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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북한 전망대

중국의 탈북난민 이야기 (KBS 시사기획 창)

북한이탈주민이 남한으로 건너오기까지는 무척이나 힘겹고 고된 과정을 거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고난과 역경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2월 26일 KBS1TV <시사기획 창>에서는 '탈북자 이은혜씨' 편을 방영해 이탈주민들의 실상을 생생하게 전해주었습니다. 중국에 숨어 지내는 이탈주민들이 한국으로 향하는 고된 여정을 따라가 보며 그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이를 저당 잡힌 가엾은 모정

첫 번째로 먹고살기 위해 홀로 압록강을 건넌 박정숙씨(가명)의 사연. 정숙씨는 북에 두고 온 18살 딸이 보고 싶어 압록강변의 중국 창바이 현으로 갔습니다. 좁은 강폭을 사이로 북한 량강도 혜산시와 마주보고 있는 곳입니다. 예전부터 밀거래가 성행했던 이곳에서 그 밀거래 조직이 사람까지 빼내고 있었습니다. 8년 전 이곳을 통해 탈북한 정숙씨는 탈북 중개 브로커를 통해 딸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딸에게 줄 신발과 옷까지 준비하며 손꼽아 고대했지만 약속한 날 밤, 정숙씨의 딸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숙씨에게 돈을 더 뜯어내려는 북한쪽 브로커가 딸을 보내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게 정숙씨는 5년간 돈만 보내고 딸은 보지 못한 채 속고 살았습니다. 모녀는 과연 언제쯤 서로 얼굴을 맞댈 수 있을까요?

 

 

 

생사의 고비를 넘긴 네 명의 탈북 여성

두 번째는 이은혜씨(가명)를 포함한 탈북 여성 4인의 이야기. 북한에서 유치원 교사였던 은혜씨는 21살이던 2001년, 굶어 죽어가는 참혹한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탈북했습니다. 처음엔 돈을 벌어 돌아갈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9년 동안 중국에 숨어 지내면서 예상치 못한 갖은 고초를 겪었습니다. 인신매매꾼에 잡혀 두 번이나 팔려갔고, 강제노역에 시달렸습니다.

잡히면 북송을 시키니까 항상 두려운 거죠. 경찰차 소리가 나면 등골에서 식은땀이 났고 머리털이 곤두섰고. 항상 살얼음판을 걷는 삶이었고…

왜 우리가 맞고 사는데. 자기 나라가 없으니까 그러잖아요. 북한에서 태어난 게 우리 죄가 아니잖아요. 사람대접 못 받고 살고 있지 않습니까. 가장 이루고 싶은 소망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거. 사람이 사람답게...

 

 

은혜씨 일행은 브로커의 안내를 받아 남한으로의 탈출을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인 안내자가 국경에 훨씬 못 미치는 곳에 일행을 두고 돌아가 버렸습니다. 은혜씨 일행은 영하 10도의 동토 산악지대에서 길을 잃고 조난을 당했습니다.

“변방대 차가 오면 최대한 태연하게 하려 했지만 그래지지가 않았어요. 너무나 무섭고 떨려서 앞에 다가오면 올수록 심장이 쪼그라들며 쿵쾅쿵쾅. 등골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가시 같은 것으로 등을 찌르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깊은 산골에서 길을 헤매는 4명의 탈북여성. 조난된 지 이틀이 지나 탈진상태에 이르렀습니다. 먹을 거라곤 땡땡 얼어붙은 사과와 계란 몇 개가 전부.

취재진은 사전에 은혜씨 일행과 접촉하여 그들의 여정을 취재하기로 동의를 얻었고, 위성전화를 통해 실시간으로 그들의 상황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주변 지리나 상황과 같은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펼쳐질 산이 매우 험난함을 알게 되자 취재진은 일행에게 중국의 안전지대로 돌아가기를 권유했습니다. 하지만 은혜씨 일행은 계속 가는 수밖에 없다며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은혜씨의 머릿속에 중국에서 겪었던 끔찍한 나날들이 스치면서 ‘죽으면 죽었지, 가다가 죽더라도 무슨 일이 있어도 한국에 계속 갈 것’이라 했습니다.

이들에겐 배고픈 것보다 갈증이 더 힘들었습니다. 목구멍과 목구멍이 척척 달라붙는 느낌이었고 얼음물에 발이 갈라져 피가 났습니다. 겨우 손만 녹일 정도로 불을 피우지만 그마저도 금세 사그라들었습니다.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도착지를 향해 계속 걸어갔습니다. 과연 내일 아침 뜨는 해를 볼 수 있을까.

탈출 7일, 조난 4일째. 체력과 살겠다는 의지마저 바닥나기 시작했습니다. 일행 중 한명은 기진맥진해 결국 쓰러졌고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춥고 배고프고 떨고 실오라기 같은 희망도 보이지 않는 극한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던 순간, 제3국 국경경비대를 만났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희미한 불빛과 함께 ‘어이’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은혜 씨 일행은 처음에는 긴가민가 하다가 곧 동시에 약속이나 한 것처럼 소리를 질렀습니다. 죽음까지 갔다가 다시 살아온 감격과 서러움이 북받쳐 올랐습니다. 그렇게 그들의 여정은 끝이 났습니다.

 

한국에 정착한 이탈주민들…그 후?

제3국은 그들을 인도적으로 대우했고 결국 이탈주민들은 남한으로 넘어올 수 있었습니다.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기관인 하나원을 2011년 퇴소하고 한국에 정착했습니다. 은혜씨는 그 후 딸을 출산했고, 일행 중 한명은 한국남자와 결혼해 살림을 시작했습니다.

 

 

한국에 오니까 가슴 쭉 펴고 걷는 느낌. 중국에 있을 땐 어디 갈 때마다 골목길 쪽을 찾아다녔고…

'자유'라는 두 글자 속에 숨겨진 깊은 뜻을 저는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아요. 남은 소망이 있다면 제 딸이 탈북자의 자식이라든가 어떤 이유를 불문하고 그늘 없이 키웠으면 좋겠어요.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탈북자들도 있으니까 예쁘게 봐줬으면 해요.

 

 


프로그램을 통해 삶과 죽음의 고비에서 북한이탈주민들이 겪은 힘겹고 처절한 과정을 보며 가슴이 먹먹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지금 제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일상의 평온이 탈북자들에겐 그토록 소중하고 갈망해왔던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 중국에는 하루하루 공포와 불안 속에 숨어 살고 있는 탈북난민들이 5만여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들에게 더 큰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겠고 또한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에게도 따스하게 보다듬어 주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KBS1TV <시사기획 창>에서는 당시 그들의 상황과 통화 녹음을 바탕으로 영상을 재구성해서 실감나게 그 실상을 보여주었습니다. 꼭 한 번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이상으로 상생기자단 김유경 기자였습니다

사진 출처 : KBS1TV <시사기획 창> 2월 26일 방영분

 

김유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