국광복군

광복 후 임시정부를 정부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미군정의 방침에 따라, 임시정부의 군대인 광복군 역시 개인자격으로 환국해야만 했습니다. 결국 이듬해인 19466, 개인자격으로 귀국한 광복군은 해체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건국 준비 과정과 더불어 전개된 건군 과정에서 광복군의 역할은 계속되었습니다. 해방 후 건군 과정에 광복군 출신들이 대거 참여한 것입니다. 바로 미군정에서 설립한 통위부(統衛部: 국방부의 전신)의 초대 부장으로 임시정부 참모총장 출신의 유동열(柳東說), 역시 미군정에서 창설한 예비 국군인 (남조선)국방경비대의 사령관에 광복군 제2지대장 출신의 송호성(宋虎聲)이 임명된 것입니다.

(사진: 대한민국 초대 국무총리 겸 국방부장관 철기 이범석 장군의 광복군 시절 사진 - 출처: 독립기념관)

그리고 드디어 1948815,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며 통위부의 모든 권한과 업무가 국방부로 이관되었고, 국방경비대 역시 대한민국 국군에 편입되면서 광복군 역시 자연스레 국군에 흡수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총괄하는 국방부의 초대 장관으로 광복군 출신 이범석 장군이 임명되면서, 광복군 출신들이 국군의 주요 간부로 활약하기 시작하였습니다. 6대부터 제9대까지 육군사관학교 교장을 맡았던 최덕신(崔德新), 김홍일(金弘壹), 이준식(李俊植), 안춘생(安椿生) 모두 광복군 출신이었다는 것이 그를 증명합니다. 따라서 비록 해방 직후 광복군은 해체되었으나, 대부분 건군작업에 참여하여 대한민국 국군으로 흡수되었기에, 우리 국군은 광복군을 계승하였다 할 수 있습니다. 


통일 후 국군의 날은 광복군 창설일이 되어야

현재 우리가 기념하고 있는 국군의 날은 6.25전쟁 당시 우리 국군이 최초로 38선을 돌파하여 북으로 진격한 날입니다. 하지만 장차 통일이 되면 북한군 역시 자연스레 우리 국군과 통일될 것입니다. 그런데 통일한국의 국군을 기념하는 국군의 날을 과거 분단시대에 벌어졌던 동족상잔의 비극에서 찾아 기념하는 것은 모순일 것입니다.

따라서 통일이 된다면 통일한국에서의 국군의 날은 우리 국군의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날에서 찾아 새로이 제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바로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인 한국광복군의 창설일이 가장 적합한 날이 아닐까 합니다. '광복군의 후예'인 우리 국군이 광복군 창설일을 통일 한국의 새로운 국군의 날로 제정하는 것은, 우리 국군이 광복군의 정통성을 계승하였음을 명확히 하고, 좌우를 아우른 광복군처럼 통일 국군 역시 하나로 통일된 우리 민족의 결과물임을 증명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사진: 광복군 대원들이 한국광복군 영문약자대로 배열한 모습 - 출처: 독립기념관)(사진: 광복군 대원들의 선서식 - 출처: 중경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기념관)

 

장차 통일된 우리 국군 장병들이 다함께 모여 광복군 창설일을 '국군의 날'로써 기념하는 그날이 오기를 기원하며 이상으로 통일부 상생기자단 5기 김경준 기자였습니다.

<출처 및 참고문헌>

1.『韓國光復軍硏究(한국광복군연구)』, 한시준 저, 일조각, 1993.

2.『대한민국 국군의 뿌리, 어디서 찾아야할까』, 한시준 저, 한국광복군창군제73주년기념식자료집, 2013.

3. 독립기념관

4. 국가보훈처

5. 장준하기념사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