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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통일로 가는 길

통일 이후의 식문화 변화? 통일 신라를 보면 그 해답이 보인다!

 

   최근 사극 드라마인 대왕의 꿈이 방영되고 있습니다. '대왕의 꿈'은 엄격한 골품제 사회였던 신라에서 성골이 아닌 진골 신분으로 최초의 왕위에 오른 김춘추(최수종 분)가 어떻게 우리 민족문화의 가장 찬란한 전성기를 이뤄낼 수 있었는지 그 리더십을 재조명해보는 드라마입니다.

  그런데 이 시기를 기록한 우리의 역사서중의 하나인 삼국유사를 살펴보면 신라 29대왕인 태종 무열왕의 식사량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왕의 식사는 하루에 반미(飯米) 3(), 수꿩 아홉 마리였다. 경신년 백제멸망 후로부터는 점심을 제외하고 아침, 저녁으로만 하였다. 그러나 모두 합하여 하루 미() 6, 10마리나 되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백제 멸망 후 신라인()의 그 식사량이 많이 늘었음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신라의 삼국통일은 정치적 안정, 영역 확대 등 식문화를 꽃피울 수 있는 여건을 제공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태종 무열왕은 신라의 삼국 통일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끼친 인물로, 통일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이 시기에 이미 백제를 흡수하면서 신라의 식문화가 바뀌어가고 있음을 뜻합니다. 예를 들면, 술이 신라인의 식사에 처음으로 등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물론 백제의 흡수로 인한 생산물 증가로 인한 영향도 클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라의 삼국 통일이 식생활에 어떠한 변화를 주었을까요?

 우선 통일로 인하여 무기를 농기구로 만들 수 있었으며 국방에 쏟던 에너지가 생산력으로 변경됨을 알 수 있습니다. 불필요한 세금을 폐지하게 되면서 식생활이 풍성해지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또한 영역의 확장으로 인해 고구려 지역과 백제 지역에서 나는 토산물이 유입되면서 재료의 증가로 인한 식생활의 변화도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백제나 고구려 유민이 직접적으로 유입되면서 새로운 음식과 식문화를 가지고 들어오면서 점차적으로 문화가 퍼져나갔습니다. 중국과 좀 더 밀접한 위치를 가진 고구려의 선진 식문화도 유입되었을 것이며, 이는 식사형태나 상차림, 배식 등의 문화 또한 유입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각 지방에 따라서 토종음식은 많이 다릅니다. 우리나라는 강원도의 감자옹심이처럼 각 지방에 따른 토종 음식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우리가 먹지 않는 음식을 북한에서 즐겨 먹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평안도 지방의 토종 음식인 노치(노치)와 함경도 지방 토종음식인 가자미식해등이 그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점심으로 즐겨 먹고 있는 맥도날드의 1호점이 불과 1988년에 설립된 점을 감안한다면 통일된 이후 10년이라는 짧은 시간안에 우리의 식문화가 크게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역사를 공부해서 과거를 공부하는 것은 이를 토대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함입니다. 신라의 삼국통일의 경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북한의 향토 음식과 식문화가 유입되어 많은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통일 이후 변화될 우리의 식문화, 지금부터 기대 됩니다.

 

 

 

 

참조

권주현, 통일신라시대의 식문화 연구,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68, 2012.12, 263-300

티브이데일리 뉴스 http://tvdaily.mk.co.kr/read.php3?aid=1346927670383072002

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2/11/07/0200000000AKR20121107109300005.HTML?did=1179m