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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북한 전망대

북한에서 프로레슬링 경기가 열렸다고?

프로레슬링(Pro-Wrestilng)은 순수 운동 종목이 아닙니다. 합의와 연출로 개성 강한 기믹[각주:1]선수들이 화려한 액션을 선보이며, 경기의 승패도 중요하지만 관중을 매료시키는 연기력과 경기력이 중요합니다. 여기에 흥미의 요소를 더할 각본진과 단장, 기획자와 방송 기법, 마케팅 기법이 어우러져 하나의 거대한 문화 산업체가 됩니다. 따라서 흥행, 관중 수익, 방송 수익, 티셔츠 등 기념품 판매, 선수들의 영화 출연 등으로 돈을 벌어들이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즉 프로레슬링은 스포츠보다는 스포츠 엔터테인먼트라고 할 수 있고, 세계적으로 거대한 시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프로레슬링이 활발한 국가는 미국, 일본, 멕시코를 꼽을 수 있는데, 이중 가장 큰 시장은 단연 미국입니다. WWE를 위시한 미국 프로레슬링 시장에서 유통되는 자본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영웅을 만들어내는 미국 문화 산업의 특징을 충실히 반영하여, 미국과 적대국이었던 구 소련, 이라크 기믹의 선수들은 악역을 도맡아 해왔습니다. 때로는 캐나다, 프랑스, 이탈리아 기믹의 선수들이 악역으로 나섰습니다. 관중들과 시청자들은 미국을 반대하는 악역을 응징하는 미국인 영웅에게 환호했습니다.

 

그런데 '미제'의 미국 중심의 논리와 자본주의의 최전선에 있는 미국 프로레슬링 경기가 북한에서 열렸다면 믿어지십니까?

 

성조기 문양의 경기복을 입고 평양에 등장한 투 콜드 스콜피오(사진: 《Collision in Korea》 영상에서 포착)

 

1995년 4월 28일과 29일, 이틀 동안 미국과 일본의 프로레슬러들이 북한의 수도 평양에서 경기를 치렀습니다. 15만 명을 수용할 수 있어 세계에서 가장 큰 경기장으로 꼽히는 5월1일경기장에서 열린 이 쇼는 《Collision in Korea》(한국에서의 격돌)라는 제목으로 1995년 8월 4일에 미국에서 방영되었습니다. 4월 28일에는 15만 명, 29일에는 19만 명으로 총 34만 명이 관람하여 세계 프로레슬링 이벤트 중 최다 관람객을 동원하였습니다. 물론 강제 동원의 측면이 고려되어 비공인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일본 프로레슬링의 전설 안토니오 이노키와 미국 프로레슬링의 전설 릭 플레어를 전면에 내세운 《Collision in Korea》(사진: 《Collision in Korea》 영상에서 포착)

 

이 특별한 행사를 기획하고 추진한 사람은 일본 프로레슬링의 전설인 안토니오 이노키입니다. 故 역도산(1924∼1963)의 수제자 중 한 명이자 故 김일(1929~2006)의 후배였던 그는 40대에 스포츠평화당을 창당하여 일본 참의원 의원이 됩니다. 1990년 걸프 전쟁 당시 일본인을 비롯한 여러 국가의 사람들이 이라크에 인질로 잡히자, 그는 국회의원 자격으로 이라크로 날아가 콘서트, 축구, 프로레슬링을 포함한 《스포츠와 평화의 제전》을 개최합니다. 국가의 지원을 받지 못한 이 행사는 그가 사비를 들여 치렀고, 이후 인질들은 모두 석방되었습니다.

 

안토니오 이노키는 여기서 힘을 얻어 스포츠로 세계 평화를 이루겠다는 자신의 신념을 북한에 펼쳐보기로 합니다. 역도산이 함경남도 출신이라는 이유를 들어 북한에 대회를 열 것을 요청했고, 북한이 이를 수락하여 《평화를 위한 평양 국제 체육 및 문화 축전》, 미국 방송용 제목으로는 개최 의도와는 어울리지 않는 《Collision in Korea》가 열렸습니다. 안토니오 이노키는 자신이 설립한 단체인 신일본프로레슬링(NJPW)(이하 'NJPW')의 선수들을 이끌고, 지금은 WWE에 인수되어 사라졌지만 당시에 NJPW와 제휴를 맺고 있던 미국의 프로레슬링 단체 WCW의 선수들과 함께 평양에 입성합니다.

 

평양에서 인터뷰를 받는 안토니오 이노키(사진: 《Collision in Korea》 영상에서 포착)

 

경기는 WCW 소속 선수들과 NJPW 선수들이 개인이나 팀을 이루어 진행하였고, 여성 선수들도 참가하였습니다. 2013년인 지금은 고인이 되거나 은퇴한 선수들이 대부분이지만, 경기를 간단하게 짚어보겠습니다.

 

와일드 페가수스(故 크리스 벤와, 왼쪽) 대 투 콜드 스콜피오(오른쪽). 뒤로 북한 관중들이 보인다(사진: 《Collision in Korea》 영상에서 포착).

 

첫 경기에서는 성조기 문양의 경기복을 입고 등장한 투 콜드 스콜피오를 캐나다 출신의 와일드 페가수스(故 크리스 벤와, 1967~2007)가 제압합니다. 다음으로 나가타 유지와 이시자와 도키미츠의 경기로 일본 선수끼리 맞붙었고, 그 다음 경기는 조노 마사히로와 사이토 히로가 팀을 맺고 엘 사무라이와 야스다 다다오를 상대로 태그팀 경기[각주:2]를 치렀습니다. 이어 여성 프로레슬러들이 태그팀 경기를 선보였습니다. '여제'라 칭송받는 불 나카노가 호쿠토 아키라와 팀을 맺고 도요타 마나미와 요시다 마리코의 팀을 꺾었습니다.

 

 

요시다 마리코(하얀 경기복)를 공격하는 불 나카노(파란 머리). 《Collision in Korea》 최고의 경기로 꼽히기도 했다(사진: 《Collision in Korea》 영상에서 포착).

 

다음부터는 미국 선수들과 일본 선수들이 맞붙었습니다. NJPW의 IWGP 헤비급 챔피언인 故 하시모토 신야(1965~2005)는 스캇 노튼을 상대로 20분 시간 제한 경기에서 무승부를 거둬 챔피언 벨트를 지켰습니다. 故 로드 워리어 호크(1957~2003)는 야스다 다다오를 상대로 3분도 안 되어 승리합니다. 이어서 벌어진 태그팀 경기에서는 스타이너 형제(릭과 스캇 스타이너)가 하세 히로시와 사사키 켄스케의 팀을 이깁니다.

 

북한의 중계석. WCW가 미국에 방영하기 위해 편집한 《Collision in Korea》 영상에서는 미국 중계진이 덧씌운 목소리 사이로 북한 중계진의 목소리가 들린다(사진: 《Collision in Korea》 영상에서 포착).

 

드디어 행사의 주최자인 일본 프로레슬링의 전설 안토니오 이노키가 직접 경기에 나섭니다. 상대는 미국 프로레슬링의 전설 '네이처 보이' 릭 플레어. 당시 중년의 나이인 두 전설들의 몸을 사리지 않는 격돌로 쇼는 마무리됩니다.

 

안토니오 이노키(왼쪽)와 릭 플레어(오른쪽). 뒤로 '평화'라는 한글이 보인다(다른 쪽에는 '자주'라고 쓰여 있다).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붙은 두 사람의 경기에는 가장 많은 기자들이 링 주위로 몰려들었다(사진: 《Collision in Korea》 영상에서 포착).

 

모든 경기 내내 북한 관중들은 큰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오페라를 관람하러 온 것처럼 대부분 정장 차림이었고, 한쪽에 무용단원들이 유니폼을 맞춰 입은 모습이 보였습니다. 선역이나 악역 선수에 대한 환호나 야유는 없었지만, 화려한 동작에는 짤막한 함성과 박수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대개 경기장을 메운 소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발생하는 군중 소리였습니다. 관중들이 프로레슬링이란 장르를 처음 접했고, 자발적으로 온 것이 아니라 북한 정부의 동원으로 참석했기 때문일 것이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로드 워리어 호크의 승리를 선언하는 심판. 양장을 입은 관중들 뒤로 카드 섹션과 군무에 참여한 것으로 보이는 인원들이 보인다(사진: 《Collision in Korea》 영상에서 포착).

 

얼어붙은 외교 관계를 녹이는 수단으로 스포츠가 활용되곤 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과 중국의 '핑퐁 외교'입니다. 1971년 중국에서 열린 미국과 중국의 탁구 시합을 시작으로 두 국가의 외교가 원활히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미국, 일본, 그리고 대한민국이 정부나 민간 차원에서 북한과의 스포츠나 문화 교류를 몇 차례 시도해왔지만, 눈에 띄는 진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평화를 위한 평양 국제 체육 및 문화 축전》 당시에도 프로레슬러들뿐 아니라, 1976년에 안토니오 이노키와 이색 경기를 펼친 복싱의 전설 무하마드 알리, 그리고 외국인 방문단이 왔었습니다. 외국인 방문단에는 이산 가족을 만나고픈 재외 한국인들이 많았지만, 결국 상봉 요청은 거절되었습니다.

《Collision in Korea》 영상 중간중간 등장하는 5월1일경기장에서의 카드 섹션과 군무. 그리고 이를 관람하는 방문단. 오른쪽 사진에서 맨 왼쪽이 릭 플레어(사진: 《Collision in Korea》 영상에서 포착).

안토니오 이노키의 스포츠로 세계 평화를 이뤄보겠다는 이상은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그는 작년 4월 김일성 탄생 100주년 행사에도 방북하여 김영일 노동당 국제부장과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등과 회동하였고, 올해 7월 27일(정전 협정 체결일)에는 북한의 전승절 60주년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방북했습니다. 그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를 대화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으나, 일본 정부는 그의 방북은 일본 정부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라며, 일본의 대북 정책에 어떠한 영향도 없고 오히려 그의 방북을 자제해달라고 했습니다. 안토니오 이노키의 이러한 노력이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더구나 그는 올해 일본의 극우 정당인 일본유신회의 비례대표로 18년 만에 일본 정계에 돌아왔습니다. 앞으로 그의 행보를 불안한 눈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속담에 '낙숫물이 댓돌을 뚫는다'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나라도 다방면으로, 그리고 정당한 방법으로 북한과의 만남을 시도하고 지속해간다면 어느 순간 통일이 성큼 다가와 있으리라는 기대를 살그머니 해봅니다.

 

<참고 자료> 

· 《Collision in Korea》 프로모 영상(http://youtu.be/yzkoC2RyYsc)

· 《Collision in Korea》 영상 part 1(http://youtu.be/-ZFJ6uZ22fs)

· 《Collision in Korea》 영상 part 2(http://youtu.be/43t1wUU_VHU)

· 《Collision in Korea》 리뷰 영상(http://youtu.be/eohZ1FVJkj0)

· [PURORESU] 28 / 불타는 투혼 : 안토니오 이노키, <김그의 PURORESU> 블로그 포스팅(http://blog.naver.com/kimthewho?Redirect=Log&logNo=30164696989)

· [뉴시스아이즈]'코트 위 악동' 로드맨 방북…북미관계 개선 도움?, <뉴시스아이즈> 기사(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003&aid=0005022043)

· 일본 프로레슬러 출신 이노키 북한 방문 , 왜?, <한경닷컴> 기사(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307260039g)

· 이노키 방북…日 "정부대표 아니다", <뉴스1> 기사(http://news1.kr/articles/1254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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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원래는 속임수라는 뜻. 여기서는 프로레슬러가 연기하는 캐릭터를 뜻한다. 예) 디 언더테이커(The Undertaker)의 장의사 기믹, 폭주족 기믹 등. [본문으로]
  2. 프로레슬링에서 두 명 이상이 한 조를 이루어 치르는 경기. 코너에 있는 같은 편 선수와의 신체 접촉(태그)으로 교대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