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는 주체농법(主體農法)으로 불리는 특이한 농사법이 있습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체사상(主體思想)을 기저에 두고 우리는 우리에게 맞는 ‘우리식’ 농법으로 자급자족하자는 것인데, 북한에서는 이 주체농법을 두고 김일성이 고안해 낸 최고의 농법이라며 자화자찬하는 모습을 신문 논평이나 매체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요, 사실 ‘주체-’가 접두사로서 쓰이는 말은 주체의학, 주체공업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주체가 붙은 말들의 공통점은 그것이 모두 김일성이 전문가 행세를 해서 나온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회주의 국가는 대외 무역에 관심이 없거나, 하더라도 극히 제한적으로 실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북한으로서도 해방 이후 광공업 산업에 비해 뒤쳐져 있는 농업을 발전시켜 식량 자급을 이루는 것이 국가적인 목표였습니다. 더욱이 김해평야와 호남 지역의 넓은 평야가 있는 남쪽과 달리 북부지방은 전통적으로 식량이 부족한 지역이었는데, 한국전쟁 이후 소련과 중국으로부터의 원조가 점점 줄어들면서 북한은 식량 문제 해결을 위한 획기적인 돌파구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김일성, 김정일 부자가 직접 나서서 자신들이 고안했다는 주체농법을 대대적으로 전파하고 장려하게 된 중요한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 세상에 둘도 없는 천고의 비법인 것처럼 선전하고 있는 주체 농법이란 것의 실상은 사실 별로 특별하거나 복잡하지 않습니다. 쉽게 말해 식량이 부족하면 산림이나 불모지를 농지로 바꿔 생산량을 늘리면 된다는 단순한 이론이 주체농법의 간결한 설명이지요. 그래도 말로 들으면 그럴듯한 이 주체농법이 어떻게 북한에 오늘날과 같은 기근을 초래하는 주요 원인이 된 것일까요? 지금부터 그것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무리한 경작 방법
아시다시피 북한 지역은 평야보다 산이 압도적으로 많은 지역입니다. 때문에 필연적으로 경작지를 넓히자는 주체 농법의 가르침에 따르자면 위의 사진과 같이 산에서도 농사를 지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북한은 한 가지 실수를 하고 맙니다.
산을 농사짓기 좋은 환경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나무를 베어야 하고 토질 개량과 같은 여러 가지 작업을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비가 왔을 때 흙이 쓸려가 산사태가 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산에서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 거의 대부분 위의 왼쪽 그림과 같이 계단식으로 짓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김일성은 논을 계단식으로 하지 말고 위의 오른쪽과 같이 그냥 경사면에 작물을 심으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이 경우에는 분명 계단식 농법보다 더 많은 작물을 심을 수 있기는 했지만 우기 때 안전을 장담할 수 없고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훨씬 더 커지게 됩니다.
게다가 비가 온 뒤 산사태가 일어나 가파른 비탈을 따라 아래로 쓸려간 막대한 양의 토사는 아래 평야 지역에서 멀쩡하게 잘 짓고 있던 농사마저 망쳐버리게 되어 북한의 기근 발생에 큰 중요한 요인이 되었습니다.
모종의 저주
북한에는 관개 수로 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습니다. 경제 상황이 괜찮았던 70년대에는 양수기나 양호한 관수 체계를 갖추고 있었지만, 경제난을 겪으면서 도난, 파손 등으로 제 기능을 잃어버린 상태입니다. 이렇게 물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모내기처럼 모종을 심는 것보다는 씨를 직접 뿌리는 직파법이 유리하지만, 김일성의 주체 농법에 따르면 옥수수를 비롯한 모든 밭농사를 모종으로 심을 것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김일성이 한창 주체사상을 전국에 전파하고 있던 7~80년대까지는 양호한 관개 수로 시설에 힘입어 모종으로 심는 것도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었으리라 생각되지만, 지금의 북한 상황을 보면 식량난을 조금이나마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모종을 포기하고 직파법을 택하는 것이지만 북한의 농민들은 아직까지도 우직하게 주체농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수령의 그림자
물론 이것은 북한의 농민들이 어리석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들이 어떻게 해야 상황이 좋아질지를 모른다기보다 알아도 어쩔 수 없이 주체농법을 계속 추진해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북한에서 김일성이라는 이름은 거의 신과 동급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주체사상이 세계 10대 종교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을 정도로 북한은 강력한 수령 중심사회인데요, 만약에 어떤 농민이 주체농법을 무시하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농사를 짓는다면 그는 김일성의 가르침을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고, 당장 인민재판에 넘겨져 정치범이 되어 수용소로 끌려가게 될 것입니다.
김일성, 김정일에 이어 이제 북한의 세 번째 지도자인 김정은이 등장했지만, 외모부터 행동까지 김일성을 따라함으로써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고 하는 그동안의 행적을 보면 당분간 주체농법에 대한 북한의 믿음이 쉽사리 사그라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루빨리 북한이 비효율적인 농업 전략을 수정하여 대기근을 벗어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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