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정권은 다른 사회주의체제와 마찬가지로 국가건설 초기, 구제도와 봉건적 가치의 척결을 통해 새로운 사회주의 국가의 건설을 기치로 내걸었습니다. 여기서 사회주의 혁명이란 그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문화, 제도를 필요로 하는 것인데요. 이는 과거 전통적 사유방식 및 가치관과의 단절과 극복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으며 북한당국은 국가건설초기 봉건적 잔재 철폐를 그 출발점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그러했듯이 공식 담론과는 달리 권력의 정당화과정에서는 어느 정도 전통을 잔존시켰으며 전통이 갖는 내적 통합력을 이용해왔습니다.
특히 북한의 경우 주체사상이 통치이념으로 등장하면서 민족적 가치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구성하는 주요 명제로 등장했는데요. 이러한 과정에서 전통적 요소들이 북한 사회에 침투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과정들은 북한 사회에서 내재해있던 전통문화의 존재에 근거한 것이기는 했지만 민족적 가치와 민족전통들이 북한사회에 만연되는 현상들은 다분히 북한당국의 정치적 목적에 기인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오늘은 이러한 배경들을 바탕삼아 북한이 전통문화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전통사회의 법제
북한사회에서는 민족문화를 높이 평가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전통문화를 유물론적인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전통사회의 법과 제도를 “봉건통치배들의 통치를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고 있는 유물론적 인식론에 기인한 것이기도 합니다.
계급적 관점에서 역사와 문화를 해석하고 있는 북한의 전통문화인식은 착취사회에서는 착취계급과 피착취계급,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간의 계급적 대립과 투쟁이 사회관계의 기본을 이룬다고 보고 있었으며, 각 시대별 사회제도와 법제 등도 착취계급의 지배의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범금 8조>
범금 8조는 고조선에서 노예소유자적 소유형태가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범금 8조의 남에게 상처를 입힌 자는 곡물로써 보상하여야 한다는 조항은 부자놈들이 저들에게 항거한 빈민들에게서 곡물을 빼앗아내는 것을 합리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조항의 적용은 빈민들을 채무노예로 전락시키는 방법의 하나로도 되었다. (중략) 고대 반동적인 노예소유자들은 인민들의 반항을 억누르고 노예사회의 통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반동적인 법률들을 만들어 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고조선의 범금 8조이다.
-북한 책『조선통사(상)』의 일부
2. 전통사회의 사상 및 종교
북한사회에서 전통사상과 종교는 유물론에 입각하여 부정적으로 평가되고 있었습니다. 북한은 전통사상을 “인민들의 계급의식과 반항정신을 말살하기 위한” 도구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인식에 근거하여 고대국가의 사상과 도덕은 노예제도를 합리화하기 위하여, 봉건제 사회의 사상과 도덕은 봉건적 지배의 착취와 억압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만들어 진 것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또한 종교는 그 본질이 “하나의 미신으로서 지배계급들이 인민들을 억압 착취하기 위한 사상적 도구”라고 인식하고 있었는데요. 이러한 인식에 근거하여 북한의 전통문화에 대한 해석은 남한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불교>
불교는 사람들에게 현실세계는 모두 고통으로 차 있다고 하면서 여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현실세계를 버리고 오직 부처를 믿어 정신수양을 하여 이른바 극락세계에 도달하라고 설교하였다. 불교는 미신적이며 허위적인 교리로서 인민들의 계급의식과 투쟁의식을 마비시키고 봉건지배계급의 이익을 옹호하는데 복무하였다.
<유교>
유교는 초자연적인 하늘 신을 우주의 최고 지배자로 숭배하는 종교적 사상에 기초하여 지배계급의 특권을 절대화한 정치적 견해와 삼강오륜의 반동적 윤리관으로 구성된 반동적인 사상체계이다. (중략) 특히 유교의 종교적 관념론적 세계관은 조선에서의 유물론적인 철학사상의 발전을 방해하였으며 과학문화 발전에 막대한 해독을 끼치었다.
-북한 책『조선통사(상)』의 일부
3. 문화유산
전통문화유산을 보는 북한의 입장은 민족문화유산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통문화유산의 경우도 역시 계급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었는데요. 즉, 민족문화를 생산해 낸 인민의 관점에서 그 가치를 평가한 것입니다.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에 따르면 민족문화란 “한 민족의 역사와 전통, 인민의 풍습과 생활감정을 반영한 진보적이며 인민적인 물질문화와 정신문화”로 정의하고 있었는데요. 따라서 인민대중을 문화생산의 주체로 파악하고 그에 따라 민족문화의 의미를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인식에 따라 불교문화유적을 기본적으로는 지배계급의 문화라고 비판하면서도 인민들의 창작물로서 그 예술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는데요. 또한 훈민정음의 창제의 주체를 인민과 집현전학자들로 인식하고 있다는데서 세종대왕의 치적으로 평가하는 남한의 문화사 해석과는 다소 다른 차이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불교문화유적>
지배계급이 불교문화를 퍼뜨린 것은 예술에 대한 인간의 애착을 이용하여 불교의 교리를 침투시켜 사람들을 기만하려는데 있었다. (중략) 인민출신의 예술가들은 통치계급의 강요에 의하여 종교예술품을 만들었지만 자기들의 지향을 일정하게 그 창작품들에 반영시키게 되었다. 같은 종교예술이면서도 조선의 것이 다른 나라의 것과 구별되는 뚜렷한 예술적 특색을 가지게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훈민정음 창제>
이미 삼국시기부터 리두문자를 사용하여 오던 우리 인민은 1444년에 가장 발전된 문자인 훈민정음을 창제함으로써 문화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중략) 훈민정음을 만든 학자들은 글자는 반드시 그 말의 특성에 맞아야하고 말의 음운체계를 옳게 반영하여야 한다는 과학적인 이론을 내놓고 그것을 글자창제에 구현하였다.
-북한 책『조선통사(상)』의 일부
위 글을 통해 우리는 북한이 민족문화를 고유한 민족전통으로 높이 평가하고 있으나 그 해석상에서 볼 때는 다분히 계급론적이며, 북한체제의 정치담론에 부합되게 변형시켜갔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북한의 전통사회 법제, 전통사회의 사상 및 종교, 문화유산을 통해 북한이 전통문화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그 결과 남한과 북한의 인식이 무척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요. 어쩌면 북한주민들의 민족사 인식에 있어서 불균형성이 나타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 이러한 현상들이 남한에 정착한 북한이탈주민들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고 하는데요. 이들을 통해 북한주민들의 민족적인 가치에 대한 과도한 가치부여와는 달리, 실제 민족전통 및 민족사에 대한 지식은 상당히 불균형 되고 취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민족사와 전통문화에 대한 북한사회의 인식은 유물론과 주체사상에 의한 재해석 과정을 거치면서 소위 ‘사회주의적 민족문화’로 구조화 되었는데요. 60여 년의 분단의 역사가 남과 북에 정치제도, 사상, 가치관의 변화뿐만이 아니라 전통과 민족문화에 대한 인식에 적지 않은 간극을 초래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동일한 역사를 다르게 해석하고, 공유한 문화를 달리 인식한다는 사실은 남북한 간의 사회문화적 이질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임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앞으로 남북한 문화의 차이를 ‘다양성’의 관점에서 수용될 수 있는 측면과 정치적인 목적으로 인해 왜곡된 측면을 엄격히 판별하여야만 올바른 통일한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세워 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도 통일된 미래 한반도 모습을 기대해봅니다!
<정보>
-북한 문화의 이해(2004): 임채욱, 자료원
-북한사회의 전통문화 인식(2006): 전미영, 부산대학교 중앙도서관 학술지
<사진>
-http://www.dailynk.com/korean/read_photo.php?cataId=nk03100&num=96733&page=6
-http://www.dailynk.com/korean/read_photo.php?cataId=nk03100&num=96716&page=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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