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야산에 나무가 많았고 주민들이 산에 들어갈 일이 없었지만 사회주의 공급 체계가 마비된 이후 산에서 땔감을 얻고, 산을 개간해 식량 문제를 해결하려 해 높은 산꼭대기까지 개간되지 않은 산이 없었다.
- 탈북민 강대규씨 증언 中
▲흙빛으로 뒤덮인 북한의 한 민둥산 모습(중앙일보)▲울창한 나무로 뒤덮인 지리산의 모습(위키미디어)
북한 산림면적 지난 20년 동안 30% 정도 줄었다
- 세계식량농업기구(FAO) ‘2011 세계 산림현황’ 보고서
심각한 북한의 산림 사정
북한의 급속한 산림 황폐화가 푸르렀던 한반도를 흙빛으로 동강내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일한 녹화조림 성공 국가로 꼽히는 남한과 달리 북한은 지난 20년간 전체 산림면적의 30%가 황폐화됐습니다. 분단 직전 1942년에 무려 934만 3천 헥타르에 달했었고, 가장 많을 때(1970년)는 977만 3천 헥타르에 달하던 북한의 산림이 이제는 그 절반에 가까운 566만 6천 헥타르만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북한의 산림 훼손 실태를 지역별로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산림의 훼손 정도가 가장 낮은 곳이 무려 24%에 달하고(양강도) 황해남도와 개성시의 경우엔 각각 50%와 62%가 훼손되어 그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추정할 수 있습니다. 도표를 보면 낭림산맥의 줄기가 흐르는 양강도와 함경북도-함경남도-강원도가 그나마 훼손 정도가 덜한 편이고 비교적 평야가 많은 황해도와 평남 지방의 피해가 더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매년 평양시 면적에 해당하는 12만7천 ㏊의 산림이 없어진 셈
- 2012. 3. 14. <연합뉴스>
북한의 산림사정이 이렇게 급속하게 안 좋아진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만성적인 연료 부족으로 인한 무분별한 벌채입니다. 90년대 극심한 경제난을 겪으며 북한의 공산주의 수급체계가 무너지게 됩니다. 때문에 북한의 주민들은 국가가 배급하던 연탄이나 땔감 등을 더 이상 받을 수 없게 된 것이죠. 그러자 주민들은 직접 인근의 산이나 들판에 나가 땔감으로 쓸 나무를 베어다 쓰기 시작했습니다. 평양 한가운데의 아파트들 상당수에서도 나무를 때서 난방을 하는 북한의 특성상 급속한 황폐화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한 탈북 청년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이제 대여섯 살짜리 아이들도 산에 가서 나무를 해오는 것이 일상이라고 합니다. 원래대로라면 학교에 가야할 한낮에도 산에 가서 나뭇가지를 줍고, 돌산에서 여기저기 숨은 버섯들을 캐오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죠. 그러다보니 온 산마다 남아나는 나무들이 있을리 만무합니다.
둘째는 ‘다락밭’의 개간입니다. 북한은 70년대 중반 김일성의 직접 지시로 이른바 '주체농법'의 일환인 다락밭 개간을 전면 시행합니다. 다락밭은 ‘계단밭’과 같은 뜻으로 경사면을 깎아 계단 모양으로 평탄하게 만든 후 밭으로 활용한 것을 뜻합니다. 이 다락밭 개간은 북한이 1976년도에 '30만 정보 간석지 개간'과 '20만 정보 새 땅 찾기' 사업을 시작하면서 시행된 것인데, 이를 행정구역별로 목표량을 정하고 기간 내에 달성하도록 적극적으로 추진한 탓에 북한 전역에서 산지개간 작업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집니다. 전국토의 약 80%가 산지인데다가 대부분의 산 지형이 경사가 급한 북한 지형의 특성상 북한은 아마도 다락밭의 개간만이 당시 부족한 수확량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방법이라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다락밭을 만들었던 초기에는 곡식의 생산량이 증가하는 등 식량 확보에 기여하는 듯 했습니다. 1그러나 나무 없는 산은 큰 비가 올 때마다 토사를 쏟아내고 강을 넘치게 해 반대로 극심한 홍수 피해를 불러왔습니다. 몇 번의 홍수가 지나간 뒤에는 많은 산들이 흙만 남은 민둥산이 됐고, 평야 역시도 강에서 넘쳐난 물로 황폐화 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북한의 기술 및 약품부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산림을 얘기하다가 웬 약품이냐고요? 실제로 나무들도 사람들이 감기에 걸리는 것처럼 전염병을 앓아 아플 때가 종종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소나무 에이즈라고 불리는 ‘소나무 재선충병’입니다. 이 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는 100% 말라죽는다고 해서 이런 별명을 얻게 됐죠.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2005년 ‘소나무 재선충병 방제 특별법’까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숲의 나무들은 병해충에 상당히 취약하다고 볼 수 있는데, 북한은 이런 병해충을 방제할 기술과 약품 모두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입니다. 때문에 숲의 나무 한 그루만 병해충에 걸려도 숲의 온 나무가 다 말라죽고 산지가 쉽게 황폐화되는 것이죠. 마치 병에 걸릴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아이를 기르다가 아이가 정말 아파서 죽음에 이르러도 손 한번 써보지 못하는 제3세계의 기아 아동과 비슷한 처지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 2008년 위성영상자료 등을 이용해 조사한 결과 북한 산림 면적 916만㏊의 30%인 284만㏊가 황폐화된 것으로 추정. 서울의 47배쯤 이르는 면적." - 2012년 8월 산림청 발표
그렇다면 이런 문제들이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은 무엇일까요?
왜 우리가 북한의 산림을 신경 써야만 하는 걸까요? 우리 한반도의 미래를 걱정하는 분이라면 왜 이런 질문을 던지느냐고 오히려 반문하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사실 우리 통일한국의 미래도 문제지만 이런 북한의 산림 문제가 지금 당장, 우리 대한민국에 끼치는 더 시급한 문제들이 있답니다.
지난 2009년 임진강의 물이 갑작스레 불어나 낚시를 즐기던 6명이 실종됐던 사건을 기억하시나요? 당시 북한 측의 통보 없는 무단방류가 물난리의 원인이었음이 밝혀져 논란이 일었죠. 우리나라에게 피해가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말도 없이 수문을 열어버린 북한 측의 행동은 분명 지탄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좀 더 현실적으로 접근해볼까요? 북한은 지리적으로 우리나라의 북쪽에 위치해있습니다. 이것은 남북이 통일되는 그날까지 바뀌지 않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물은 언제나 상류에서 하류로 흘러가죠. 그러니 북한에서 발생한 홍수는 반드시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이 갑자기 댐을 닫아버리면 가뭄이 들고, 또 갑자기 댐을 열어버리면 물난리가 난다는 연천과 파주 일대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북한의 홍수, 신경을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앞서 보았듯 산림의 황폐화는 홍수의 가장 큰 원인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북한의 산림복구를 도와야하는 첫째 이유입니다.
두 번째 역시 서로 딱 붙어 떼려야 뗄 수 없는 남북한의 위치적 환경에서 기인합니다. 바로 병해충 문제죠. 병해충은 쉽게 말하면 ‘나무 전염병’입니다. 종류도 다양하고, 경로도 곤충이나 공기를 통한 감염 등 다양하지만 전염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다시 한 번 감기를 예로 들어볼까요? 환절기 같은 ‘감기철’이 되면 다양한 예방 방법들이 이야기됩니다. 손 깨끗이 씻기, 사람 많은 곳에 가지 않기, 기침할 때는 고개를 숙여 바이러스 막기 등등. 무엇보다 감기 바이러스가 있을만한 곳에서 최대한 멀리해야합니다. 그런데 남과 북, 철책선이 가로질러 사람은 다닐 수 없는 땅이지만 온갖 새와 동물, 곤충, 그리고 바람은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합니다. 말하자면 병해충도 남과 북을 자유롭게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이죠. 병해충에 무방비한 상태로 관리조차 이뤄지지 않는 북한의 산림에서 ‘나무 전염병’이 발병하면 어느 순간 우리 땅의 나무들도 병을 앓을지 모릅니다. 거기에 희귀식물, 보호종 같은 귀한 식수들이 병해충에 걸린다면 우리의 피해는 더욱 커질 수 밖에 없겠죠. 이제는 북한의 병해충 방제에도 우리가 나서야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이처럼 북한의 심각한 산림현황은 우리에게도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단순히 북한을 돕는다는 차원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우리에게 끼칠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북한의 산림복구를 도와야하는 것이죠. 또한 이 모든 것은 우리가 통일을 생각하며 늘 대비해야할 ‘통일비용’의 문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이미 전체 산림의 30%가 훼손된 상황인데도 북한 당국에게는 이 산림복구를 시행할 마땅한 방법이 없습니다. 산림녹화에 필요한 묘목 종자 하나를 개발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며, 그 나무를 키워서 전국의 황폐화된 산지에 하나하나 심는 작업도 지금 북한의 상황에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그러다보니 상황은 계속 악화일로를 걷고 있고 이대로라면 통일이 되기도 전에 북한의 산림이 손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를지도 모르겠지요. 그렇다면 통일 이후에 우리가 황폐화된 북한의 산림을 복구하는 비용도 더 많이 들게 될 겁니다. 시간이 늦어질수록 우리의 부담도 커진다는 거죠. 이런 심각한 상황을 눈앞에 두고 전후 세계 유일의 산림녹화 성공 국가인 우리나라가 가만히 있다는 것은 이제 자존심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직접 북한의 산림복구를 위해서 나서야할 때입니다.
이어질 2편에서는 북한의 산림복구를 위해 우리가 할 일, 또 실제로는 어떤 노력이 이뤄지고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 당시 70년대 중반 북한은 주체농법이라는 이름으로 다락밭 개간 이외에도 간척사업 등으로 경지를 확보하고, 이모작, 품종개량 등 다양한 구체적 농법을 시도했습니다. 이런 김일성의 직접지도의 효과가 즉시 나타나 곡물 수확량이 1973년에는 538만톤이었던 것이 1974년에 700만톤으로 늘어나고, 그 이후에도 꾸준히 증가해 1984년에는 1,000만톤 대에 올랐다고 합니다. 다만 본문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다락밭의 개간이 산림 황폐화 등의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자 90년대 즈음부터는 북한도 다락밭을 조성하지 않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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