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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기자단/우리는대학생기자단

단테가 푸슈킨을 만났을 때 : 황일근 기자 인터뷰

'만남'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감과 가슴 떨리는 설렘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그 두근거림은 우리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상생기자단 5기 황일근 단장과의 만남은 그의 편안한 인상만큼이나 소박하고 담백했습니다. 그를 인터뷰하는 동안 우리는 시공간을 초월한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13세기에 단테가 벨키오 다리에서 베아트리체를 만나고, 19세기에 푸슈킨이 모스크바에서 나탈리아를 만났던 것처럼 우리의 만남에는 새롭고 섬광처럼 빛나는 영감이 있었습니다.


만남은 사랑과 진화의 시작

(좌 -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만났을 때, Henry Holiday, 1883, 우 - 책 '사랑에 빠진 단테', A. N. 윌슨)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만남으로써 영감을 얻었고 살아있음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슴 뛰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체득하여 훌륭한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벨키오다리에서 비롯된 한순간의 만남, 순수한 사랑의 스파크가 르네상스의 꽃을 피운 것은 아닐까요? '만남'으로 맺어지는 관계가 만들어내는 역사는 이렇듯 경이롭고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상생기자단 5기에서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황일근 기자의 손에 들려진 '사랑에 빠진 단테'라는 책의 겉표지를 응시하며 우리의 이야기는 계속되었습니다.


상준 :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만나고 나서 위대한 작품을 많이 남겼습니다. 찰나의 순간은 이렇게 위대한 역사의 시작이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황단장님의 기사를 살펴보면 일상의 소소한 요소에서부터 다양한 사물, 음식, 문학에 이르기까지 소재의 폭이 참 넓은 것 같은데, 단장님은 어떤 계기를 통해 영감을 얻나요?

일근 : 상준 기자님은 ‘만남’이라는 가치를 높게 평가하시는 것 같네요. 저도 그런 점에서 만남을 중요시합니다. 하지만 저는 만남에는 다른 사람과의 만남뿐만 아닌 ‘자기 자신과의 만남’도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르네상스 시대를 좋아하는데요. 그 중 다빈치가 한 말이 인상 깊네요. 다빈치는 고독할 때 영혼이 가장 맑고 깨끗해지며, 혼자일 때 자연을 정확히 감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혼자일 때 비로소 인간은 완전한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된다. 만약 누군가 곁에 있다면 반쪽의 자신만을 만날 뿐이다.”라고 했거든요.

혼자 생각을 하면 자신과의 대화가 많아지는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때때로 저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데요. 기사의 영감이라고 하기에는 뭐 하지만, 혼자 있으면서 특히 이것저것 기사의 소재를 많이 생각해 보는 편입니다. (웃음) 저는 운동하는 것을 좋아해요. 혼자 운동을 하며 일상적인 소재나 사회 현상을 가만히 생각해 보고, 어떻게 하면 좀더 ‘통일 미래의 꿈’을 찾아주시는 분들께 참신한 기사를 전해드릴까 고민하는 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차근차근 우리 주위의 것들을 돌아보는 것이 기사작성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평소 운동을 즐겨 하는 황일근 기자)


상준 : 황단장님은 단테를 굉장히 좋아하시는 것 같네요. 지금 단장님 손에 들려있는 책 표지처럼 단테의 작품에서는 '사랑'을 빼놓을 수 없을 텐데요. 그 순수한 사랑이 인류의 문화적 가치관을 바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단장님이 보시기에 당시의 사랑과 지금 우리가 하는 사랑에는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일근 글쎄요. 현재의 '사랑'보다, 장차 통일한국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우리들의 '감성'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 싶어요. 어느 한 강의시간에 교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우리는 어쩌면 10대, 20대 시절 듣고 느낀 여러 문화 콘텐츠들의 영향이 평생의 감성을 좌우할 수 있다고요. 그런 면에서 감성의 중요한 발달시기인 사춘기 시절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때 들었던 음악, 읽은 책, 본 영화가 어쩌면 개인의 감성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말에 저도 크게 공감하고 있습니다.

음악으로 예를 들자면, 저는 중 · 고등학교 때 ‘가요 톱 10’이란 음악 프로그램을 즐겨 봤어요. 그 시절 주로 유행하던 음악은 신승훈, 달팽이, 전람회 등과 같은 가수로 대표되는, 조금은 느리지만 ‘따뜻한 감성’을 느끼기엔 충분했던 노래가 많았어요. 그런데 요즘은, 물론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일반화시키기는 어렵겠지만, 최근 대중가요의 아이콘이 아이돌이라는 걸 많은 분들이 인정하실 거예요. 그런 아이돌의 음악은 느리거나 따뜻하기 보다는, 제가 느끼기엔 가사나 멜로디가 빠르고 ‘쿨한 감성’을 대변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빠르게 달아오르고 빠르게 식는 ‘쿨한 감성’이 강조되는 요즘에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신기하고 대단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합니다. 앞으로 통일 미래를 이끌어 나갈 우리에게는 빠르고 쿨한 만남과 이별보다, 느리더라도 다른 이들을 깊이 포용할 수 있는 ‘따스한 통일감성’이 필요할 테니까요.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바라볼 때 그랬던 것처럼요. 

황일근 단장이 들려주는 단테의 사랑이야기와 순수하고 열정적인 '통일감성'에 대해 귀 기울이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흘러갔습니다. 통일을 준비하고 맞이하는 데 우리에게도 분명 필요한 마음가짐이 있지 않을까요? 오래전 시인과 철학자들이 순수한 사랑을 노래했던 것이 지금의 문화적 토대를 형성한 것처럼 말이죠. 

13세기에 단테의 만남과 사랑을 통해서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면, 러시아의 국민적 영웅이자 세계적 작가인 푸슈킨은 19세기에 나탈리아를 만나 수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최초로 러시아어를 본격적으로 사용한 문학을 선보이며 이후 러시아 문학의 부흥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과연 이들의 만남과 사랑이 없었다면 위대한 문학작품들이 창작될 수 있었을까요? 그런데 푸슈킨의 사랑에는 순수한 열정과 아름다운 스토리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났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사랑과 포용을 노래했기에 그의 작품이 오래도록 사랑받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러시아 국민 시인 푸슈킨의 사랑 이야기

알렉산데르 세르게예비치 푸슈킨(1799~1837)은 모스크바에서 아름다운 미모의 소유자인 나탈리아 곤차로바를 만나 사랑에 빠져 구혼했으나 거절당했다. 계속되는 사랑의 감정으로 나탈리아에게 한 번 더 구혼한 끝에 결혼을 하게 되었고, 그의 창작활동은 계속된다. 달콤한 신혼살림은 모스크바에 꾸려졌으나 그들의 행복한 결혼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상류층 사교계의 꽃으로 불릴 만큼 미모가 뛰어났던 나탈리아는 러시아 기병대에 근무하던 프랑스 장교 조르주 단테스와의 염문설에 휩싸이게 된다. 사랑과 명예를 중시했던 푸슈킨은 단테스에게 결투를 신청하게 되고, 그에게 심각한 총상을 입은 지 이틀 만에 생을 마감하게 된다. 장교 출신인 단테스와의 결투 결과는 쉽게 예견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의 나이 38살이었다. 

(상 - 푸슈킨과 나탈리아의 초상화, 하 - 푸슈킨 부부가 신혼생활을 했던 아르바트 거리에 세워진 동상, 모스크바 푸슈킨 기념관)

그들의 비극적인 사랑이 아쉬운지 기념관을 찾는 방문객들은 푸슈킨과 나탈리아의 손을 한 번씩 쓰다듬고 간다. 푸슈킨과 나탈리아가 맞잡은 두 손이 그들의 사랑을 기억해주는 방문객들에 의해 만질만질해져 있다.


만남은 한순간일지 모르지만 만남을 통한 변화는 영원한 것 같습니다. 앞서 소개한 단테와 푸슈킨의 사랑이 그랬던 것처럼, 통일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철책을 넘고 모두가 손을 맞잡을 수 있는 강력한 변화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기보다 강력하고 정치보다 영향력 있는 것이 바로 대중의 관심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지금의 상황을 보면 이와 같은 순수한 사랑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것 같습니다. 아마도 무엇 하나 진솔하게 관심을 갖고 대화를 나누기에는 고려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아진 탓이 아닐까요? 어쩌면 이것이 현재 우리가 당면한 고착화된 문제의 원인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상준 : 그동안 황단장님의 기사들은 이러한 의미에서 딱딱할 수 있는 통일이나 남북관계와 관련한 이슈들을 다양한 접근을 통해 흥미롭게 연결시킨 것 같습니다. 이제 상생기자단 5기의 활동을 마무리할 텐데요. 기자단 활동의 소회와 앞으로 상생기자단 6기로 활동할 기자 분들에게 하실 말씀이 있다면 해주세요.

일근 : 처음 상생기자단 활동을 시작하면서, 저는 제가 쓴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적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글을 잘 쓰시는 한 교수님께 여쭤 봤습니다. “교수님, 글을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나요?” 이런 저의 어리석은 질문에 교수님께서는 현명한 대답을 해주셨습니다. “어떤 글을 쓸지 고민하는 것보다, 네가 ‘어떤 사람’이 먼저 돼야 하는지를 생각해봐라.” 그 말은 제게 글은 머리로 쓰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쓰라는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그 뒤로 통일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지닌 상생기자단 분들과 다양한 활동을 포함한 ‘만남’을 가졌습니다. 큰 뜻을 가지고 한반도의 미래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는 친구들을 보며, ‘아, 나는 정말 멀었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과 함께 활동하다보니 어느새 1년이라는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고, 곧 6기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상생기자단 활동은 제 부족함을 일깨우고 채찍질 해주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아요.

상생기자단 6기로 활동하게 될 분들은 정말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부럽기도 합니다. 앞으로 1년의 기간 동안 단순히 머리로 생각하는 통일보다, 다양한 ‘만남’을 통해 통일 미래를 함께 할 친구들과 가슴으로 쓰는 통일 이야기를 고민해 보는 건 어떨까요?

(공군 하사로 복무했던 황일근 기자, 그가 가슴으로 그리는 새로운 꿈이 기대된다.)

황일근 기자와의 인터뷰 내내 역사, 문학, 영화, 음악, 음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통일'의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가슴으로 기사를 쓰기 위해 노력한다는 황일근 기자의 말처럼 통일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도 이와 같아야 하지 않을까요? 

균형을 잡는다는 것은 참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균형점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통일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북핵인지 아니면 싫증과 무관심으로 남북관계에 대해 점차 냉담해지는 우리의 자세인지, 단테와 푸슈킨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사랑의 무한한 힘은 찰나의 만남에서 비롯될 수 있는 것처럼, 변화 역시 한순간의 관심에서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주변의 여러 현상들을 다양한 관점에서, 그러나 본질을 꿰뚫는 눈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요? 

푸슈킨의 시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보편성'을 지녔다는 평을 받습니다. 어쩌면 그의 시가 시공간을 초월하여 사랑받고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힘은 그의 순수한 사랑과 함께 다양한 관점을 포용하려는 글쓰기 능력 때문이 아닐까요? 그것은 푸슈킨이 가슴 뜨거운 사랑과 비극적인 사랑의 아픔을 동시에 경험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현재 한반도의 상황을 생각하며 읽어보는 그의 시는 여전히 큰 감동으로, 의미하는 바가 큰 것 같습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푸슈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나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하거나 서러워하지 말라

절망의 나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반드시 찾아오리라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법

모든 것은 한 순간에 사라지지만 가버린 것은 마음에 소중하리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며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설움의 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은 오고야 말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