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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기자단/우리는대학생기자단

통일부 상생기자단 5기 활동을 돌아보며

다가오는 봄을 시샘하던 꽃샘추위도 지나가고 이제 어엿한 봄이 온 듯 합니다. 하지만 날씨는 분명 봄인데 아직도 한반도에는 진정한 '봄'이 오지 않은 것 같아 가슴이 너무 아픈 요즘입니다. 이 추운 겨울이 어서 지나가고, 한반도에 따뜻한 봄이 오기를 기원합니다.

자, 딱딱한 이야기는 잠시 멈추고 본론으로 들어가볼까요? 드디어 상생기자단 6기 기자를 모집한다고 해요. 상생기자단에 지원하기 위해 지원서를 쓰며 쩔쩔 매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임기를 마치고 다음 기수를 모집한다고 하니 감회가 매우 새롭네요. 그래서 저의 기억도 더듬고, <통일 미래의 꿈>을 찾는 대학생 여러분께 6기에 지원하라고 홍보할 겸, 지난 상생기자단 5기 활동에 대해 회고해보려 합니다.

상생기자단을 알게 되다

저는 대학 입학 직후였던 1학년 1학기 때, 재학 중인 수원대학교에 개설된 <북한사회의 이해>라는 교양과목을 들으면서,북한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요, 본격적으로 통일 문제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활동해야겠다고 결심했던 계기는 바로 독일 연수를 다녀와서였습니다. 통일부에서는 2011년 12월 12일부터 18일까지 베를린, 라이프치히, 드레스덴 등 독일 각지의 통일 현장을 답사하는 '독일 통일 교육 연수'를 주최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 당시 저는 우리보다 먼저 통일을 맞이한 독일에 다녀와서 많은 것을 느낀 바 있습니다. 그리고 '가까운 시일 내에 한반도에도 도둑처럼 통일이 찾아올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때마침 연수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더 그런 확신을 굳히게 되었죠. 그때부터 '분단 시대를 살고 있는 청년으로서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화두를 가지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차에 함께 독일로 통일교육 연수를 다녀왔던 4기 상생기자단 고병선 기자의 추천으로 상생기자단 5기 모집 공고를 보고 시험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지원서를 작성해서 제출했답니다. 1차 서류심사 통과, 2차 면접심사 통과... 최종 합격!

합격의 기쁨은 정말 컸습니다. 난생 처음 해보는 기자단 활동이었기에 설레는 마음도 있었지만, 내가 그토록 바라던 우리나라의 통일을 위해 내가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답니다. 그렇게 저는 상생기자단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지난 1년 동안 정말 열심히 활동했던 것 같습니다.

상생기자로서의 지난 1년을 돌아보다

임기가 시작된 2012년 5월부터 지금까지 지난 1년 간, 통일부 상생기자로서 50여 편 가까이 되는 기사를 썼는데, 특히 저는 전공인 역사학을 살려 '남북한 역사문화콘텐츠'를 소재로 한 기사들을 많이 썼답니다. 이를테면 '북한에서도 이순신 장군이 영웅일까?' (http://blog.unikorea.go.kr/2230), '<평양 날파람>과 무예도보통지' (http://blog.unikorea.go.kr/2680) 등 남과 북이 공유할 수 있는 역사문화콘텐츠를 통해 먼저 문화적으로 통일을 이루자는 취지의 기사들을 썼답니다.

지금까지 쓴 기사들 모두 제 나름대로의 신념과 사상을 담아 쓴 글들이기에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말씀드릴 수 있는데요, 그러나 그중에서도 유난히 애착이 가는 기사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제겐 '백범 김구의 통일 이야기' (http://blog.unikorea.go.kr/3111) 시리즈가 가장 애착이 가는 기사입니다.

'백범 김구의 통일 이야기'는 백범 김구 선생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김구 선생의 통일운동과 자주평화통일사상에 대해 3부작으로 나누어 쓴 기사인데요, 기사를 쓰면서 정말 괴로울 때가 많았답니다. 김구 선생의 입장에서 쓰는 기사였기 때문에 혹여라도 "김구 선생의 뜻에 어긋나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단어 하나 하나 신중을 기해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고생(?) 끝에 탄생한 기사였기에 기사가 발행되었을 때의 제 기쁨은 무척 컸습니다. 그리고 하늘도 제 정성을 알았는지, 이 기사 덕분에 저는 우수기자로 선정되는 영광을 얻기도 했습니다. 

(출처: 뉴시스)

이외에도 기사 취재를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정말 소중한 경험들을 많이 겪었던 것 같습니다. 얼마 전 퇴임했던 류우익 당시 통일부 장관과 함께 경북 문경의 '통일항아리제작 현장에 방문하여 통일항아리가 탄생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지켜본 바 있고,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서는 탤런트 송일국, 가수 김장훈과 함께 독도에 방문하여 그들에게 통일항아리를 홍보하고, 통일한국의 국력으로 독도를 수호할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를 간절히 염원해보기도 하였습니다.

이외에도 통일부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통일방송'에 출연하여 제가 쓴 기사들을 직접 소개했던 것은 앞으로도 잊을 수 없는 짜릿한 추억으로 자리매김할 것 같습니다.

상생기자단 활동을 하며 만난 인연들 역시 제겐 소중했습니다. 지난 1년 간 함께 활동했던 5기 동료기자들은 '통일'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모였기에, 당연히 저와 관심사가 일맥상통할 수밖에 없었고, 관심사가 같은 그들과 함께 한 시간은 매우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통일부의 배려로 분기마다 열린 워크숍을 통해 상생기자단은 서로의 우정을 돈독히 할 수 있었고, 진지하게 한반도 통일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보기도 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불타올랐던 상생기자단 5기의 열정과 추진력을 보여준 <통일 미래 꿈들의 희망, 연평도 힐링캠프> 역시 빼놓을 수 없는데요, 연평도 힐링캠프는 지난 2012년 1123,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2주기를 맞아 상생기자들이 개최했던 봉사활동입니다. 상생기자단이 직접 연평도로 건너가 마을 담벼락에 평화를 상징하는 벽화를 그리고, 포격으로 상처 입은 어린 아이들을 보듬어주고 오는 의미 있는 행사였는데, 이 행사를 통해 상생기자단은 더욱 단합할 수 있었고, 평생 잊을 수 없는 값진 추억을 만들어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연평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조선시대 군사무예인 '무예24기' 공연을 선보이는 의미 있는 경험을 하기도 했답니다 ^^;)

이외에도 동료 상생기자들을 만날 생각에 늘 설레였던 매월 초 정기회의 시간. 오랜만에 만나는 상생기자들과 서로 쓴 기사들에 대해 리뷰하고, 회의가 끝난 뒤에는 서로의 근황을 주고 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뒤풀이 등등... 제겐 더 없이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는데요, 임기가 끝나고 나면 이제 매월 초 그 시간이 그립고 허전하기만 할 것 같습니다.

상생기자단 6기에 도전하라!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대학생 분들께 '통일부 상생기자단 6기'에 지원하라고 강력하게 권하고 싶습니다. 북한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세습독재정권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실상을 깨달은 주민들은 계속해서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하고 있고, 개혁과 개방이 없는 북한의 경제 시스템은 붕괴 직전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제 한반도의 통일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통일 한반도에서 살아갈 통일세대입니다. 어차피 피하지 못할 숙명이라면 무섭다고 회피할 것이 아니라 보다 더 완벽하고 행복한 통일을 맞이하기 위하여 통일세대인 우리가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결국 통일 후의 한반도는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이 살아갈 터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현재 우리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활동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이 바로 통일부 상생기자단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을 상생기자단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저는 주어진 임기를 모두 마치고, 6기 상생기자들에게 바통을 넘기겠지만 이게 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통일부 명예상생기자단'으로서의 임기를 시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앞으로도 한반도 평화통일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지속적으로 평화통일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도 <통일 미래의 꿈>을 절대 떠나지 않고, 언제까지나 좋은 글로 여러분을 찾아뵙겠노라 약속드립니다.

이상으로 '영원한' 상생기자단 5기 김경준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