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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현장과 사람

빅토리아와 줄리에따의 김일성종합대학 교환학생기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하고,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북한 해변을 거닐었던 여름휴가. 남한에 있는 우리들에게는 저런 것들이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인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한없이 낯선 공간, 쉬이 방문할 수 없는 북녘 땅을 여기 외국인 학생들은 비교적 쉽게 여행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대한민국 서울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하고 평양에서도 공부했던 러시아인 빅토리아(비카)와 줄리에따(줄리)가 그 주인공입니다. 


  서울과 평양에서의 교환학생

비카와 줄리는 모스크바에 있는 러시아 국립인문대학교에서 공부하며 2008년부터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합니다. 2010년에는 서울의 국민대학교에서 교환학생으로 한국어를 공부했고, 2011년에는 평양의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이들 중 줄리는 2012년 2학기에 다시 한 번 서울로 교환학생을 왔는데요. 남한과 북한을 비교적 자유롭게 오가며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이들이 북한으로 유학을 결심한 이유는 한반도에서 한국어를 쓰는 '또 다른 국가'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고 하는데요. 러시아인에게 듣는 남북한 생활스토리, 궁금하시죠?

(서울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하면서 한국의 전통문화를 체험했다.)


서울에서의 생활은 여러 행사에 초대되어 다양한 한국 문화를 접할 수 있었고, 기숙사에는 여러 나라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러 온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에 늘 신나는 일이 끊이질 않았다고 합니다. 그에 비해 평양의 기숙사에서는 러시아인만 따로 방을 사용했고 수업도 따로 들었다고 합니다. 먼저 비카에게 한국의 매력에 대해 묻자, 도심 속에 자리잡은 고궁과 편리한 교통수단(특히 환승 시스템)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평양에서의 교환학생은 또 어떤 점이 매력적이었을까요?


  스탈린 시기의 소련을 연상케 하는 평양, 자본주의 미국을 연상케 하는 서울

(좌 - 비카가 촬영한 북한의 선전 게시판, 우 - '어머니 조국이 부른다!' - 2차대전 당시 소련군 징집 포스터)


가장 먼저 그들의 눈을 끌었던 것은 바로 '선전용 게시판'이라고 합니다. 비카와 줄리, 모두 소련 해체 후에 태어난 러시아인(소련 해체 이전에 태어난 러시아인의 여권에는 출생지가 소련(СССР)으로 기재되어 있다)이기에, 그들에게 역시 북한의 선전 포스터는 호기심의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수업 시간이나 여러 매체를 통해서만 접했던 소련 시절 선전 포스터와 북한의 그것이 매우 유사했기 때문에 더 흥미로웠다고 하는데요. 도시의 전체적인 느낌은 소련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한 모습이라고 합니다.

(좌 - 서울에서 줄리, 우 - 평양에서 비카)


미국의 생활수준과 비슷한 서울 시민들의 삶과 모습은 매우 역동적이고 자유로워 보이는 반면 평양 시민들의 모습은 이보다 더 질서정연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일반 시민들의 일상 역시 바쁘고 활발해보였다고 하는데요, 전체적으로 외국인을 대하는 평양 시민들의 자세는 무척 친절하고 호의적이어서 처음에 상상했던 북한의 어두운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이미지였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남한에서와 비슷하게 러시아인인 이들에게는 북한에서의 생활 역시 비교적 자유로웠다는 점입니다. 자유롭게 사진 촬영을 하고 어느 정도의 여행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북한 음식에 대해서는 북에서 소단고기국이라고 불리는 육개장을 파는 음식점을 방문해 먹었던 요리가 기억에 남는다고 합니다. 


  김일성종합대학에서의 교환학생 생활

김일성종합대학에서의 공부와 생활에 대해서는 무척 만족스러워 했는데요. 러시아인들로만 이루어진 한국어수업에는 학생이 3명밖에 되지 않았고, 체계적이고 집중적인 수업 과정 덕에 한국어를 보다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습니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서울에서 교환학생을 할 당시보다 훨씬 더 한국어 실력이 향상된 것 같아 저도 깜짝 놀랐을 정도였답니다. 

(김일성종합대학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비카)


평양에서의 기숙사 생활 역시 시설과 대우가 좋아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러시아인으로서 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온 이들에게 특별대우를 해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또한 학교에는 러시아어를 구사할 줄 아는 학생들도 더러 있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소련 시기의 영향으로 러시아어를 중요하게 생각하여 배운 학생들이 많은 이유인 것 같습니다. 

이들은 먼저 북한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온 선배에게 정보를 얻어 큰 어려움 없이 평양을 방문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러시아 학생들은 비교적 자유로운 여행과 촬영이 가능했다.)


서울과 평양에서의 생활을 모두 경험한 이들에게는 한반도 평화와 남북통일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있어보였는데요. 공통적으로 남과 북의 분위기가 외국인들에게 친절하고 호의적이며 유머가 넘쳐서 '코리아'를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모두 한국어를 사용하는 하나의 민족으로서 하루 빨리 평화적인 통일이 이루어지길 바란다며 '두 코리아'에서의 생활에 대한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남과 북의 갈등을 해결하고 북방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러시아가 남한은 물론 북한과도 잘 협력하여 한반도 평화통일에 기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과 한반도의 미래에서 본인들의 경험을 토대로 다시 한 번 '하나의 코리아'를 방문하여 일할 수 있는 기회가 꼭 오기를 바란다며 인터뷰를 마무리 했습니다. 

남과 북을 모두 경험한 비카와 줄리와 같은 외국인들이 어쩌면 실타래처럼 꼬인 남북관계의 긴장을 풀어줄 수 있는 작은 사례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들 외국인 친구들은 남한도 북한도 모두 하나의 코리아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전통문화가 비슷하기 때문이죠. 그들에게는 경제적 차이나 생활수준의 차이 외에는 남과 북의 다름이 느껴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북한을 다른 나라로 인식하여 막연한 두려움과 낯선 감정으로 적대시하는 건 아닐까요? 계속되는 북한의 위협과 상이한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싫증과 괴리감으로 '다른 하나의 코리아'에 대해 점차 무관심해지는 건 아닌지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